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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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교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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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하나 53

 

여덟가지 티끌과 마음청소 40

 

 

이 시 중

2) 교만의 여러 모습

교만의 모습은 여러 형태로 나타납니다. 우선 삼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는 체, 잘난 체, 있는 체가 바로 그것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아는 체합니다. 잘 안다고 자랑하고 남의 의견을 무시하거나 반대합니다. 머리가 좋다고 뽐내고, 남을 깔봅니다. 남의 잘못을 잘 꼬집고, 트집을 잘 잡고, 함부로 바보 취급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잘난 체합니다. 잘났다고 우쭐대고 자만하고 허세를 부립니다. 남이 잘 된 것은 모두 자기 덕분이라고 뻐깁니다. 잘못하게 되면 비웃고 비난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있는 체합니다. 부나 지위가 있다고 거들먹거리고, 남을 업신여기고, 함부로 대하고, 짓밟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남을 부리고 끌고 다닙니다.

더 나아가 교만한 사람은 몰라도 아는 체 하고, 못나도 잘난 체 하고, 없으면서도 있는 체 합니다. 거짓과 허세로 자기를 무장합니다. 모르는 것을 숨기고, 못난 모습을 숨기고, 없는 것을 숨기는 버릇이 있습니다. 자기 결점을 숨기는 것입니다. 그 만큼 진실하지 못합니다.

 

남보다 잘 알고, 잘 나고, 많이 가진 것만으로도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이미 남한테는 티끌이 일어나게 만듭니다. 시기심과 질투심과 경쟁심을 자극합니다. 그런 까닭에 그이가 아무리 잘 알고, 잘 나고, 많이 가졌다 해도 인정해 주려는 마음이 없고, 칭찬해 주는 마음이 없고, 대접해 주려는 마음도 없습니다. 오히려 시기 질투하여 불행하기를 바라고, 실패하기를 바라고, 좌절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자리 잡습니다. 그래서 할 수만 있다면 뭐라도 트집을 잡아 비난하고, 험담을 합니다. 혹은 은근히 방해하고, 뒷발 걸어 넘어지게도 하지요.

그렇기 때문에 잘 알고, 잘 나고, 많이 가질수록 더욱 낮아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미 잘 알고, 잘 나고, 많이 가진 것만으로 스스로 교만하기가 쉽고, 상대한테도 티끌을 쌓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조님께서는 이부리 이조 선생에게 다음과 같은 간곡한 가르침을 남겨주셨다고 생각합니다.

리를 세움으로써 몸이 선다. 남을 세운 리로써 내 몸이 선다. 반드시 남을 세우도록 하고 자기는 올라가지 않도록 하라. 만약, 남들이 받드는 입장이 되어도 높은 마음을 쓰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열 사람 위에 서게 되면 열 사람 위의 일을 해도 그 마음은 가장 아래에 두도록. 백 사람 위에 서게 되면 백 사람 위의 일을 할지라도 그 마음은 백 사람 아래에 두도록. 천 명 만 명 위에 서게 되었을 때도 마찬가지로, 천 명 만 명의 밑으로 낮추도록.”

(우에다 에이조오, <본석님의 생애> 105, 1985. 8. 26)

 

모두가 아시다시피 이부리 이조 선생님은 이 길에서 최고의 신앙인으로 존경받고 있는 분입니다. 교조님이 인정하시는 최고의 제자였습니다. 그런 분에게 교조님이 이런 말씀을 남기셨다는 것은 그 만큼 교만을 경계하신 것이라 여겨집니다. 스스로 교만해서도 안 되겠지만 남한테도 티끌을 쌓게 하지 않도록 늘 주의하라는 게지요.

열 사람, 백 사람, 천 명, 만 명 밑으로 마음을 낮추라고 하신 것은 누구를 만나더라도 그 사람을 존중하고 세우라는 것이지요. 낮아지지 않으면 그 누구도 세울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교만에는 겉교만과 속교만이 있습니다.

겉교만은 자만하고, 허세를 부리고, 남을 깔보고, 무시하고, 짓밟으려는 태도를 보입니다. 겉으로 표가 나게 남을 힘들게 하는 것입니다. 이에 비해 속교만은 부끄러워하고, 사양하고, 잘못이 있어도 시인하지 않거나 표현을 잘하지 못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겉교만은 누구나 알아차리기 쉽지만 속교만은 본인도 남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때가 많습니다. 부끄러워하고, 사양하고, 사실을 있는 그대로 잘 표현하지 못하는 것도 교만에서 비롯한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도 많습니다.

 

속교만이 많은 사람은 모른다고 부끄러워하고, 못한다고 부끄러워하고, 없다고 부끄러워합니다. 모르는 것을 내 보이기 싫어하고, 못하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고, 없다는 것을 애써 숨깁니다. 없다는 것을 내보여 남한테 동정을 사서 뭔가를 얻고 싶어 하는 탐욕이 많은 사람도 있지만 없다는 사실을 아예 숨겨 자존심을 지키려는 속교만인 사람도 있습니다.

속교만이 많은 사람은 누군가와 뭔가를 함께 하다가도 자기 차례가 되면 손사래를 치며 사양하고 뒤꽁무니를 뺍니다. 남한테 못난 자기 모습을 보이기 싫다는 겁니다. 잘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은데 이것이 자기 마음대로 안 될 것 같으니까 물러서려는 게지요. 잘 하든 못 하든 개의치 않고 자기 차례가 되면 하면 됩니다. 그냥 하는 거지요. 그런데 속교만이 많은 사람은 이것이 잘 안 됩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함께 여흥을 즐기다가 돌아가며 노래 한곡씩 하는 때가 있지 않습니까. 잘 돌아가다가 속교만이 있는 사람 앞에 가면 탁 막히는 겁니다. ‘지는 잘 못하는데요. 다음으로 넘어가지요.’하고 뒤로 살짝 빼는 겁니다. ‘못 한다’ ‘그래도 해 보라하며 가벼운 실랑이를 하게 됩니다. 그러다 억지로 떠밀려 노래를 부르는데 그 분위기에 맞지 않는 가곡 일송정 푸른 솔은~~하고 부릅니다.

또한 속교만이 많은 사람은 잘못한 일이 있으면 그것을 시인하고 용서를 구하거나 책임을 져야하는데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내색을 하지 않습니다. 잘못한 줄이야 모를 리 있습니까. 잘 알지요. 그런데 그것을 입 밖에 내어 인정하지도 못하고, 용서를 빌지도 못합니다. 더더구나 책임을 지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속교만 하니까 생각나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10년도 더 된 일입니다. 구체적인 정황들은 기억이 없습니다. 어느 날 문산회장님 차를 제가 운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목적지에 도달하여 주차를 하다가 땅바닥에 솟은 돌출물을 보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앞 범퍼 한 쪽 밑이 움푹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제가 먼저 문산회장님께 바로 말씀드려야 했는데도 회장님 쪽에서 먼저 연락할 때까지 말씀을 드리지 못하고 차일피일 미루고 말았습니다. 이런 모습이 바로 속교만인 사람이 취하는 대표적인 모습 중 하나입니다. 지금 되돌아 봐도 참으로 죄송하고 미숙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뒤 문산회장님은 우리 포교소 역사에도 열심히 도와주셨고, 상단 악기 수를 구해 주시는가 하면, 만날 때마다 언제나 밝게 웃어주셨습니다. 그 일에 대해서 저한테 더 이상 한 번도 다시 이야기 하시지는 않았습니다. 아직도 그 범퍼 값을 치르지는 못했습니다. 참으로 죄송하고 정말로 감사합니다.

그런데 겉교만은 많이 안다고 자처하는 사람에게 많고, 속교만은 적게 안다고 여기는 사람에게 많은 것 같습니다. 겉교만은 잘 하는 사람에게 많고, 속교만은 못하는 사람에게 많습니다. 그리고 겉교만은 많이 가진 사람에게 많고, 속교만은 적게 가진 사람에게 많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있다, 없다, 잘 한다, 못한다, 많다, 적다는 것은 모두 상대적인 개념입니다.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요. 이쪽에 비교하면 내가 많고, 잘 나고, 잘 합니다. 저쪽에 비교하면 내가 적고, 못 났고, 못합니다. 유리한 입장에 서면 겉교만을 많이 쓰고, 불리한 입장에 서면 속교만을 많이 쓰게 됩니다.

이렇게 보면 겉교만이든 속교만이든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누구나 가지고 있는 마음 아닐까 싶습니다. 사람들 관계나 입장 상황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 언제나 변하기 때문입니다.

 

지난해부터 천리향 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천리향이란 천리교 향기 또는 천리교 향기를 전하는 용재들의 포교구제모임입니다. 벌써 1년이 지나고 있습니다. 참여하시는 분들이 전국적으로 100명이 넘고 있습니다.

천리향에는 인터넷상에서 소통 공간인 밴드가 있습니다. 여기에는 멤버들이 90명 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매일 각지각처에서 구제 활동하는 모습들이 실시간으로 올라옵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용재들이 서로 격려하면서 힘을 얻고, 더욱 용솟음치는 구제활동으로 나아가고자 하는데 있습니다.

밴드에 지역별 단체 활동이 올라오기도 하고, 때로는 두 세 사람이 활동하는 것, 혹은 개인 혹은 가정 단위로 활동하는 내용이 올라오기도 합니다. 매일 올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가끔씩 올리는 사람이 있고, 아예 눈팅(눈으로만 보고, 자기 글은 올리지 않는 것)만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매일 올리는 사람들은 혹시 자랑질로 느껴지는 게 아닐까, 이러다가 교만해지는 게 아닌가, 덕을 까먹는 게 아닐까하는 마음에서 주저하게 되는 때가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만 올릴까고민하기도 합니다. 만약에 그런 마음으로 너 나 할 것 없이 활동하는 내용을 올리지 않게 되면 밴드를 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함께 고민하고, 배우고, 만들어가는 즐거운 삶도 없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이렇게 교회보에 원고를 쓸 수도 없고, 신전강화나 실천 감화도 할 수가 없지요.

물론 매일 혹은 자주 올리는 사람들은 되도록 사실 그대로 서술하려고 해야 하고, 자랑이 되지 않도록 교만하지 않도록 늘 유의하고 경계해야 합니다. 하지만 남이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이 되고, 시기질투가 두려워서 할 것을 그만 두게 된다면 전체적으로는 발전이 없고 손해라고 생각합니다.

활동 내용을 올리지 않는 사람들의 속사정을 엿보자면 올리지 않는 이유가 여러 가지 있겠지요. 인터넷 이용 자체가 익숙하지 않고 서툴러서 그렇기도 합니다. 때로는 내 보일 활동이 없다는 이유를 댈 때도 있겠지요. 아니면 자랑하는 것 같고, 교만하게 보이는 것 같아서 피하는 게지요.

익숙하지 못해서 못한다고 한다면 영원히 못하게 됩니다. 하면 할 수 있도록 어버이신님께서 수호를 해 주시지만, 하지 않으면 계속 못하고 안하는 쪽으로 수호를 받게 되는 것이 천리이지 않습니까.

내 보일 활동이 없어서 올리지 못한다 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누구는 매일 많은 사람들에게 수훈을 전하고, 누구는 남편과 아이들 온 가족이 함께 전도 나가고, 누구는 매일 전도지를 100매 이상 돌리고, 누구는 강습을 보내고, 누구는 터전귀참을 데리고 가서 별석을 받게 하고, 누구는 하루 종일 전도를 하는데 그에 비하면 나는 보잘 것 없고 부끄럽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올릴 것도 없다며 마음부터 미리 내지 않게 됩니다.

하지만 사람마다 덕이 다르고 인연이 다르고 처한 입장이나 상황이 다릅니다. 그 누구도 나와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비교해서도 안 됩니다. 각자 자기만의 길이 있고, 각자 자기만이 할 수 있는 구제 활동이 있게 마련입니다. 이것을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남 하는 것을 보고 자기 것을 하찮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하루하루를 채우는 자잘한 활동이 더 중요한 법입니다.

이 길을 신앙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신앙을 통해 느끼는 작은 기쁨과 깨달음들, 소소한 구제활동이 있게 마련입니다. 이것을 밴드에 올리는 겁니다. 뭔가 큰 것을 바라고 대단한 것을 생각하기 때문에 올리지 못하게 됩니다. 그 만큼 욕심이 많다는 반증이고, 그 만큼 교만하다는 말이 됩니다. 남보다 못하는 것은 내 보이고 싶지 않다는 것이지요. 이것이 속교만입니다.

아주 평범한 것에 비범한 것이 있고, 진리가 있습니다. 원래 생명이라는 것은 아주 평범하기 그지없습니다. 숨이 들어오고 나가고 하는 것은 지극히 평범한 활동입니다. 하루 이틀, 12, 1020년 쉬지 않고 활동하기 때문에 생명이 유지가 됩니다. 이런 바탕 위에서 어떠한 일들도 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지극히 평범한 이런 숨 쉬는 활동이 멈추는 순간, 그 무엇도 할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너무나 평범하고 보잘 것 없지만 나날이 생활하는 일상을 소중하게 여기고, 기뻐하고, 감사하고, 즐길 수 있어야 합니다. 한 점 흙이 쌓이고 쌓여 태산을 이루고, 한 방울의 물이 모이고 모여 강물을 이루며,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가운데 천리 길을 가게 되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남들이 수훈 열 사람 전할 때 나는 무얼 하고 있는가 자책하기보다 아픈 사람 만나면 단 한 번이라도 수훈을 권해보는 게 중요하며, 전 가족이 신앙하는 것을 부러워하기보다 나 혼자만이라도 신앙하는 즐거움을 놓치지 않는 것이 더욱 중요하며, 남들이 전도지 100장 돌리는 것을 부러워하기보다 단 한 장이라도 전도지를 내미는 손길을 이어가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작은 실천들이 쌓이고 쌓이면 어느 날 어떤 수호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될지 모릅니다.

나날이 열심히 활동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자랑이 되지 않도록 겉교만한 마음을 쓰지 않도록 늘 경계해야 하지만 그보다 못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그 나름대로 욕심과 속교만을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겉교만 속교만을 쌓지 않고 이 좋은 길을 세상에 널리 알려 신인화락(神人和樂)하는 즐거운 세상을 활짝 열어갔으면 합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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