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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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12월 월차제 신전강화

 

자유자재한 수호를 받는 마음

 

이 상 봉 (고성교회장)

 

여러분 반갑습니다. 올 한 해 마무리 하는 월차제 근행, 조금 전에 즐겁게 올렸습니다. 올 한 해 동안 여러 가지로 정성을 기울여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오늘은 어버이신님의 자유자재한 수호를 어떻게 하면 받을 수 있을까하는 것에 대해서 교조님께서 하신 말씀을 중심으로 몇 가지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어버이신님의 수호는 자유자재한 수호인데, 자유자재한 수호란 내가 내 마음먹은 대로 되어져 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이러한 수호를 받을 수 있는 지에 대해서 교조님께서 하신 말씀 가운데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는 진실한 마음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진실한 마음이라 하는 것은 변하지 않는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변하지 않는다라고 하는 것은 기쁘거나 즐거울 때 가지고 있는 마음을 상황이 달라져서도, 즉 어렵고 괴롭고 힘들 때라도 가지고 있는 마음을 말합니다. 마음이 달라지면 진실이 아닙니다. 어제는 이런 마음을 먹었지마는 오늘은 상황이 달라지니까 어제 먹은 마음이 달라졌다는 것은 진실한 마음이 아닌 거죠. 좋고 기쁠 때는 누구나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지마는 그렇지 못할 때 변하지 않는 마음, 계속 이어가는 마음이 진실한 마음입니다. 그런데 이길을 신앙하지 않더라도 변하지 않고 계속 이어가는 진실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이 세상에는 많습니다. 하지만 어버이신님의 자유자재한 수호를 받는 진실한 마음에는 조건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낮은 마음을 쓰는 것, 상냥하고 인자로운 마음을 쓰는 것, 순직한 마음을 쓰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가 어버이신님의 자유자재한 수호를 받을 수 있는 진실한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먼저 낮은 마음에 대해서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마음이 낮다는 것은 과연 어떻게 나타나는 것일까요. 그 사람의 겉모습 행동에 드러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흔히 옷이 날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볼품없는 사람이라도 좋은 옷을 입혀놓으면 사람이 기품이 있어 보입니다. 터전 귀참을 하게 되면 공항에 가지 않습니까. 어떤 분들은 아주 좋은 양복을 입고, 어떤 여자 분들은 명품을 옷에 걸치고 옵니다. 벌써 사람의 격이 달라 보입니다. 그냥 잠바 입고 가는 사람하고 명품을 입고 가는 사람하고는 벌써 달라 보입니다. 입국심사를 하며 같은 것을 대우해도 틀려 보입니다. 그런데 가끔 이런 일이 생깁니다. 입국심사장에 줄을 늘어 서 있으면 기다리는 게 짜증나니까 새치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앞에 사람이 조금 줄을 빨리 당겨 서지 않는다고 해서 새치기 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멋지게 양복을 차려 입으신 분하고 명품을 걸친 아가씨 두 사람이 새치기를 하려고 했습니다. 그 때 가운데 서 있던 중국 사람이 손을 들어 막더니 아니야 아니야하는 시늉을 했습니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당신들 그렇게 하는 게 아니야 아니야하는 듯이 가로 막았습니다. 굉장히 무안한 일이죠. 그 순간에는 아무리 좋은 양복을 입고 명품을 걸치고 있는 사람이라 해도 완전히 마음이 무시당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부끄러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마음이 벌써 그렇게 되어 버렸으면 제 아무리 멋진 옷에 명품을 몸에 둘렀다 해도 정말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말은 하지 않더라도 마음속으로 당신들 뭐 하는 거냐. 한국 사람들은 그 따위로 하느냐. 질서도 안 지키고, 자기 편할 대로 하려고 하다니.’ 하지 않겠습니까.

조급해서 질서를 안 지키고 하는 것을 어디에서나 곧잘 볼 수 있습니다. 그런 것은 어디서 생기는 마음입니까. 자기를 중히 여기는 높은 마음에서 오는 것입니다. 자기가 먼저 해야 하고, 자기가 빨리 가야 한다는 것이죠. 마음이 낮아지면 질서를 지키고 기다립니다. ‘언젠가 가겠지, 언젠가는 하겠지하는 느긋한 마음이 됩니다. 어차피 같이 다 기다리는 것 아닙니까. 결국 이런 마음이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서도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봅니다.

패스트 푸드 라는 말을 들어 보셨습니까. 패스트 푸드는 빠른 음식, 조리하는데 시간이 걸리지 않는 음식을 말합니다. 대표적인 음식이 햄버거입니다. 주문하면 만들어져 나오는데 1, 2분 안 걸립니다. 바로 조리해서 나오는데 요즘은 패스트 푸드 가 안 좋다고 많이 알려지고 있습니다. 음식만 빨리 나오는 게 아니라 수명도 빨리 단축시킨다는 것이죠. 그래서 슬로우 푸드를 먹자는 이야기입니다. 조리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음식이 몸에도 좋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수명도 천천히 늘어나는 거죠.

즐겁게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방해 되는 것은 조급함이라고 합니다. 뭐든지 쫓기면서 하는 것은 굉장히 몸에 좋지 않다고 합니다. 그래서 쫓기면서 사는 상황을 만들지 말자고 말합니다. 삶의 질을 향상시키자 하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을 말합니다. 하지만 바쁘게 돌아가는 이 세상에 조급하지 않게 살아갈 방도가 없을까요.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낮은 마음이 되면 됩니다. 그러나 높은 마음이 되니까 별 도리가 없습니다. 그렇게 바쁘게 쫓기며 살아가게 됩니다.

내가 제일 낮다, 이중에서 제일 끝에 서 있어도 된다고 생각하면 조급한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내가 제일 앞에 서야 하고, 먼저 해야 된다고 생각을 하면 바쁘게 쫓기면서 하는 일이 많아집니다. 낮은 마음은 조급함에서 벗어나는 길입니다.

그런데 교조님께서는 나는 낮다, 나는 낮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동안에는 낮은 마음이 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자기만의 착각이라는 것이죠. ‘낮다라고 생각하고 있는 한 낮은 마음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낮은 마음은 누구에게 써야 하는 것일까요. 자기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낮은 마음을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온순한 마음입니다. 우리들은 인자롭다 자비롭다 온순하다 상냥하다 친절하다는 말을 곧잘 씁니다. 교조님이 하신 말씀에는 이런 말이 모두 함축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온순한 마음은 진실한 마음과 관련된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마음이 온순하고 순직한 마음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형편이 좋을 때는 잘 받아들이지만 자기 형편에 맞지 않는 것은 잘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버이신님께서 우리에게 눈을 주셨습니다. 눈은 사물을 보는 역할을 합니다. 눈은 양쪽으로 달려 있어서 사물을 보게 합니다. 교조님께서 좌선우악 이라고 해서 왼쪽은 선 오른 쪽은 악이라고 말씀해 주셨지만 눈으로 선도 악도 다 보면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선한 것이란 자기에게 좋은 것을 말하지만 사람의 눈은 선한 것만 받아들이는 게 아닙니다. 좋지 않는 것도 다 봐야 합니다. 자기 눈에 안 좋은 것을 보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온순하고 순직하지 못한 마음씀입니다. 아무리 더럽고 힘들고 나한테 좋지 않는 것이라도 다 봐 내야 합니다.

귀도 마찬가지입니다. 듣기 싫은 소리를 해도 다 들어줘야 온순하고 순직한 마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마음을 써야 하는데 이런 마음을 누구에게 하는가. 남한테 이런 마음을 베풀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남에게 베푼다고 하는 것은 내가 낮아져서 남이 즐겁도록 하고, 내가 온순하고 순직한 마음을 써서 남이 도움 받도록 마음을 쓰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을 쓸 때 어버이신님의 자유자재한 수호를 받는 진실이 된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그 반대로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고 싶어 합니다.

자기 마음대로라 하는 것은 남을 생각하는 마음은 전혀 없고, 자기 몸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낮은 마음 쓰고 싶어도 이렇게 되면 내가 손해를 보는데하는 생각으로 낮은 마음을 쓰지 못하고, ‘이렇게 하면 덕이 안 되는 데하는 생각에서 온순하고 순직한 마음을 쓰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자재한 수호를 받을 수 없다고 단적으로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말하자면 수호를 받을 수 있는 마음이란 내 몸은 어떻게 되더라도 남을 즐겁도록 해 주자하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내 몸은 어떻게 되더라도 좋으니 남이 즐겁도록 해 주자 하는 마음이 되지 못하면 진실한 마음은 하나도 생겨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자기 몸 인간 생각을 버리지 않는다면 남이 즐거워할 수 있는 그런 길을 걸을 수 없는 거야. 남을 도우면 내 몸 도움 받는 길이 되는 거야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것이 첫 번째입니다.

 

두 번째는 우리 몸은 차물이다는 사실을 한 순간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 우리의 육체는 어버이신님으로부터 빌려 받아쓰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어버이신님의 수호를 받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사람은 자기 자신의 육체를 내 것이라고 알고 쓰고 있기 때문에 받을 수호도 받지 못하는 거야. 이리를 잘 생각해 다오.’라고 했습니다. 친필에 각자의 몸은 차물임을 모르고 있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말씀도 이 말씀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내 몸이 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동안에는 받을 수호도 받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이 차물이라는 리를 나날이 항상 새기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어떤 분이 교조님에게 어버이신님한테 은혜보답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교조님은 어버이신님은 으뜸인 신이고 진실한 신이다. 절하고 비는 신이 아니야. 으뜸인 신은 아무것도 없는데서 이 세계와 인간을 창조해 주신 신이고, 진실한 신은 그 창조한 때부터 오늘날까지 살아갈 수 있도록 물 불 바람의 수호를 비롯해서 온갖 것을 계속 해서 베풀어 주시고 있는 신을 말하는 거야. 우리는 그 수호에 의해서 매일 매일 살려지고 있다. 어버이신님의 수호에 대한 은혜보답은 이만큼만 하면 됐다는 것은 없는 거야. 왜냐하면 매일매일 살려지고 있기 때문에 매일매일 갚지 않으면 안 돼. 매일 매일의 수호, 나날의 수호에 나날이 갚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나날이 쓰고 있는 마음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내 몸에, 내 일신상에, 내 주위에 다 나타난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래서 항상 사람은 어버이신님으로부터 우리 육체를 몸을 빌려 쓰고 있다는 것을 24시간 생각하고 있지 않으면 안 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몸에 나타나는 신상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사람은 싫은 것을 보면 , 싫구나. 보고 싶지 않다하고, 싫은 소리를 들으면 , 싫구나. 듣고 싶지 않다.’고 한다. 이런 마음이 안 되는 거야. 싫어하는 모습을 보고 싫다는 생각을 하기 전에 , 보이는 것이 감사하구나. 장님이 아니어서 감사 하구나해야 한다. 그리고 싫은 소리를 들었을 때도 , 들려서 감사하구나. 귀머거리가 아니라서 정말 감사하구나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으면 안 돼. 어떠한 것을 보고, 어떠한 것을 듣더라도 고맙구나, 감사하구나하는 마음으로 지낸다면 자유자재한 수호를 받을 수 있는 길이 되는 거야. 어려운 것은 하나도 없어.”라고 깨우쳐 주셨습니다.

아무리 싫은 것을 보더라도 눈이 보여서 얼마나 감사하다싫은 소리를 듣더라도 소리가 들려서 정말 고맙구나하는 것이 자유자재한 수호 받을 수 있고, 어려운 신상이나 사정을 만났을 때도 선명하게 수호를 받을 수 있는 토대가 된다고 했습니다. 평소 때는 자기 좋을 대로 보고 듣고 해석하고 아주 편안한 길을 걸어오다가 어려움에 부딪쳐서 , 수호가 안 나는가하지만 그것은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평소 때 수호 받을 수 없는 마음을 써 왔기 때문에 정말로 필요할 때에는 자유자재한 수호를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신상 사정으로 고통을 받고 괴로워하고 있을 때 그때일수록 내 몸은 차물임을 바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돼. 차물의 리만 바로 다스리고 있다면 어떠한 경우에서도 도움을 주는 거야.” 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우리 몸을 빌리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하루 하루를 고맙구나, 감사하구나하는 마음으로 지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동안에는 대난은 소난으로, 소난은 무난으로 이끌어 주신다고 했습니다. 결국은 대난을 소난으로, 소난을 무난으로 수호 받지 못하는 것은 우리 몸이 차물이라는 사실을 잊고 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평소 때는 이런 마음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가 어려운 상황을 만나면 매달리지만 평소 때 벌써 차물임을 알고 고맙게 살게 해 주시는 구나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아무리 어려운 가운데서도 도와주십니다. 또 신상이나 사정을 만나는 가운데서도 차물의 리만 깨닫게 되면 없는 수명도 이어준다고 했습니다.

없는 수명을 이어주시는 게 차물의 리를 깨닫는데 있다고 했습니다만 정확하게 말해서 다스린다는 의미입니다. 다스린다는 것은 그대로 실천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머리로 이해하고 납득하고 알고 있는 것만이 아니라 평상시 생활에서 실천을 한다는 것입니다. “실천하게 되면 없는 수명도 이어주시는 거야. 인간 힘으로 이렇게든 저렇게든 안 될 때도 다스려지는 수호를 받을 수 있는 것이 차물이라고 하는 리. 단단히 마음에 다스려서 나날이 살아가 다오. 그것만 마음에 다스려진다면 어떠한 일도 걱정할 것 없다. 걱정할 것 없다. 걱정하지 않도록.” 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것이 두 번 째입니다.

 

세 번째로 말씀해 주신 것은 부모, 어버이에 따르는 마음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순직한 것과 통하는 말씀인데요. “부모의 마음, 어버이 마음에 따르기 위해서는 내 몸 생각 버리지 않으면 안 돼. 내 몸은 어떻게 되더라도 라고 하는 마음이 부모를 따를 수 있는 마음이 되는 거야. 자기 몸을 생각해서 이렇게 될까 저렇게 될까 인간마음으로 여러 가지 생각하겠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마찬가지야. 자기 몸을 생각하는 마음이라면 부모의 뜻에는 결코 따를 수 없다. 부모가 말하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마음에 신이 활동하는 거야. 부모의 말을 듣고 참 의지 할 수 없는 부모로 구나이렇게 생각하면 부모의 목소리도 신의 목소리 마찬가지. 그대로 되어 오는 거야. 걱정하거나 의심하지 않도록. 신이 데리고 가 줄 테니. 인간 마음을 내는 것이 아니야. 의지하는 마음에 신이 활동하는 거야. 걱정하지 않고 부모의 마음에 따라서 걷는다면 어떠한 것도 받아들인다. 받아들이는 가운데 자유자재한 리가 있는 거야.”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어버이 말에 순직하게 따르지 못하는 것은 내 몸 생각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인간 생각이란 앞날을 걱정하는 마음입니다. 이렇게 되면 자기 앞날이 어떻게 될 것인가 하고 생각하는 것은 사람의 계산법입니다. 부모 말인데도 이 말대로 따른다면 앞으로 위험해 지겠다, 걱정되겠다하는 마음이 일어나는 것은 인간생각이라는 것이죠. 하지만 그대로 받아들이는 마음에 신님이 활동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부모의 말에 참 의지할 만한 말을 전혀 안 해 주는 구나하는 동안에도 그대로 되어져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어리석은 부모라도 그 말을 듣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서 순직하게 따른다면 그것에 의해 어버이신님의 자유자재한 리가 나타나는 거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내 몸은 어떻게 되더라도 어버이의 마음에 따라 걷는다면 충분한 리로 받아들여 주시고, 충분한 리는 감사함이 넘치는 모습으로 나타는 거라고 거죠. 부모의 마음에 따라서 걷는다, 부모의 마음이 되어서 걷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기 몸의 형편을 저버리지 않으면 따라 걸어가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걷기 힘든 가운데도 도저히 안 되는 가운데서도 그런 길을 걸어가기 때문에 이길이 나는 거야. 이길을 나는 것은 예사로이 걸어서는 안 된다. 남들이 보기에도 그렇게 힘든 가운데서도 잘도 걸어 왔구나, 그렇게 어려운 가운데서도 잘도 따라 왔구나하는 말을 들을 정도가 아니면 이길을 낼 수 없는 거야. 만약 그런 길을 내게 되면 나중에는 편안하게 걷을 수 있는 길이 나게 되는 거야.” 라고 했습니다.

나중에 정말 편안하게 걷기 위해서는 처음에 이런 고생이나 고난 속에 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생이나 고난이 육체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부모에 의지해서 순직하게 따른다는 것도 굉장히 어려운 고생의 길입니다. 하지만 그런 길을 걸었기 때문에 나중에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이 나타나게 된다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부모의 마음에 따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은 마음에서 걸어간다면, 혹은 부모를 무시하고 부모에게 거역해서 걸어간다면 내 몸이 일어서지 못하게 되는 거야. 이 리를 잘 생각해 다오. 부모의 마음에 따르지 못하고 부모의 마음을 죽이고 걷는 자, 인간 마음으로 자기 하고 싶은 대로 걷는 자. 그런 사람은 한번은 용서한다. 두 번 째는 도와준다. 세 번째는 용서하지 않는다. 어버이라는 리를 잊지 않도록. 어버이 마음에 따라서 걷지 않으면 안 돼.” 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말씀은 18771123일에 해 주신 말씀입니다.

 

초대 때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시간이 많이 지났습니다만 요즘 우리가 뭔가 중요한 것을 잊고 있지 않는가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것이 뭔가 하면 위에서 말씀드렸던 교조님께서 해 주신 말씀입니다.

첫째는 진실한 마음입니다. 진실한 마음은 낮고, 온순하고, 순직한 마음으로 남한테 베풀면서 즐겁게 길을 걷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우리 몸이 차물이라는 사실을 항상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언제나 잊지 않고 사는 것, 그 은혜보답을 위해서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어버이 마음에 그대로 순직하게 따르는 마음입니다.

이러한 마음이 될 때 어떠한 신상이나 사정 가운데에서도 자유자재한 수호, 원하는 수호를 받는 길이 됩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려운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어렵게 하려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그 말씀대로 따르지 못하는 것은 인간 생각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시대가 많이 변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하면 신앙하는 사람도 따르기가 쉽지 않을지 모릅니다. 일반 사회 사람들한테 이야기를 하면 지금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이런 말을 하느냐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교조님이 말씀해 주신 진실이나 진리는 백 몇십 년이 지났다 해도 전혀 변하지 않고 그대로 통용되는 섭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잘 새겨서 실천해야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마음을 먼저 가정 안에서 실천을 하고 가족이 다함께 교회에 이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진주님께서도 가족단위로 교회에 연결되는 신앙을 강조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온 가족이 교회에 참배하는 것을 내년 한해 저희 교회 방침 중 하나로 세워 실천하기로 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소년회에서는 한 달에 하루는 교회에서 머물면서 체험하는 행사를 했으면 합니다. 전석에서도 상급회장님이 말씀해 주셨지만 가족을 신앙의 길을 이끌고 후계자를 길러내는 데는 정성을 가지고 키우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키우면 자라고 키우지 않으면 자라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라도 먼저 어린 아이들이 한 달에 하루라도, 설사 특별한 프로그램이 없더라도 각 소속 교회에서 근행을 올리고, 자연스럽게 신앙에 어울릴 수 있도록 실천을 해 주었으면 합니다.

저희 교회에 이어지는 산하 교회와 포교소 용재님들은 이것을 내년 한해 목표로 삼아서 잘 실천해 주시기를 당부 드리면서 오늘 이야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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