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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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교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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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경지수61

 

사흘 동안의 길

 

박지수

 

지난 추석 며칠 전 일이었다. 명절이 가까웠으니 동네 입구 포교소 앞 큰길가 대청소 히노끼싱해야겠다고 벼르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은 전날 힘든 히노끼싱으로 근행을 올리면서도 힘들어하는 남편을 꼬셨다. 나 역시 전날 같이 히노끼싱을 한 터라 새벽근행 때도 간신히 일어났다. 하지만 이 날 하지 않으면 더 이상 시간이 없으니 미룰 수 없었다. 서로 힘들어하는 몸에 안마 겸 보약 수훈을 전하고 히노끼싱하러 나갔다. “30분만 하면 된다고 꼬시고 조르니 마지못해 그럼, 10분만 하면 나가겠다해서 좋아요. 10분만!” 하고 빗자루와 갈쿠리, 쓰레받기, , 호미를 챙겨 나갔다.

명절이 가까워지자 시에서 큰길가 풀은 베어 놓았지만 그것을 치우지 않아서 마른 풀들이 지저분하였다. 그것을 볼 때마다 저걸 치워야 되는 데... 날 잡아서 히노끼싱해야 되는데.’ 싶어 마음이 무거웠던 것이다.
온 동네를 둘이서 다 할 수도, 시간도 없으니 우리 포교소 근처라도 치워야지.
명절이라 고향 찾아오는 사람도, 인사 오는 손님들도 많을 테니... 몇 년 전만 해도 명절 전에는 이장님이 방송을 해서 온 동네 사람들이 나와 각자 자기 집 근처 동네 길에 풀을 베고 빗자루로 쓸어서 대청소를 하였다. 요즘은 시에서 나와 풀은 베어 놓지만 뒤처리와 청소는 안한 채로 방치되고 있고 마을 사람모여 대청소하는 것도 사라졌다.

재작년까진 해마다 나 혼자라도 포교소 앞 큰길가에 여러 차례 나가서 풀을 베고 뽑아서 그리 무성하진 않았다. 하지만 작년에도 올해도 바쁘게 넘어가다보니 2년 만에 하는 힘든 풀뽑기 히노끼싱이 되었다. 마른 풀만 갈쿠리로 끍어내면 될 거라고 쉽게 생가했던 건 오산이었다. 길가에는 비가 올 때마다 휩쓸려 내려온 흙속에 이태나 방치한 길가 풀들이 아스팔트 길 양쪽에 마음껏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있었다. 뿌리와 길가에 쌓인 흙무더기들과 씨름을 한다. 정말 내년에는 게으름피우지 말고 자주 자주 풀을 뽑아야지.


100미터도 채 안 되는 길가를 두 시간이나 걸려 히노끼싱하는 사이, 단체로 봉고차타고 추석명절 장보러 가시는 동네 분들. 버스 타러 나오시는 어르신들. 경운기타고 밭에 가시는 어르신 내외분. 트럭에 갖가지 야채를 싣고 장터에 팔러 가시는 동네 분. 출근하는 앞집 총각... 많은 동네 분들이 인사하며 지나가신다.
그래. 우리가 찾아가서 인사하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동네 히노끼싱을 하니 동네분들이 먼저 인사하고 다가오시는 구나. 이곳에선 이게 더 좋은 전도이지.’ 싶었다.
예전에 우리 동네사람들은 거의 다 신앙을 하였지만 포교소의 사정이 생기면서 거의 대부분이 떨어져 나갔다. 그렇게 신앙에 회의를 느끼고 발길을 끊은 분들에게 이길의 이야기는 전혀 먹히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말을 할까 봐 먼저 선수를 치고 든다. 그래서 이곳에선 히노끼싱이 최고다! 말로는 전혀 씨가 먹히질 않으니 몸으로 보여주는 정성. 진실한 몸짓인 히노끼싱이 답인 것이다. 그래서 한 달에 한번 꼴로 바닷가 청소를 하고 동네길, 무더위쉼터인 마을 정자에 풀뽑기, 쓰레기줍기 히노끼싱을 하고 있다.

“10분 하자고 꼬셔놓고 2시간이 됐네. 우리 색씨. 보통이 아닌데~" 하고 남편이 웃는다.
"? 어버이신님한테 배웠어요. 큭큭큭. 어버이신님은 사흘만 이길을 걸어라 하면서 우릴 꼬시잖아요. 사흘만 하라고 해 놓고 하다보면 그게 10, 20, 평생이 되고 자손들에게도 이어져서 영원말대가 되잖아요."
"그렇지. 일단 시작하도록 어떻게든 꼬셔서 시작하게 하고, 하다보면 맛을 알게 되니 그 즐거운 맛에 그만 둘 수 없는 이길이지."
"그렇게 달래고 꼬시고 하는 것을 가만 생각해 보면, 다 우릴 귀여워하시는 어버이마음이신 것이니 참으로 고맙지요."
히노끼싱 후 서로 마음나누기를 한다.

추석명절맞이로 동네길 히노끼싱을 하니 기분이 엄청 좋아진다.
고설선집에서도 용솟음치는 마음은 신의 뜻에 맞는 것이라고 하셨지. ‘신의 마음과 내 마음이 하나 될 때 그 증거로써 용솟음친다고 하셨다. 오늘 내 마음이 용솟음치는 걸 보니 어버이신님께서 엄청 기뻐하시는 거 같다.

세상으로부터 저 사람이야말로 과연 그렇구나, 과연 훌륭하구나 하는 말을 들을 만한 마음을 가지고 신한줄기의 길을 걷는다면 무엇이든 선명하게 수호하마.

1890. 5. 6

곳곳에서 과연 훌륭하구나 하는 말을 듣게 되면, 당장에 된다 안된다 말할 필요 없다. 1895.11.14.

 

우리가 한 일은 비록 아주 조그만 동네 한 귀퉁 청소지만 천리교가 있어서 온 동네가 환해져서 좋다하시는 어르신들 이야길 들으니 기쁘다.
동네마다 우리 동네는 천리교가 있어서 깨끗하고 환하다고 하는 소릴 듣는다면 정말 좋겠다! 천리교가 있어서 우리 동네가 더 살기 좋은 곳, 살고 싶은 동네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겠다. 그러면 세상 사람들은 서로 천리교 교회, 포교소를 자기 동네로 유치하려고 난리치지 않을까?

 

이길을 가겠다고 작정한 포교사라면 누구나 로망이 있다.

3년천일 포교를 정말로 열심히 교조님 가르침대로 해 보고 싶은 것이다! 모든 것을 잊고 자신의 삶을 걸고 오로지 전도포교에만 집중하여 이길의 맛을 제대로 맛보고픈 바람이 있다고 생각한다. 즐겁게 사는 길, 운명을 바꾸는 길, 행복하게 사는 길이 이길이라는 자기 확신을 확인하는 일, 자신의 신앙신념을 확인하는 일 말이다.

나 역시 두려움도 있었지만 3년 천일은 정말로 듣기만 했던 선인들의 이야기처럼 그렇게 해 보고 싶었다. 하지만 이런 저런 일로 그 바람은 허락되지 않았다. 그 점은 이길을 가면서 늘 아쉬움으로 남았고 언젠가는 3년천일, 뒤도 옆도 돌아보지 않고 포교전도만 하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그렇게 십년이 지나고 이십년이 다 돼가는 최근에야 포교전도에만 집중할 수 있는 수호를 어렵게 어렵게 조금씩 받아가면서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그렇지만 근기가 약한 나는 전도를 할 때 어버이신님의 꾀를 배워서 매일 5분 이상 전도한다고 작정한다. 전도지도 하루에 100장 전하기이런 작정은 안 한다. 우리 동네 같은 시골에선 사람 만나기가 하늘의 별따기 같아 전도지 한 장 전하기도 쉽지 않다. 게다가 동네 분들에게 매일 같은 전도지를 전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매일 1장 이상 전하기로 작정한다.

그렇게 쉽게 할 수 있을 듯한 일을 먼저 작정한다. 왜냐하면 마음으로 먼저 지쳐서 하기 싫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다. 하기 싫어하는 자신을 꼬시기 위해서인 것이다.

분명히 매일 2시간 이상, 아니면 하루 종일 하겠다고 작정하면 힘들어서 한두 달, 길어도 100일을 못 넘길 것을 아니까.

하루 종일 전도하는 것이 전도지, 잠시 하는 것은 전도가 아니다고 주장하시는 엄청난 내공의 선배선생님들도 계시지만 난 그런 그릇이 못 되는 것을 스스로 잘 안다. 내 그릇으로는 그런 작정은 30, 100일은 커녕 작심삼일이 되고 만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최소한 3년 천일 작정하려면 작은 것부터 차츰차츰 큰 것으로 실천해 나가서 자신의 능력, 마음그릇을 키워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지도말씀에

천 년이나 2천 년을 걸은 것은 아니다. 불과 50. 50년 동안의 길을, 50년이나 30년이나 걸어라 하면 안 될 테지. 20년이나 10년을 걸어라고도 안 한다. 그저 10년 가운데 셋이야. 사흘 동안의 길을 걸으면 되는 거야. 기껏 천 날의 길을 걸으라고 하는 거야. 천 날의 길이 어려운 거야.

모본의 길 닦아 두었다. 모본은 곁에 있다. 누구든 단지 사흘 동안만 견디면 모본의 길이... 사흘 동안을 넘기지 못할 리는 없다. 어떠한 자라도 모본대로의 길을 걷는다면 모두 모본과 같은 리로 받아들인다. 단지 사흘 동안이야. 어떤 사흘인지 모르겠지.

모본의 길을 걸으면, 짧은 기간 동안에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구나. 전에는 너나들이하고 지냈던 터인데 이제 와서 저런 분이 될 줄은 미처 몰랐다고 세상에서 말하는 것은 단지 사흘 동안이야. 사흘만 견디면 어떠한 길이 있을지 모른다. 이쪽도 좁고 저쪽도 좁다. 이쪽도 넓히고 저쪽도 넓히려 한다.

사흘 동안만 견디면, 지금의 셋이 사흘 지나면 얼마가 될지 모르는 거야. 하루하루 날이 다가온다. 누가 보든지 어디에 나가든지 실제로 보아도 과연 그렇구나 하는 날은 단지 3년 동안인 거야. 3년 지나면 훌륭하게 되는 거야.

3년의 길은 삽시간이야. 3년을 사흘 정도로 생각하면 삽시간이야. 3년만 견디면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다. 고작 그만한 것도 모른다. 그래서 모두들 하나하나 진실을 모아 주도록. 불과 3년 동안을 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일이 나타난다. 단지 사흘 동안이야. 3년만 이 길을 걸으면 부자유하려고 해도, 고생하려고 해도 못하게 되는 것이다. 단지 사흘 동안이야. 1889. 11. 7

 

어버이신님께서 우리에게 50년도, 30년도, 10년도 아닌 3년 천일, 열 가운데 셋, 사흘동안의 길을 걸어라고 하신 깊은 의미를 요즘에야 절실하게 깨닫게 된다. 그것은 정말로 3년 동안만 그렇게 걸어라고 하신 것이 아니다. 물론 3년 천일을 그렇게 걸으면 더 이상 고생하려 해도 고생하지 않는 길이라고 하셨지만 그보다는 고생을 더 이상 고생이라고 느껴지지 않게 되는 것이라고 깨닫는다. 아무리 어려운 길도 걷다보면 어느새 힘들고 어렵다기보다는 즐길 수 있는 날도 오기 마련이며, 스스로 내공도 쌓이고 근력도 붙어서 힘들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길을 걸으며 전도구제 역시 3년 천일 꾸준히 노력하며 지나면 그것이 몸에 붙는 습관이 되어 나중에는 자연스레 되는 것이리라.

 

요즘 천리향이라는 포교구제하는 용재들의 모임을 활발히 하고 있다. 이 모임은 이길을 알리는 전도를 위한 모임이다. 어떻게 해야 용기를 잃지 않고 매일 전도를 할 수 있을지 서로 배우며 격려하여 힘을 주고 받는 모임이다.

이 모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어느 분의 예를 들고 싶다.

역사로 진 돈을 갚기 위해 건축 일을 하며, 가끔 전도를 하거나 신님일을 하고 보통 때는 조석근행도 소홀히 하였단다. 그런데 어떤 일을 계기로 매일 5분 전도를 작정하였다. 새벽 일찍 일을 나가는 이 분에게 전도할 시간이란 저녁시간 뿐이었는데 하루종일 육체노동을 하고 와서 전도하기란 정말로 싫었단다. 파김치가 되어 들어와 씻고는 드러눕기 바빴는데 다시 전도복장으로 단정히 갈아입어야 하니 귀찮고 힘들고 짜증도 났단다. 그런데 어쨌든 하겠다고 약속하고 주변에도 다 공표해 놓은 상태, 게다가 매일 전도하는 인증샷까지 올리기로 해 놓았으니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귀찮아하고 힘들어하던 5분 전도가 사흘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고 열흘이 지나니 귀찮다는 마음없이 자동으로 하게 되더란다. 일하고 와서 씻고 밥먹고 그냥 드러눕는 습관이 전도하는 습관으로 변한 것이다.

시간도 딱 5분만 하던 것이 조금씩 늘어나고, 다니던 거리도 차츰 늘어나고 알아보고 인사하는 사람,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까지 생겨났다. 그리고 한 달 만에 하루 종일 포교를 작정하고 일을 그만두는 수호를 받았다고 한다. 요즘은 매일 전도를 하고, 하루 종일 전도를 하시는 날도 많으시다.

이분을 보면서 정말 하루 5분이라도 매일 하는 것이 중요하구나 절감하였다. 그것은 하나의 시작이고, 작은 씨앗이기 때문이다. 정말로 작은 소나무씨앗에서 낙락장송 소나무가 되듯이, 이 씨앗이 나날의 노력으로 얼마나 크게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이 두 가지 경우를 보면서

어버이신님께서 고작 사흘동안의 길을 걸어라고 하신 것의 깊은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사흘동안의 길을 걸으며 구제하는 즐거움을 맛보게 되고, 자신의 악인연을 납소하고 자신도 구제받는 즐거움을 알게 된다. 그러면 그만둘래야 그만둘 수가 없어진다. 이보다 더한 즐거움, 이보다 더 가치 있는 삶, 이보다 더 큰 행복은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