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50호
입교187년(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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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교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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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용재연성회 인사말씀

 

인연자각을 통한 마음의 역사

 

이상봉(교회장)

 

- 발췌: 납득이 되지 않는 것을 납득을 하면서 가는 길이 이 길이다. 지나갈 수 없고, 안 되는 가운데를 지나가는 것, 납득할 수 없는 것을 납득하면서 가는 것이 이 길이다. 갈 수 없는 곳을 가고, 다스려지지 않는 곳을 가는 것은 사람의 눈으로 보면 무리한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무리한 일을 들으면서 걷는 것이 이 길이다.

 

오늘 용재연성회에 참가하신다고 수고 많으십니다. 지금부터 잠시 말씀을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잘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4)

 

신앙에 대한 목표의식

 

일전에 아는 사람들과 아이들 교육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공부를 잘해서 좋은 학교에 갈까에 대해서요. 마침, 그 자리에 제 동생이 있었습니다. 제 동생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가는 대학의 교수입니다. 거기 입학하는 학생들을 보면 서울의 유명한 과학고나 외고 같은 특목고 출신들이 70%정도 차지하고, 외국에서 온 학생들이 20%를 차지하고 지방에서 온 학생들은 5%정도라고 합니다. 그 아이들이 어떻게 해서 공부를 잘하게 됐느냐고 물어보니, 그건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것보다 학교에 들어와서 얼마나 열심히 하느냐.’하는 것이 문제라는 겁니다. 고등학교 때 잘했던 것 보다, 대학에 들어와서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그렇게 공부를 잘할 수 있는 이유는 절박함이라고 합니다. 머리가 아무리 좋아도 소용없고, 머리가 조금 나쁘더라도 절박함이 있으면 공부를 잘할 수 있게 되더라는 겁니다. 예전에 우리가 공부를 할 때를 보면, 그런 이유는 충분히 많이 있었습니다. 우선,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서울에 가서 좋은 직장에 취업해서 어려운 집안을 일으켜 세우려는 절박한 이유들이 있었던 겁니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공부를 해야 할 그런 절박함은 없습니다. ‘부모님이 좀 사는데 그 재산 물려받아서 편하게 살면 되지……하는 생각에 공부를 해야 할 절박함이 없다는 겁니다. 좋은 고등학교를 나오고 머리가 아무리 뛰어나도 대학에 들어와서 절실함이 없으면 자기가 공부를 해야 할 이유가 없어지기 때문에 결국 경쟁에서 뒤처지게 되어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어디서 공부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고, ‘목적을 확실히 가지고 있는 사람이 결국 끝까지 가게 되어 있다.’라는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우리도 비슷한 입장에서 우리가 신앙을 왜, 하느냐?”에 대한 질문을 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초대의 신앙은 아닙니다만, 초대들에게 있어 그런 질문을 하게 되면, “없는 목숨을 구제받기 위해서”, “인연을 끊기 위해서라는 식의 대답이 바로 나올 겁니다. 그만큼 신앙의 목적이 확실합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대가 바뀌어가는 지금의 시대에서 초대선생들과 같은 절박함은 없습니다. 그래서 신앙에 대한 애착이나 성실성이 초대들과 비교할 바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듣곤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하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내가 신앙을 왜 하고 있지?’ 하고 반문을 해보고 그 대답에 대한 목표를 확실히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학생들이 확고한 목표를 가지고 있어야 공부를 잘하듯이 우리도 그런 목표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신앙을 해서 가치를 찾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좋으려고 하지.” 하는 식의 막연한 목표를 가지고는 학생들이 공부를 해도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없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인연이란

 

인연을 끊는다고 생각해보면, ‘인연이 무엇인가?’라고 자신에게 묻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저에게도 증조부님, 할아버지, 할머니도 계셨지만, 그 분들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할아버지(초대회장님)의 경우도 저의 기억에는 손자들을 한없이 사랑해주시는 분이었다는 것 외에는 아는 것이 많지 않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초대회장님에 대해 적어놓은 책을 통해 초대회장님에 대한 좋은 얘기들은 알 수 있지만, 그 이면에 대해서 아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느끼는 인연이라고 하면, 어떤 일에 대한 사회현상을 볼 때, 어떤 사람은 아무런 생각 없이 지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저건 문제가 있다.’라고 생각하고 짚고 넘어가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런 사회현상에 대해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그 사람의 머릿속에 문제가 있는 것이지, 일어나는 사회현상 자체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겁니다. 그저, 물이 흘러가듯 일어나는 일일 뿐입니다. 그걸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내 생각이 문제인 겁니다.

이런 게 인연의 모습입니다. 무엇이든 보고 들을 때, 직감적으로 나에게 떠오르고 느끼는 것이 나의 인연입니다. 이 세상에 어떤 원칙이 있어서 그걸 어긋나면 문제가 되고, 그렇지 않으면 문제가 아니고 하는 건 없는 겁니다. 그 기준은 내 마음속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감정이나 느낌이 결국은 자신의 인연의 모습입니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내가 살면서 즐거워하기보다 원망하고 분노하는 일이 많으면 많을수록 나에게 그런 안 좋은 인연이 있는 겁니다. 남이 그러는 게 아니라, 나에게 그런 것들이 있어서 보여지는 모습입니다. 그걸 기준으로 나의 인연을 생각해보면, 떠오르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여러 사람과 만나는 인간관계에서 떠오르는 느낌들, 되어지는 일들 속에서 나타나는 모습들, 이런 것들이 모두 나의 인연의 모습들입니다. 거기에는 옳은지 그른지 시비를 따질 일도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그걸 생각해봤을 때, 내가 즐겁지 못하다면 즐겁지 못한 인연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겁니다.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마디를 만나더라도 힘차게 그런 걸 넘길 수 있는 것도 인연의 모습입니다. 자신의 인연을 아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인연을 알았으면, 그것을 끊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 겁니다. 자기도 모르는 자기를 알기 위해서는 주위의 사람들을 보고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산속에서 수행하는 스님들의 경우는 자신의 인연을 깨우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혼자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을 만나고 부대끼는 과정에서 자신의 인연을 조금씩 보아간다고 생각합니다.

 

천리교에서 인연을 알고 끊기 위해서 제일 중요한 실천이 전도입니다. 전도를 하면 여러 사람을 만나지 않으려야 만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속에서 자신도 모르는 자신을 발견해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마다 보이는 모습이나 느껴지는 생각이나 감정 속에서 내 인연의 모습을 떠올리고, 그것을 자꾸 끊어나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나중에는 어떠한 사람을 만나더라도, 극단적으로는 아주 진상인 사람을 만나더라도 별 일없이 넘어갈 수 있을 정도가 되면 인연이 끊어졌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마음이 복잡한 사람들은 작은 일에도, 아무 것도 아닌 것에도 복잡하게 생각합니다.

나에게 이런 일을 맡기는 것은 여러 사람을 보아가면서 내 인연을 끊어가야 하는 것이다.’라고 저는 느낍니다. 살고 싶은 대로 살자면 많은 사람과 안 만나고 안 부대끼고, 말도 별로 안 하고, 혼자서도 잘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반대의 모습의 현실에 부딪히는 것은 어버이신님께서 나의 인연의 모습을 끊어주시기 위해서 보여주시는 모습입니다. ‘이런 가운데서 즐겁게 살아가는 것이 내 인연을 끊는 길이다.’ 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만약에 마음이 쓰러지거나 좌절하게 되면 인연을 끊을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전도한 사람이 구제받는다. 라고 교조님께서 가르쳐주셨습니다.

고본 천리교교조전 일화편에 보면

18754월 상순, 후쿠이현(福井縣) 산도(山東) 마을 스가하마(菅浜)에 사는 에노모토 에이지로(榎本榮治郞)는 딸 기요의 정신병을 구제받고자 서쪽 지방의 사찰을 순례하여 제8번 하세관음(長谷觀音)에 참예하던 중, 찻집의 할머니로부터 쇼야시키 마을에는 산() 신님이 계신다.”라는 말을 듣고 바로 미와 마을을 거쳐 쇼야시키에 이르러 집터를 찾아와, 전갈인 에게 부탁하여 교조님을 뵙게 되었다. 그러자 교조님께서는

걱정할 필요 없다, 필요 없어. 집에 재난이 생겼으니 어서 돌아가도록. 가거든 온 마을 집집마다 들어가서 마흔두 사람을 구제하는 거야. ‘나무 천리왕님이라 부르며 손을 모아 신님께 정성껏 기원하면서 돌아다니는 거야. 남을 구제하면 제 몸이 구제받는 거야.”

라고 말씀하셨다.

에이지로가 개운한 마음으로 쇼야시키를 떠나 기즈(木津), 교토(京都), 시오즈(鹽津)를 거쳐 스가하마에 도착한 것은 423일이었다. 딸은 몹시 악화되어 있었다. 그러나 두 손을 모아,

나무 천리왕님.”

하고 되풀이 기원하고 있는 중에, 신기하게도 딸은 차츰차츰 잠잠해졌다. 그래서 교조님의 말씀대로 온 마을에 포교를 하러 다니며, 환자가 있는 집에는 거듭 몇 번이고 찾아가서 42명의 쾌유를 계속 기원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딸은 말끔히 수호 받아 쾌유되었다. 여기저기 수호 받은 집에서도 인사하러 왔다. 얼마 후 완쾌된 딸을 결혼시키고 그 사위를 양자로 삼았다.

에이지로와 딸 내외 등, 세 사람이 구제받은 사례를 드리고자 터전으로 돌아와서 교조님을 뵙게 되었다.

그때 교조님께서는 붉은 옷을 입으시고 백발을 뒤로 빗어 넘겨 묶어서 짧게 드리운, 단아하고 고상한 모습을 하고 계셨다고 한다.

(고본 천리교교조전 일화편 42. 남을 구제하면)

 

42명의 사람을 구제하는 거야. 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 사람들의 신상, 사정을 완전히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들을 위해서 빌어주라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주위에 괴로워하는 사람이나, 고통 받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위해서 우리가 빌어줄 수 있습니다. 열심히 남을 위해서 빌어준 결과 딸의 신상이 도움을 받게 됐다는 겁니다.

남을 도우려고 노력하는 것, 남을 위해서 빌어주고 기원을 하는 마음을 내는 것이 우리의 인연을 끊고 수호를 받는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조님 모본을 따라 걷다

 

우리가 자신의 인연을 깨닫고 인연을 끊기 위해서 가장 기본적으로 지켜야할 일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바로 교조님 모본의 길을 따라 걷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3대 진주님께서 적으신 만인의 모본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 보면 목차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제목만 읽어봐도 참고가 많이 됩니다.

우리가 사정이나 마디를 만났을 때, 인연을 느끼고 끊으려고 할 때, 이런 순서대로 실천해가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 목차 중에 첫째는 극빈에 빠지다입니다. 그 내용은 집착을 버리는 것입니다. 가난에 빠지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집착을 버리기 위한 것입니다. ‘어려움이라는 것은 자기 마음이 만들어내는 것이고, 문제나 사정도 자기 마음에서 만들어내기 때문에 그 마음은 집착에서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거 안 하면 안 되는데, 저건 저렇게 되어야 하는데...’ 하고 생각하는 한, 그렇게 되지 않고 원하는 대로 안 되면 계속 자기 마음속에 문제, 사정이 생기는 겁니다.

두 번째는 단노입니다. 걷기 어려운 것이 마음의 역사가 되는 것입니다. 납득하기도 어렵고, 받아들이기도 어렵지만, 그런 것들을 그대로 만족해서 걷는다고 하는 것이 마음의 역사가 되는 것입니다.

셋째, 되어지는 리를 즐거워하라입니다. 무엇이든지 일어나는 현상 그대로를 받아들이면서 그것을 즐거워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어버이신님의 세계로 받아들인다면, 고생을 즐기는 마음이 됩니다. 어려운 일이나 고생스런 일이 있어도 어버이신님의 섭리의 세계에 있어서는 아주 당연하게 일어나야 될 일들이 일어나는 것뿐입니다. 어렵고 고생스럽지만 내가 그 길을 지나가게 되면 낙이 있는 거야. 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고생 없이는 낙이 없다라는 진리가 그대로 통용되는 것입니다.

넷째는 신한줄기입니다. 가르침을 생활의 판단기준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천리교의 교리, 가르침을 판단기준으로 삼는다는 것인데, 100% 이렇게 해나가기가 어렵습니다. 보통, 신앙을 하는 사람도 평소에는 열심히 한다고 하는 사람도 인간마음은 70%, 신님을 따르는 마음은 3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마디나 사정을 만나게 되면 이것을 바꿔야 합니다. 적어도 70%는 신님의 뜻에 따르려는 마음의 작정을 해야 합니다. 실제로 신한줄기라고 하지만, 우리에게는 현실이라는 것이 있고, 현실에 부대끼면서 살아가다보면, 인간마음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교조님도 부엌에 들어가면 티끌이 인다.’라고 했습니다. 부엌이라는 공간은 사람이 먹고 살기 위해서 꼭 필요한 장소인데, 사람이 살아가게 되면 어쨌든 인간생각을 하게 되고, 티끌이 나게 되어 있는 것인데, 인간생각이 완전히 없이 산다는 것은 현실 속에서 살아가면서는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여러 종교를 하는 사람들 가운데, 천리교의 용재들은 신부님, 수녀님들이나 스님들처럼 가족을 거느리지 않는 것도 아니고, 살림도 하고, 가정과 교회가 결합되어 있는 환경 속에서 신앙을 하고 있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세속적인 생각으로 너무 빠지기 쉬운 환경에 있습니다. ‘신님의 길을 걷는다.’라고 하면서 인간생각에 빠지게 되면 자식의 앞날만 생각하게 되고, 신님의 길은 조금도 걷게 하고 싶지 않으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얼마 전에 집사람이 장모님 이야기를 해줬는데, “우리 어머니는 참으로 대단한 분이십니다.”라고 합니다. “, 그러냐?” 하고 물으니, 결혼 전에 직업이 아주 좋은 사람들과 여러 번 선을 봤다고 합니다. 한번은 큰 공기업에 탄탄한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선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쪽에서 결혼을 하자는 제의가 왔었나 봅니다. 그때, 장모님께서 당신과는 우리 딸을 결혼시킬 수 없습니다.”라고 했답니다. 그 이유를 물으니, “당신이 천리교 신앙을 하면 결혼을 시키겠는데, 기독교를 신앙하고 있기 때문에 결혼시킬 수 없습니다.”라고 했답니다. 상대방이 돈을 아무리 잘 벌어서 장래가 탄탄하게 보장되어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이 길을 가는 사람이 아니면 결혼시킬 수 없다.’라는 생각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던 겁니다. 이런 식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한 가지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게 바로 신한줄기라고 생각합니다. , 교회장이 되고, 포교사가 되고자 하는 것만이 신한줄기가 아니라, 이 길을 가는데 있어서 가치관을 삶 속에 키우는 것이 신한줄기로 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섯째는 이바지입니다. 진실한 씨앗을 뿌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바지라고 하는 것은 내 몸과 마음을 전부 엎드려 바치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이바지에 대표적인 사람이 본석선생 이었습니다. 집터의 일을 보러 다니던 본석선생님이 집터에서 가까운 이치노모토라는 마을에 살고 있었는데, 나중에 신님의 뜻에 따라서 집터로 이주를 하게 됩니다. 여러 마디를 만났을 때, 다른 사람들은 모두 집터에 발길을 끊었을 때도 본석선생님은 집터를 돌봤습니다. 설을 쇠러 모두 집에 돌아갔을 때도 본석선생님 만큼은 집터로 돌아와서 일을 봤다고 합니다. 나중에는 가족을 모두 데리고 집터로 이주하여 살게 됩니다. 모든 것, 몸과 마음을 다 바치고 노력하는 것이 이바지입니다. 이렇게 이바지를 하는 것이 진실의 씨앗을 뿌리는 것입니다.

여섯째는 어버이마음입니다. 언제나 상대의 입장에서 서서 생각하고 인간관계를 맺어가야 합니다. 어버이마음이라는 것이 상하관계도 아니고, 상대방에게 먼저 바라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내가 먼저 베풀려고 노력해야 하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가 상급과 산하 관계가 있지만, 산하의 입장에서 상급에게 어버이마음을 쓸 수도 있는 겁니다. ‘당신은 부모니까 나에게 이렇게 해줘야 한다.’라고만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은 모두 어버이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일곱째는 전도구제입니다. 절망하지 말고 좌절하지 말고 계속 실천해야 합니다. 전도, 구제가 안 된다고 절망하지 말고 계속 실천해야 합니다. 신상 사정이 다스려지는 것만이 구제가 아닙니다. 전도구제는 내 인연을 끊을 수 있는 것입니다. 실질적으로 상대의 신상사정이 다스려지는 것에는 연연하지 않아도 됩니다.

여덟째는 근행과 수훈입니다. 근행과 수훈은 태초의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한 것이고, 근행은 교회 가지고 있는 본래의 사명입니다. 교조님 모본의 길은 근행 완성의 길이었습니다. 근행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친필에 나와 있는 것과 표리일체입니다.

마지막으로 존명의 수호를 믿어야 된다입니다. 우리는 교조님이 활동해주신다는 것을 체득하고 몸으로 느끼고 마음과 말로 실천하고 이런 것을 최소한 3년간 실천하는 것, 괴로워하는 사람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것, 괴로워하는 사람들에게 근행의 손길을 내미는 것, 근행을 완성하는 것이 최대의 임무입니다.

위와 같이 만인의 모본에 나와 있습니다. 이 목차만으로도 교조님의 모본의 길을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디

 

우리는 교조연제를 향해서 각자 각자가 노력하고 실천하고 있지만, 활동목표로써 교조님이 걸어가 주신 모본의 길을 내가 얼마나 철저하게 걸어가고 있는지 되새기면서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길에서는 곧잘 마디시순이라는 말을 자주 씁니다. 각 기념제나 교조님의 연제도 마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디라는 말을 들으면 대나무에 있는 마디가 생각납니다. 여기서 마디라고 하는 것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교회본부 신전 마루를 걷다보면 널빤지에 검은색 옹이들이 박혀있습니다. 나무에서 가지가 뻗어나가는 자리를 잘라낸 자리입니다. 특히, 대나무에는 마디가 많이 있습니다. 만일, 대나무에 마디가 없다면 그렇게 높이 자라지 못합니다. 마디가 있음으로서 마디를 하나의 지주로 삼아서 큰 대나무가 버티고 있는 것입니다. 대나무는 성장이 아주 빠르기 때문에 자기 무게를 지탱하지 못해서 쓰러지게 됩니다. 그것을 막기 위해서 마디가 있다고 합니다. 마디가 있기 때문에 비바람이 불어도 부러지지 않고, 넘어지지 않고 높이 자랄 수 있게 해주는 게 대나무의 마디입니다.

우리 인생에도 많은 마디가 있습니다. 신상, 여러 가지 사정, 남에게 말 못하는 외로움이나 괴로움도 모두 마디입니다. 이런 마디가 있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이 조그마한 일에는 흔들리지 않고 넘어가면서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겁니다. 마디가 전혀 없이 성장한 마음이라고 하면, 조금의 풍파에도 마음이 뒤집어지고 맙니다. 요즘의 사회문제를 보면, 옛날 같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법한 젊은이들이나 청소년들이 저지르는 각종 이해하지 못할 사회문제들이 나타나는 것은 마디 없이 자란 세대들이 겪는 사회현상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 현상은 벌써 중국에서 예전부터 시작됐습니다. 중국에서는 1가구당 1명의 자녀만 호적에 올릴 수 있게 하고, 둘째 자녀는 법적으로 금지를 시켰기 때문에 1명씩만 낳은 자녀를 남자아이는 소태양이라고 하고, 여자아이는 소공녀라고 하며 애지중지 키우다 보니, 이런 아이들이 성장해서 남들과 적응하지 못하고 여러 가지 사회문제를 일으키게 되는 겁니다.

대나무의 마디가 있듯이 우리 인생에도 마디가 있습니다. 이런 마디를 어떻게 지나가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나무를 보면 마디가 나중에 갑자기 생기는 게 아니라, 대나무의 싹인 죽순 때부터 이미 생겨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디를 겪으면서 자라나는 것입니다. 마디 하나하나를 지날 때마다 길어지는 시기가 찾아오는 겁니다. 이 길에서도 마디에서 싹이 튼다.’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마디를 어떻게 준비하고 지나가느냐는 우리들의 마음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교조님 재세시에 어느 날 비가 많이 오던 날이 있었습니다. 한 청년에게 큰 통과 작은 밥그릇을 비가 내리는 앞뜰에 내어놓게 했습니다. 작은 밥그릇에는 금세 물이 차서 찰랑찰랑하게 되었고, 큰 통에는 크기에 비해 물이 얼마 차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교조님께서 그 청년에게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은 다 평등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마음의 리에 따라서 달라지는 거야.”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하늘의 혜택은 모두 평등하게 받고 있지만, 받아들이는 마음의 그릇에 따라서 각자 달라진다는 말씀입니다.

 

신님은 무리를 받아주신다

 

이 길의 유명한 선배선생님 중에 고설선생님이란 분이 쓴 책 중에 무리를 들어준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안 되는 가운데를 간다. 할 수 없는 가운데를 간다. 납득이 되지 않는 것을 납득을 하면서 가는 길이 이 길이다. 지나갈 수 없고, 안 되는 가운데를 지나가는 것, 납득할 수 없는 것을 납득하면서 가는 것이 이 길이다. 갈 수 없는 곳을 가고, 다스려지지 않는 곳을 가는 것은 사람의 눈으로 보면 무리한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무리한 일을 들으면서 걷는 것이 이 길이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항상 신님께 무리한 부탁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공부 못하는 자식도 공부 잘하게 해달라고 빌고, 도저히 낫기 힘든 병도 낫게 해달라고 부탁을 하고 있으면서 우리들은 자기 편한 일만 하고 있습니다. 형평에 맞지 않는 것 아닙니까? 우리가 무리한 일을 다스리면서 걷기 때문에 어버이신님도 무리한 부탁을 들어주시는 겁니다. 아주 공평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은 무리한 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돈을 많이 내는 것이 무리한 일입니까? 저는 마음을 신님께 맞춰가는 것이 우리 인간에게 있어 가장 무리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원망하는 마음을 버리자.’라고 하지만, 나와 뜻이 맞지 않는 사람을 보면 미워하는 마음이 솟아오르고, 원망하는 마음이 생기는데 그걸 안 하면서 가는 것이 얼마나 무리한 일입니까? 내가 잘 쓰는 마음을 안 쓰는 것이 무리한 일입니다. 그걸 자꾸 신앙을 하면서 부딪치면서 깨달아가는 겁니다. 현실적인 것을 바꾸라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내는 것, 자기가 좋아하는 마음을 신님이 좋아하는 마음과 맞춰가는 것이 사람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무리하게 들려질 수 있는 겁니다.

자기 마음을 바꾸는 것도 어렵습니다. 내 자식도 내 말을 잘 안 듣는데, 나 자신은 내 말을 잘 들어가면서 살고 있는가? 하고 생각해보면 정말 이런 부분이 의문이 듭니다.

우리는 나날이 어버이신님에게 여러 가지 무리한 부탁을 하면서 살고 있지만, 어버이신님께서 그것을 들어주시기 때문에 신님이 말씀하시는 것도 순직하게 받아들여서 걷는 것이 이 길입니다.

라고 고설선생님이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우리들도 앞으로 남아있는 교조130년제의 기간 동안 가까운 곳에서부터 수훈을 전하고 신기로운 수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합시다. 무리한 부탁을 해서 어버이신님께서 들어주실 수 있도록, 나도 신님의 뜻에 맞도록 노력합시다. ‘무리한 일이지만, 나도 신님의 말씀을 받들어서 나의 인연을 끊고 남을 돕는데 매진해 가야된다.’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이 시순, 마디는 교조130년제를 앞두고 우리 교회로서는 부지매입역사라는 큰 사업을 향해 가고 있는 시기입니다. 요즘과 같이 경제가 어렵고 사회정세 가운데는 어려운 일이지만, 이런 역사가 구제로 연결되고, 구제를 통해서 진실한 수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주셨으면 합니다.

이것으로 저의 이야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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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174년05월][부인회총회인사말씀]각 지역에서 어버이신님의 향기를-이옥희 2012.06.13
5 [175년05월]남영교회 3대 교회장 취임봉고제 야기대교회장님 인사말씀 2012.06.08
4 [175년05월][통권200호기념소감문]‘고성’ 통권 200호 발간을 축하합니다 - 전인수 2012.05.21
3 [175년05월][통권200호기념소감문]함께 공유하는 교회보가 되기를 - 김영진 2012.05.21
2 [175년05월][통권200호기념소감문]교회보 만들던 시절 - 정선일 2012.05.21
1 [175년03월]부인회 정기총회 인사말씀 - 이옥희 2012.0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