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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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경지수 59

 

척척척, 착착착

 

박지수

 

이 말은 내가 좋아하는 웃음치료사 이요셉님의 강의에서 나오는 말이다.

즐겁지 않더라도 즐거운 척 웃고, 행복한 척, 건강한 척 자꾸 웃음 짓다 보면, 어느새 몸에 착착착 붙어서 그것이 정말로 즐겁고 행복해 진다는 말이다.

<웃음운동법>이라는 책에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우리 뇌는 우리가 억지로 웃는 것인지, 실제로 즐거워서 웃는 것인지 구별하지 못한다. 어떠한 방식으로든 입 꼬리를 올려 소리를 내어 웃으면 우리 몸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게 된다. 실제로 즐거워 웃거나 억지로 웃거나 일단 웃기만 하면 기분을 좋게 하고 건강을 지켜주는 호르몬을 분비하는 것이다.

(웃음운동법 이요셉, 35p)

 

그렇게 '척척척'이 계속 반복되면 '착착착' 내 몸과 마음에 붙는다는 것이다.

몸과 마음에 길이 난다는 말이지. 물론 그렇게 붙이기 위해선 척하는 많은 시간들이 축척되어야만 한다. 이 길에서는 진실과 정성, 이것이 제일이라고 하지만 진실을 내는 일, 정성스런 행동, 그리고 구제하는 일에 길이 나지 않은 사람들에겐 ~척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이 든다.

 

뭐든지 반복으로 계속 하다보면 어느새 그것이 내 것(체질)이 되는 것은 당연하지. 반복을 한다는 건 습관이 된다는 것이고, 습관은 성격을 형성하게 되고, 성격은 운명을 만들게 되니까...

 

예전에 들은 이야기가 문득 생각난다.

아부도 10년이면 진실이 된다.” 처음 들었을 때는 무슨 저런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있나? 어처구니없다 싶었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깊은 묘미가 있다,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아부라고 생각되는 행동이나 말이라도 10년을 꾸준히 하다보면 그것이 몸에 착 붙어서 거짓, 아부가 아니라 진실이 된다는 것이겠지. 아니면 처음에는 아부로 했던 것이지만, 어느 새 진실이 되었기에 10년을 꾸준히 변함없이 해 올 수 있지 않았을까.

 

내가 경험한 ‘~척하기

오래 전에 연배가 높으신 어느 선생님의 행동이 몹시 거슬려서 미웠던 적이 있었다. 그것은 목욕탕에서 유난히 깔끔을 떨면서 주변을 불편하게 하는 행동이었다. 누구를 많이 미워하는 일은 별로 없는 일인데, 그런 까탈스런 게 너무나 미웠다. 게다가 자주 부딪히니 기분이 나빴다. 미움은 8가지티끌 중 하나인데 그 미움을 어떻게든 해결하고 싶어 기원도 하였다.

그때 한 가지 지혜가 떠오는 것이 그 분을 이해하고 친한 척 하기였다. 미움을 잠시 마음 한 귀퉁이에 제켜 놓고 내키지 않은 마음을 내서

어머나~ 소장님이 어쩌면 그리 깔끔하세요? 저는 깔끔한 게 잘 안되는데...

덕분에 여기가 깨끗해져서 참 좋아요.” 하면서 말을 붙이고 친한 척, 그분에게 공감하는 척을 했다. 내 미움을 어찌 해보려는 속셈이었지만 대 성공이었다. 그런 척하기를 한 두 번 하다 보니, 미움은 사라지고 그분의 행동이 이해가 되었고, 어느 새 그분과 정말 친해지고, 챙겨주는 친한 사이가 되었다.

보통은 감정이나 생각이 내 행동을 결정짓는 게 대부분이지만 내 경험처럼 때로는 마음 없는 행동일지라도 이런 척하기가 감정이나 생각을 바꾸게 만드는 일도 많은 것 같다. 그래서 마음에 걸리는 어떤 이에게는 더 친한 척을 해보기도 하는 데 언제나 그 작전은 성공적이었다. 친한 척하다 보면 정말 친해지는 것이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말은 여기에도 해당되는 것이지 않을까? 떡 하나 더 주고 싶은 건 사랑하는 아이지만, 미운 녀석에게 하나 더 주면서 관심을 보이고, ‘친한 척을 한다. 그러다 보면 그 아이가 밉기보단 사랑스러워지는 경험을 옛사람들도 한 것이 아닐까.

​​전도구제 활동 역시 이런 <척척척, 착착착>이 해당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매일 전도하는 것에 길이 나지 않아서 무진장 애를 쓰고 용을 썼다. 그렇게 매일 나가다 보면 어느 새 습관적으로 몸이 나가게 된다. 나가는 데 길이 나서 나가는 것이 몸에 착 붙게 되는 것 같다.

물론 아직도 나가기 싫어서 게으름을 피우기도 하지만...

그럴 때면 나가고 싶은 척, 좋아하는 일을 하는 척, 신나는 척 활짝 웃으며 전도를 시작한다. 척척척 하다가 어느 새 전도가 몸과 마음, 영혼에 착 찰싹 붙기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안녕하세요? 행복해지는 길, 천리교입니다.” 하면서 활짝 웃다보면 절로 행복해진다. 그 말과 자신의 함박웃음에 스스로가 행복해 지는 것이다. ‘흔히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기 때문에 행복해진다고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행복한 척, 신나는 척을 하다보면 어느새 행복해지고 재밌고 신나게 전도를 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전도를 하다보면 때때로 듣는 소리가 있다.

참 행복해 보입니다. 즐거워 보입니다. 그리 즐거우세요? 천리교 가면 그리 즐거워집니까?”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일단 전도에 성공이다. 이분이 천리교에 지금 바로 오는 것이 아닐지라도 천리교에 가면 즐거워지는 구나.’ 하는 즐거운 향기를 확실히 풍긴 것이니 시순이 되면 찾아오게 되리라 믿는다.

신님 일이 곧 내 일

얼마 전에 어떤 분이

"매일 이렇게 전도 활동하는 게 참 힘들죠? 신님일 한다고, 남 도운다고 노력하는 게 대단합니다. 많이 힘들지요?"하고 물었다.

마음속에서 불쑥 이런 말이 나왔다.

'아뇨. 힘들긴요. 그냥 이건 내 일상이고 내 일이지, 내가 뭐 커다란 희생하면서, 남을 위해서 하는 일이 아니랍니다. 신님 일이 곧 내일인 걸요. 내 삶인 거죠. 그리 힘든 것도 없답니다.'

스스로 놀라왔다. 어느새 이렇게 된 것일까. 물론 매번 그런 답이 나오지는 않겠지만 정말 스스로 놀라운 일이었다.

그 전에는 그런 말을 들으면

'힘들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이 있나요? 무슨 일이든 마찬가지지요. 어떻게 구제라는 것이 힘들지 않을 수 있겠어요?' 했다. 정말 놀라운 변화다.

용재가 되어 이길을 걷기 시작했을 때부터

나는 남을 돕는 사람, 신님 일을 하는 사람, 구제하는 사람.’이란 의식이 늘 붙어 있었다. 그것은 내가 구제하는 사람, 남을 돕는 자란 우월감이 붙어있는 교만한 마음이었다. 그래서 구제받아야 하는 사람들을 조금은 눈 아래로 보기도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그런 생각이 없어졌다.

아직도 미치지 못하는 일도 많지만 어느 순간, 구제한다는 마음조차 없이, 남을 도운다는 마음도 없이 이길을 즐겁게 가고 있는 것이다. 신님일과 내일이란 구별이 없이 하나 되어 내게 그냥 착 붙어서 체질화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고 신님이 바라시는 일을 억지로 하고 있다는 피해의식도 어느덧 사라져 버렸다.

 

<교조전 일화편 197. 일할 손은>

교조님께서는 언제나 다음과 같은 말씀을 들려주셨다.

“--- 전략-- 이 집터에 있는 사람도 자신의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밤낮 이렇게 해 볼까, 저렇게 해 볼까 하며 신경을 쓴다. 자신의 일이라 생각해서 하기 때문에 자신의 일이 된다. 이곳을 제 집이라 생각하고 자신의 일이라 여기면서 하면 제 집이 된다. ---후략--.”

라고 들려주셨다.

 

그냥 내일이라고 생각하면 피해의식, 억울함, 교만할 일도 없어지는 것 같다. 내일을 내가 하는 데 무슨 피해의식이나 억울함이 있겠는가. 자랑할 일도 아니니 교만할 거리도 없다. 나날이 그냥 신님일=내일을 즐겁게 해 나가는 것일 뿐이니까.

 

전도에 나서면 즐겁고 기쁘다. 전도지를 많이 전한 날도 기쁘고, 길가다 수훈을 전하고 말씀을 전할 기회가 되면 더욱 기쁘고, 어깨띠만 매어도 웃음이 배어 나온다. ‘그래, 역시 난 이길에 미친 거야. 교조님께 미친 거야. 교조님 따라쟁이 하다 보니 미친 거야.ㅎㅎㅎ이런 말을 자신에게 건네면서 흐뭇해서 웃는다.

 

요즘도 전도에 나서기가 즐겁거나 기쁘지 않은 날도 가끔은 있다. 그럴 때마다, , 바람 십전의 수호로 일분일초의 쉼도 없이 우리들을 보살펴주시고 살리워주시는 어버이신님의 수호를 생각한다. 만약 신님께서 귀찮고 고단하셔서 혹은 게으름이 나고 하기 싫어서 십전의 수호를 잠시라도 쉬어버리신다면 우리는 살 수 없다. 신님은 태초 창조 이래 지금까지, 그리고 하루 24시간, 1분의 쉼도 없으셨는데, 내가 기껏 ‘5분 전도라도 못한다면 정말로 죄송한 일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그러면 마음에서 부끄럽고 죄송한 느낌이 들고 5분을 못해?!’ 하는 마음이 되어 전도에 나서게 된다. 그렇게 하기 싫은 마음을 달래서 전도에 나서면 어느새 얼굴 표정은 환해지고 (전도하며 사람을 만나면 무조건 먼저 환하게 웃어야 되니까마음은 즐거워진다. 즐거운 척을 하는 것이다. 하고 싶은 척, 신나는 척을 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5분만 해야지했던 것이 30, 1시간, 두 시간으로 늘어난다일단 게으른 인연에 사로잡힌 마음을 달래서 시작만 하면 그 뒤는 쉽다.

 

그렇게 내 몸과 마음에 완전히 붙질 않은 이길의 가르침과 전도구제를 착착착 붙이려고 오늘도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