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50호
입교187년(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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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자재한 수호

 

최인옥(산청교회)

 

자유자재한 수호를 받고 산다는 것은 곧 즐거운 삶의 완성이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유자재한 수호란, ‘어떠한 것에도 속박이나 장애 없이 어버이신님의 수호로 무엇이든 자기 생각대로 할 수 있는 것 또는 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린 누구나 이러한 삶을 갈망하지만 이렇게 살고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버이신님께서는 친필이나 교조님의 가르침을 통해 신의 뜻에 맞는 마음으로 살면 반드시 자유자재한 수호를 해주신다고 밝혀 놓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자유자재한 수호를 받을 수 있는 마음은 어떠한 마음일까요?

1877년 어떤 분이 교조님께 어떻게 하면 자유자재한 수호를 받을 수 있습니까?”라고 여쭈니 항상 진실한 마음으로 살면 자유자재한 수호를 받을 수 있다라고 말씀해 주셨다고 합니다.

진실한 마음이란 낮은 마음, 상냥한 마음, 순직한 마음이라고 합니다. 이 세 가지의 마음은 우리가 이 길에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듣게 되는 말이지만, 이러한 마음으로 살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특히 제 자신은 일등으로 낙제를 받을 수 있는 성격의 소유자입니다.

하루하루 생활 속에서 문득 문득 화가 올라오는 순간들을 수없이 마주하게 됩니다. 큰일에서부터 사소한 일까지 화가 나는 종류도 다양합니다. 어느 날 제 마음 속에서 화가 올라오고 있는 것을 느끼며 이렇게 사소한 일에 왜 내가 화를 내고 있지?’라고 반문하면서, 그 짧은 순간을 되짚어 보니, 제 마음 속에서 이것은 이렇게 해야 맞고, 저것은 저렇게 해야 맞는데 왜 이렇게 했을까?’ 하며 내가 옳다는 생각이 요동을 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옳은 것과 맞는 것에 대한 집착이 아주 강한 성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매사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잣대를 대고 그것에 맞지 않을 때, ‘왜 이렇게? 왜 저렇게?’ 라는 불만의 마음을 수없이 쓰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이런 마음으로 살면, 낮은 마음의 소유자가 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상대에게 맞춰야 된다는 그 가르침에 걸맞는 삶을 살기 위해서, 집착하는 마음을 버리려고 수시로 제 자신을 살피고 있습니다.

상냥한 마음이란, 어떠한 순간에도 밝게 할 수 있는 마음이라고 합니다. 이 마음 또한 내가 맞다. 내가 옳다라는 생각을 버리지 않고서는 상냥한 마음이 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내 생각이 맞다.’라는 마음이 있는데,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에게 밝은 마음으로 할 수 있는 마음이 될 수 있을까요.

저 자신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옳고 바른 것은 무조건 맞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길의 가르침은 옳다고 생각하는 내 생각을 버리고 틀렸다고 생각하는 상대에게 맞출 수 있는 마음을 신님께서는 바라고 계심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다음으로 순직한 마음이란 어버이신님의 뜻과 가르침을 향해 똑바로 나아가려는 곧은 마음을 말합니다. 어떤 어려움이나 유혹에도 흔들림이 없는 굳고 곧은 마음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의심이 많음이 상례라고 신악가를 통해서 일러주셨듯이 인간의 근본 성품은 의심하는 마음이 많아서 신님의 가르침을 거부하는 마음이 없이, 온순하게 그대로 믿고 받아들이는 마음이 어렵다는 것을 가르쳐 주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세 가지의 마음 즉, 진실한 마음으로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게 살면 반드시 자유자재한 수호를 해 주신다고 하셨으니, 우리는 이 마음을 만들 수 있도록 자신의 마음을 살피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진실이라는 것은 손에 잡히거나 눈으로 보이는 형태가 없지만 한 가정에 한 사람이라도 진실한 마음으로 살아가게 되면 집안이 화목하게 다스려진다고 친필에서도 말하고 있습니다.

진실은 마음속으로 가지고 있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으며, 남에게 베풀 때 비로소 그 가치가 있다고 했습니다.

또 어버이신님께서는 친필을 통해 인간은 천박한 것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천박하다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학문이나 생각 따위가 얕거나 말이나 행동이 상스럽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버이신님께서 말하는 '천박하다'의 뜻은 내 자신을 위주로 해서 사는 삶이냐, 아니면 남을 구제하기 위한 삶이냐가 천박함의 잣대로 써졌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인간은 근본적으로 자기 몸 생각이 많고, 나만 좋으면 그만이라는 마음, 남을 도우기에 앞서 나부터 살고자하는 마음 등 이기적으로 가기 쉽기 때문에 천박한 것이라고 표현하면서까지 이기적인 마음에서 벗어나 진실한 마음으로 살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자유자재한 수호를 받을 수 있는 또 하나의 마음은 대물차물의 리를 제대로 납득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내 몸은 신님께서 빌려주셔서 쓰고 있기 때문에 진실로 빌려 쓰고 있음을 납득하고 무슨 일이든지 나에게서 일어나는 모든 것에 대해 감사하다는 마음이 되어 즐겁게 받아들이면 자유자재한 수호를 받을 수 있는 근본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진실한 마음과 대물차물의 리를 제대로 납득해서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게 되면 자유자재한 수호를 받게 되어 어버이신님께서 바라시는 즐거운 삶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현대 사회는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수많은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으며, 우리 삶에 필요한 좋은 글귀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을 통해 우리들은 많은 것을 지식으로 쌓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이 길의 가르침을 통해 어떻게 하면 즐겁게 살 수 있는지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단지 지식으로 알고 있는 것을 실제로 내가 그렇게 마음으로 실천하면서 살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며 살고 있지는 않는지, 교조 130년제가 얼마 남지 않은 이 시점에서 우리 자신을 한 번 더 점검해 보고 어버이신님의 뜻에 조금이라도 더 다가가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