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51호
입교187년(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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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이 미래다

(교육이 미래다 33)

교사 리더십의 개발과 적용(3)

정선일(교육부실장, 산청교회장)

 

4. 교회교육 지도자는 무엇을 갖추어야 하는가?

 

그러면 교회교육 지도자는 무엇을 갖추어야 하는가? 나는 여기서 본을 보이는 신앙인격, 가르침에 대한 소명과 정열, 인간 성장에 대한 깊은 이해, 그리고 사랑과 열정을 강조하고자 한다.

 

4-1 본을 보이는 건전한 신앙인격

교사는 건전한 신앙인격을 지닌 자로 모든 말과 행동으로 학생들 앞에 서 있으며 학생들을 이끌어 가야 한다. 이미 많은 학자들이 교육에서 모범을 보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밝혀주었거니와 교회교육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교사는 그 자신이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 교조님은 50년에 걸쳐서 직접 어버이신님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신 진리의 화신이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교사는 신님의 가르침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이보다 교사는 가르침의 구현자(具現者)가 되어야 한다. 교사는 모든 학생들과의 접촉에서 천리인의 인격과 향기를 나타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위대한 스승이신 교조님은 신의 계시를 받으신 후 모든 것을 남을 위해 쓰시며 적빈에 빠지셨다. 인간적인 면으로 보면 매우 어렵고 힘든 삶을 살았다. 그리고 집안사람과 주위 사람들로부터 무수히 많은 비방과 조롱을 받았으며, 관헌의 박해로 17~8회나 옥고를 치루기도 하셨다. 그렇지만 형용할 수 없는 즐거움을 가지고 살았으며 감사가 떠나지 않는 삶을 살았다. 세계 인류를 구제하려는 일념아래 가난의 구렁텅이에 빠지셨으나 그런 가운데서도 더욱 용솟음치며 몸소 즐거운 삶의 모본을 보이셨다. 또한 50년간에 걸쳐 일러주시고 혹은 붓으로 적으시는가하면, 어버이신님의 자유자재한 섭리를 직접 보이시고 또 몸소 행동으로 나타내셨다. 위대하신 교사인 교조님은 말로만 가르치신 것이 아니라, 행하시면서 가르치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교조님은 인간적인 면에서 볼 때 적게 받은 사람이요 그의 일생이 고난과 고통의 연속이었지만, 어버이신님의 가르침을 지킴으로서 모든 것에 감사할 줄 아는 삶을 사셨다. 일생을 어버이신님의 가르침을 지키고 뜻에 따라 살아가신 분이 교조님이셨다. 우리는 진실로 즐거움에 넘치는 생활을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극빈의 길을 걷고 모본의 길을 남겨 주셨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따라서 교사는 그 자신이 메시지가 되어야 한다. 또한 교사도 실수를 할 때가 있을 것이다. 실수를 인정하고 용서를 구할 때, 오히려 학생들과의 신뢰회복에 좋은 전기를 갖게 될 수도 있다.

 

4-2 가르침의 소명과 열정

교사는 어떤 사람인가, 그리고 교사가 무엇을 행하는가 하는 문제는 분명히 교사와 어버이신님과의 관계 속에서 규정되는 일이다. 따라서 교신자들은 교사의 모든 교육을 어버이신님의 소명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교사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가르치는교육이 어버이신님이 주신 일로 알고 받아들여야 한다.

교사가 자신이 하는 교회교육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하고 즐거움을 얻지 못한다면 그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란 상당히 어려울 뿐만 아니라, 거의 불가능하기까지 하다. 가르치는 일은 그 자체가 본질상 그 수행의 즐거움을 요구한다. 이것은 심리학적으로도 타당하다. 즉 교사의 교회교육이 자기 자신을 자극하는 것일 경우에, 그의 가르침은 쉽게 학생들의 긍정적인 반응을 유발하게 되는 것이다.

어거스틴(Augustine)은 이런 말을 한 일이 있다. “사실 우리 스스로가 가르치는 일에 즐거움을 느끼고 있을 때, 사람들도 큰 즐거움을 가지고 우리들의 말을 듣는다.” 이 말은 사실이다. 가르치는 일에 즐거움과 보람을 느끼지 못하는 교사는 교육내용과 학생 사이에, 그리고 자신과 학생 사이에 심리적인 장벽을 쌓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독일의 교육학자인 헤르만 노올(Herman Nohl)은 교육의 핵심을 교사와 학생의 관계로 보고, 이를 교육학적 관계라는 개념으로 정리하였다. 교육학적 관계는 교육받는 자와 교육하는 자 사이의 인격적 관계가 그 중심이 되며, “성숙한 인간이 변화되어져 가는 사람들과 맺어 가는 정열적인 관계라고 말하였다. 교사는 성장도상에 있는 학생들을 위하여, 그들이 최선의 삶의 모습을 이룩하도록 정열적으로 간섭하고 도와주는 사람이다. 예일대학교의 교수였던 펠프스(William Lyon Phelps)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내가 가르침에서 느끼고 있는 즐거움을 다른 사람에게 모두 명백히 나타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다른 어떤 방법으로보다는 가르침으로 생활한다. 내가 생각하기로는 가르침이란 단순히 작업이나, 직업, 혹은 과업이거나 투쟁이라기보다는 열정(a passion)이다. 나는 가르치는 것을 사랑한다.” 교사는 이런 소명과 열정의 소유자여야 한다.

 

4-3 인간성장에 대한 깊은 이해

모든 가르침은 인간을 대상으로 하며, 교육은 더욱 더 인간의 모든 면(전인적 인간)에 관심을 표명한다. 따라서 교사는 인간성장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필요로 한다. 좋은 교사는 이해하는 교사이다. 학생들의 성장과 발달의 일반적인 특징,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영적 발달의 특징, 요구와 관심 및 수준에 대한 세심한 배려와 관심은 좋은 교육에로의 첩경이다. 이해가 없는 교육은 그 자체가 폭력(헨리 나웬, Henri Nouwen)이며 강요일 뿐이다. 이해는 어려운 일이다. 입장을 바꿔 생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다른 사람이 될 수 없으며, 이해란 어쩌면 다른 사람의 아래가 되는 노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사는 학생을 이해하는 노력을 쉬어서는 안 된다.

어린이를 이해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어린이를 이해한다는 것은 어린이에게 관심과 흥미를 갖는 것이다. 어린이를 한낱 귀찮은 존재로만 취급을 한다면 어린이에 대한 이해는 생기지 않을 것이다. 둘째, 어린이를 이해한다는 것은 어린이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흥미를 느낄 뿐만 아니라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우정을 나누는 시간이 필요하다. 셋째, 어린이를 이해한다는 것은 어린이에 대해서 알기를 원하는 것이다. 이해한다는 것은 상대방의 입장을 알아주는 것을 의미한다. 넷째, 어린이를 이해한다는 것은 곧 어린이를 섬기는 자세이다. 진정한 이해는 상대를 누르고 무시하고, 억압하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상대방의 아래가 되는 것이 참된 이해의 길이다.

왜 이해해야 하는가? 이해는 교육의 기본 요소와 관련된다. 무엇보다도 이룰 수 없는 목표는 공허한 것인데, 피교육자에 대한 이해는 타당하고 실현성 있는 목표를 세우는 일에 도움을 준다. 또한 무엇을 가르쳐야 할 것인지를 선정하고 조직하는데 관계하며, 효과적인 방법의 선정에 도움을 준다.

 

4-4 사랑과 희생

어버이신님과 교조님을 흠모하고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그 흠모와 사랑의 동기로 가르치는 자가 참된 교사이다. 가르침을 위한 가르침, 마지못해서 행하는 가르침이 아니라, 진정으로 나를 쏟아주는 용기와 각오가 필요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말의 미사여구(美辭麗句)가 아니라 진정한 사랑의 동기인 것이다.

무엇보다도 교사는 학생들을 위한 기원을 어버이신님께 드려야 한다. 무엇보다도 기원은 교사의 교육활동을 통합하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교사가 매일 어버이신님 앞에서 학생들을 위해 특별한 필요를 아룀으로써 하루를 시작한다고 생각해 보라. 이런 기원이 없이는 참으로 가치 있는 것을 이룰 수 없다. 그러나 기원이 있으면, 어버이신님께서만 아시는 크고 많은 것들을 수호해 주실 것이다. 교사가 자신에게 맡겨진 어린 생명을 위해서 기원한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다. 그것은 언제나 교사 자신의 능력으로는 어린이의 생명을 신앙으로 육성할 수 없다는 신앙의 겸손을 뜻하며, 살리어 주시는 생명의 주인이신 어버이신님을 인정하는 태도이다.

교육의 소망은 사랑을 회복하는 일에 달려있다고 보여진다. 사랑으로 가르치고, 가르침에 사랑을 공급하는 일이다. 우리 주위에는 상처받아 사랑을 갈구하는 학생들이 너무나 많지 않은가? 무엇보다도 우리는 어버이신님의 사랑으로 무장되어야 한다. 우리가 무엇을 많이 해 내는가는 중요한 일이 아니다. 사랑의 동기로 사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5. 나오는 말

 

리더십은 한 두 사람에 의해서 독점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집단 구성원이 함께 수행하는 기능이다. 따라서 좋은 지도자는 리더십을 독점하지 않으며, 이를 분산시키고, 모든 구성원들이 최선을 다해서 집단의 목표에 참여하도록 이끌어 가는 자임을 명백히 해야 한다. 나는 이끌어 가는 일(leader-ship)이란 결국은 따라가는 일(folldwer-

ship)임을 강조하고자 한다. 결국 천리교 지도자는 우리의 참 지도자이신 교조님의 모본을 따라가는 일이며, 이것으로부터 모든 리더십이 파생되는 것이다.

여기서 지도자의 비전에 대해서 덧붙이고자 한다. 교회의 미래와 소망도 결국은 교육에 크게 의존할 것임에 틀림이 없다고 많은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교육은 물려받은 신앙의 으뜸하루와 꿈과 이야기를 후손들에게 전해 주는 일이다. 넉넉잡아 100년 후에 우리는 아무도 여기에 없을 것이다. 사람은 가고 세대는 변하고 이 자리에는 우리의 후손들이 모여서 근행을 올릴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 아주 아찔한 느낌을 받게 되면서, 우리가 우리의 후손들에게 남겨 주어야 할 가장 위대한 유산은 돈이나 명예나 재산이 아니라, 아름다운 신앙의 유산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후손을 위해 기원의 씨, 사랑의 씨, 신앙의 씨를 뿌려야 한다. 그러면 우리의 후손들은 그 열매를 먹으며 살게 될 것이다. 자기 주소를 쓰고 우체통에 넣은 편지가 며칠 후에 정확히 자기 앞에 배달되듯이, 어버이신님은 우리가 뿌려놓은 씨앗대로 후손을 위해 싹이 튼 열매들을 우수한 우편 망을 통해서 그들의 생애에 내려지게 할 것이다. 그들은 우리들이 뿌린 씨의 열매를 먹으며 살게 될 것이다.

우리는 물려받은 신앙의 아름다운 전통을 후손들에게 전수해 줌은 물론, 우리 스스로가 아름다운 신앙의 전통을 만드는 일에도 애를 써야 한다. 단순히 물려받은 신앙의 내용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우리는 선배선생님들이 피땀 흘려 세워준 아름다운 신앙의 유산을 즐기고는 있으나,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넘겨줄 신앙의 유산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닌가? 이것은 결국 우리의 자멸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우리가 즐길 선배선생님의 피와 눈물은 이제 고갈되고, 겉만 화려한 무덤이 되고, 소리 나는 꽹과리가 된 것은 아닌가? 우리는 더 이상 선배들의 뼈를 우려먹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우리의 역사적 사명을 인식하고, 물려받은 신앙의 유산을 후손에게 전하여 주는 일과, 아름다운 신앙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일에 더욱 큰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우리의 후손들이 우리의 신앙을 추억하게 하자. 선배선생님이 걸어간 길을 흠모하게 하자. 이 안에 있었던 어버이신님의 은혜의 이야기와 교조님 모본의 이야기와 신님의 뜻을 묵묵히 따라가며 순종했던 우리들의 이야기를 전해주도록 하자. 공고한 우리의 후대에 그들에게 용기를 주는 신앙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자. 우리의 후손이 또 그 자녀에게 우리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그런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다.

교육이란 언제나 눈물을 요구하는 교육활동이다. 신악가에 이 터전은 신님의 전답이므로 뿌려놓은 씨앗은 모두 싹튼다. 여기는 이 세상의 전답이오니 나 역시 부지런히 씨를 뿌리자.(신악가 79~10)라고 가르쳐 주셨다. 교육 지도자들에게는 울며 씨를 뿌리는 자에게 주어지는 풍성한 수확에 대한 비전이 요구된다. 농부들은 불어오는 찬바람을 마다않고 밭으로 나간다. 그들은 앞으로 다가올 풍성한 수확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교회교육의 어려운 전환점에서 우리는 교육을 통한 새로운 발전을 기대해 보면서, 바로 이러한 꿈을 꾸는 과제가 교회교육 지도자들에게 주어져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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