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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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교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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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월차제 신전강화

 

세계의 구조와 인간의 섭리

 

유상준(성진교회장)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늘 고성교회 월차제를 맞이해서 원근을 불문하고, 많이 참석하신 가운데 교회장님 내외분을 심으로 해서 즐겁게 월차제를 올렸다고 생각합니다. 날씨가 매우 후텁지근합니다. 그런 가운데 부족함이 많은 제가 교회장님으로부터 이 달의 신전강화 지명을 받았으므로 잠시 몇 말씀 드릴까 합니다.(4)

 

이 세상은 대천 신체는 소천

 

제가 오늘 드릴 말씀은 세계 구조와 인간의 섭리에 대한 것입니다.

이에 관련해서 교조님께서는 당시의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알기 쉽게 알려주신 이야기가 남아 있습니다.

교조님 재세 시에 어떤 사람이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세계가 엄청 넓고 큰 줄 알고 있는데, 얼마만큼 큰 세상 입니까?”

하고 여쭤보니, 교조님께서는 양팔을 벌리며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이 세계는 넓은 거야. 마치 사람이 양팔, 양다리를 벌린 정도의 넓이가 되는 거 야.”

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사람의 양팔, 양다리를 벌린 정도의 넓이라는 것은 불과 다섯 자 사방 정도라서 대단한 것은 아닙니다.

이것이 세계 넓이라는 말에 그 사람은 멍하니 서 있으니, 교조님께서는 그걸 잘 생각해보라고 하시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이 세계의 한복판에는 열기가 있다. 우리 인간의 몸 안에도 온기가 있는 거야. 똑같은 이치인 거야. 세계를 지탱하고 있는 암석은 사람의 몸으로 말하면 뼈인 거야. 이것이 같은 이치인 거야. 세계에서 암석에 덥혀 있는 흙은 사람으로 말 하면 뼈를 감싸고 있는 살과 같은 거야.

세계의 표면에 난 초목은 사람의 몸으로 말하면 털과 같은 것. 세계에 흐르고 있는 수맥은 사람의 몸으로 말하면 혈관이 꼭 여기에 해당되는 거야. 사람도 숨 을 쉬고 살고 있듯이 세계도 해수의 밀물과 썰물은 월일의 호흡인거야.”

라고 하셨습니다.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교조님께서 이 세계와 인간과의 기본적인 연관을 일반 사람들이 알기 쉽도록 일러주신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세계의 구조와 인간 신체의 구조는 같은 원리로서 관련되어 있음을 알기 쉬운 비유로서 명백히 밝혀주고 있습니다.

덧붙여 한 번 더 말씀드린다면,

이 세상 삼라만상은 대천이요, 인간의 신체는 소천이라, 인간의 머리는 신의 거처이며 머리털은 수목이요. 눈은 日月, , 태양과 달이요. 수염은 수풀이고, 사람의 치아는 돌()이요. 손톱, 발톱은 쇠 즉, 철이요. 피부는 흙이라 하시고, 뼈는 바위라 하시며 혈관은 냇물 즉, 수맥이고 사람의 배는 바다를 상징하였습니다.

 

인체의 섭리에 대해 몇 말씀 전하겠습니다.

 

첫째, 두부(머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세계에서 높은 곳을 이야기하면 산을 말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은 산입니다. 그러므로 옛날에는 높은 산 위에는 반드시 제단을 만들어 신을 모셔놓았습니다. 지금도 제를 지내는 곳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머리를 산에 비유하여 머리는 뇌천이라 해서 사방팔방의 신이 있다. , 사방팔방에서 신의 보호를 받고 있다. 머리의 두개골을 방위로 말하면 정상이 북방으로 이곳이 물의 신이 있는 뇌천이다. 방위의 시작도 북에서 처음 시작되고, 삼라만상 이 세상도 물의 수호에서 시작되고, 인간이 태어나는 것도 한 방울의 물이 시초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니 쉽게 이해가 되지 않으실 겁니다. 우리가 매일 읽고 있는 십전수호의 리에 보면 월덕수기의리가 제일 먼저 나옵니다.

방위는 북쪽이고 대룡이며 사자탈. ‘사람 몸에서는 눈 및 윤기, 세상에서는 물을 수호하는 리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설명이 부족하지만, 이걸 참고하시면 이해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머리의 한복판 장벽을 뇌천이라고 하는데 마음의 움직임을 가장 먼저 알아채는 중요한 뇌를 하늘의 팔방신이 지켜주시는 것이므로 신이 중앙에 있어서 뇌 하나의 생각으로 자신이 모르는 곳에서 신과 같은 마음의 움직임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생각할 때 나에게서 나오는 지혜는 내 것이 아니고, 신의 지혜로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지혜를 가졌다 하더라도 교만을 부리면 신의 노여움을 받아 지혜를 잃게 되고 맙니다. 아무리 영리한 사람도 뇌의 기능을 잃게 되면 사물을 생각해 낼 수도, 판단도 할 수 없게 됩니다.

산 위에 즉, 백두산 천지와 같이 정상에는 물이 한가득 고여 있습니다. 인간의 머리 정상에도 뇌천이라는 물이 있습니다. 물 가운데 뇌가 있는데 마치 바다에서 해파리가 물에 떠 있는 형상과 같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다른 물체에 여간 머리를 들이 받혀도 뇌천의 물이 뇌를 감싸고 있어서 뇌의 고장을 막아주므로 뇌는 물의 신이 수호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물은 신이며 지혜입니다. 이 신과 지혜를 내 몸이 받아들이려면 머리를 숙여야 합니다. 샘물의 물을 마시려면 엎드려야 합니다. 컵 속에 물을 마시는데도 일단 고개를 숙이지 않으면 안 됩니다. 뇌는 물의 성품이므로 물은 항상 아래로 흐르듯 항상 머리를 숙이고 물과 같은 심성으로 살아간다면 평생 동안 아무런 허물이 없을 것입니다.

두한족열(頭寒足熱)이라 해서 머리는 찬 게 좋고, 발은 따뜻한 게 좋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치민다. 거슬러 오른다.’라고 하는 것은 발쪽에 있어야 할 열이 머리 쪽으로 치밀어 올라감을 말함인데, 이렇게 되면 차야 할 머리가 더워져서 뇌수의 물이 끓게 되므로 뇌의 기능을 아주 나쁘게 합니다.

나쁘게 되는 결과로는 차츰차츰 이성을 잃게 되며 나만큼 똑똑하고 훌륭한 사람은 없다. 라는 식으로 자만에 빠지게 되고 사람이 자만심이 강해져 거만했을 때의 형상을 보면 몸이 뒤로 약간 젖혀진 모양새가 되는데 그것은 속으로 자신을 뽐냈을 때의 모습입니다.

뇌의 병으로 넘어지는 사람은 앞으로 엎어지는 자는 없고, 반드시 하늘을 우러러보며 뒤로 나자빠집니다. 이것은 자신을 지나치게 뽐낸 탓이라는 것을 모습으로 나타내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앞으로 엎어지면 두 손이 막아서 머리통이 처박히는 것을 막을 수가 있으나, 뒤로 나자빠질 때는 머리를 지켜줄 아무런 도구가 없는 것입니다. 조물주의 이 같은 섭리는 겸손함은 보호를 받으나, 교만함은 보호를 받지 못함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뒤로 넘어지게 되면 소뇌를 다치게 되는데 이 소뇌가 고장이 나면 몸 전체가 움직이질 않습니다.

양쪽 소뇌가 다 다치게 되면 온몸을 쓸 수 없게 되나 한쪽만 고장이 나게 되면 몸 반쪽을 못 쓰게 되는데, 이것이 뇌경색(중풍)이라는 신상으로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신상을 맞이하지 않으려면 항상 물과 같은 마음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제가 작년에 어버이신님께 무모한 도전을 해서 큰 신상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아들이 큰손녀를 놓고 6년이 지나도 애가 없어 애를 먹은 적이 있습니다. 인공수정을 해도 자꾸 실패하다 인공수정이 됐는데, 세쌍둥이가 들어서게 됐습니다. 제 며느리가 몸이 왜소한데, 그 왜소한 몸으로는 세쌍둥이를 키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세쌍둥이 중에 하나를 사산시켰습니다. 그렇게 쌍둥이를 낳았는데, 며느리가 힘들어서 친정엄마와 시어머니를 교대로 불러서 쌍둥이를 보게 했습니다. 사실, 저는 별로 손자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저 같은 용재들은 바쁘잖아요. 교회 일도 봐야하고, 순교도 가야하고 이래저래 바쁩니다. 그나마 집사람과 둘이 같이 할 때는 좀 나은데, 집사람이 그 쌍둥이를 보러가게 되면, 그런 일들을 저 혼자 처리해야 되기 때문에 너무나 벅찹니다. 그러다 한번은 너무 화가 나는 겁니다. ‘뭐하려고 애를 둘씩이나 한 번에 낳아서 이렇게 고생을 하는가?’ 하는 생각에 화가 많이 나는 겁니다. 그러던 차에 며느리가 하는 말이 아버지 애를 셋을 낳았으면 어떡할 뻔 했습니까?”라고 하는 겁니다. 그 얘기를 듣고 참 건방지구나!’ 하는 생각에 엄청 거슬렸습니다.

그렇게 집에 혼자 돌아와서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다 보니 괜스레 화가 났습니다. ‘왜 애를 둘씩이나 한 번에 줘서 이런 고생을 시키나.’하고 말입니다.

114일에 서울출장소에서 월차제를 보고 집에 혼자 잘 왔습니다. 그런데 저녁을 해먹으려 하니, 반찬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혼자 반찬을 만들어 먹으려고 했습니다. 방법을 잘 몰라서 어디에 물어보려 하는데, 손자들 보러간 집사람은 미워서 전화하기 싫고, 거제도에 있는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통화 중에 갑자기 극심한 어지럼증이 느껴져서 반사적으로 머리로 넘어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제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구토를 하는데, 내장이 다 빠져나오는 것 같은 심한 구토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순간적으로 드는 생각이 내 인생이 이렇게 끝나는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현재 뇌경색으로 고생하시는 분들께는 죄송합니다만, 제가 상당히 교만해서 뇌경색에 걸려서 반신불수로 생활하느니 죽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인생이 이렇게 끝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너무 허망하더라고요. 그래서 혼자서 엄청나게 울었습니다.

혼자서 한참 울다가 정신이 조금 들어와서 딸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승인아, 나에게 지금 중풍이 온 것 같은데, 이를 어쩌면 좋겠냐?” 하니, 저를 안심시키면서 아빠는 뇌경색이 아닌 것 같은데, 우선 빨리 병원에 가보세요.” 하더라고요. 그 사이에 집사람도 오고, 119에 실려서 병원에 가서 하루를 지내고 나오게 되었습니다.

친필에

생각하라 질병이란 전혀 없다

신의 길잡이 훈계인 거야 (3-138)

제가 크게 실천하는 것도 없지만, 어버이신님께서 저를 계속 써주시려고 하는 건지, 그 정도로 매를 맞고 그쳤습니다.

그 병이 이석증이라는 병인데, 저의 경우는 약을 계속 먹어야 하는 경우라고 합니다. 집사람은 약을 먹어야 하는데, 안 먹는다고 뭐라 하지만, 이 길을 가는 용재들은 그런 가르침을 받고 나서 그런 마음을 다시 쓰지않으려고 노력하면 되기 때문에 저는 약을 먹지 않습니다.

친필에

태내에 잉태하게 하는 것도 월일이니라

출산하게 하는 것도 월일의 보살핌 (6-131)

신님께 하나만 주지 둘을 한 번에 줘서 이렇게 고생을 하게 하나.’ 하고 불평했던 게 결국은 신님에 대한 도전이었던 겁니다. 신님이 주신 선물을 감사하게 생각해야 하는데, 내가 조금 불편하다고 애들에게 불평을 한 것이 가르침을 받게 된 겁니다.

 

둘째, ()부에 대한 것입니다

 

티끌만한 일이라 하면 극히 작은 일을 말합니다. 전혀 없다.’라는 표현을 티끌만치도 없다.’ ‘추호도 없다.’라고들 말합니다. 머리털이 하나도 없는 빈대머리라는 병을 지닌 자는 신의 마음이 티끌만치도 없다는 증거랍니다. 머리털 빛이 검은 것은 모낭 속에 색소가 있기 때문인데, 이 색소가 없어지면 흰머리가 됩니다. 색소가 없어진다는 것은 성욕으로 인해서 색을 많이 쓰기 때문인데 늙어서 백발이 되는 것은 성욕이 감퇴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젊어서 흰머리가 빨리 나는 사람은 책임성이 강한 성질이므로 박정한 마음은 없습니다. 머리가 벗겨지는 사람은 책임 관념이 적고, 흰머리가 많이 나는 자나 빨리 나는 자는 마음은 억세나 참을성이 있습니다.

곱슬머리가 되는 이치는 산꼭대기에 있는 나무가 바로 자라지 못하고 그 위가 비틀려 자라는 이치와 같은 것인데 낮은 곳에는 수분도 많고 땅도 기름지며 바람도 적고 기온도 따뜻하므로 초목이 잘 자라지만, 높은 곳에는 수분도 적고 땅이 메마르며 바람도 거세고 기온도 차가우므로 초목이 잘 자랄 수가 없습니다.

사람도 마음이 높은 자는 교만해서 자기 뜻에 반하면 화를 잘 내게 되는데 화를 내게 되면 열기가 머리 쪽으로 치밀어 올라가서 머리의 수분을 말리게 되므로 머리털이 말라 비비꼬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화를 잘 내는 사람은 머리털이 차츰차츰 말라죽어서 대머리가 되는 것입니다.

많은 이해심과 단노가 필수입니다.

 

셋째, , ()부에 관한 것입니다

 

눈은 마음의 거울이라고 합니다.

눈은 일(), ()의 모형을 땄다고 하며, 눈으로써 말을 한다고도 합니다. 마음이 모인 곳인 소중한 눈을 둥글게 만든 조물주의 뜻은 만사를 둥글게 보라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눈의 본성대로 모든 사물을 둥글게 보는 사람의 눈에는 아무런 병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화가 났을 때의 눈을 보면 눈에 모가 났다고 합니다.

눈에 검은 창이 많은 사람은 전생에 모든 것을 부드럽게 보고 마음씨를 부드럽게 가졌던 증거라고 합니다.

맑은 눈은 항상 씻고 있기 때문에 맑은 것인데, 감사의 눈물, 기쁨의 눈물로서 씻고 있는 자는 눈이 맑으나, 원통한 눈물, 성낸 눈물, 비감의 눈물 같은 것은 모두 눈물에 열이 있어서 눈가에 균이 붙게 되고 상하게 됩니다.

동정어린 눈물은 동정이라는 우물에서 솟아나는 샘물과 같아서 눈의 열을 사라지게 해서 눈병을 낫게도 합니다. 쌍꺼풀눈은 애교 있는 눈으로써 사물에 대한 관찰력이 밝다고 합니다. 눈이 만물의 사초임을 알아야 합니다. 만물의 사초란 화합하여 만물이 생성·번영한다는 뜻입니다. 인체가 생성될 때 제일 먼저 눈이 생겨나는 것과 초목의 눈 트임에서 쉽게 알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생활에 행과 불행의 시초도 눈에서 시작됩니다.

모든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하겠습니까? 처음부터 둥근 눈으로 봄으로 해서 둥근 마음으로 시작한다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사물을 둥글게 본다는 것은 정직을 말함입니다. 둥근 것을 정직이라고 말하는 것과 세상에서 불은 정직하다고 하는 것도 같은 의미입니다. 어떤 불이라도 어두운 곳일수록 더욱 밝게 되며 길쭉한 불길도 멀리서 보면 둥글게 보입니다. 정직의 표본은 태양인데, 태양은 둥급니다. 그러므로 둥근 것은 정직도 되고, 광명도 됩니다.

, 빛 광(), 밝을 명()도 된다는 것입니다.

광명이 있는 눈이 어둡게 되는 것을 실명, , ‘빛을 잃었다.’라고 하는데 실명했다는 것은 사물을 항상 어두운 방향으로 봄으로 해서 그쪽으로만 걸어갔기 때문에 광명을 보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연적으로 말하면 왼쪽 눈의 고장은 탐의 티끌에서 오는 것이고, 오른쪽 눈의 고장은 인색의 티끌이라고 합니다.

인연에 따라서 맹인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원래 맹인은 눈의 수정체가 흐려지므로 해서 생명의 근원을 잃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나 인과론적으로 말하자면, 눈을 수호하는 신의 노여움을 산 결과로서 대대로 탐내는 마음과 인색한 마음을 태산처럼 쌓아왔기 때문입니다. 탐내는 마음과 인색한 마음 때문에 상대방을 화나게 한 일들이나 일상 어두운 곳에서 숨은 일들을 많이 저질러 옴으로서 눈이 어둡게 되는데 생리적으로 보면 분노하거나 불안해 할 때면 열이 생겨 눈이 충혈 되어 눈이 상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른쪽 눈에 시력장애가 오는 까닭은 인색한 마음을 써왔기 때문인데, 주는 것, 먹는 것을 아깝게 여기는 사람이 주기 싫은 것을 줘야 하고, 먹이기 싫은데도 먹여야 하게 되면 마음속에 울화가 치밀기 마련입니다. 화로 인한 열이 안구를 에워싼 물기를 끓게 하므로 안압이 상승하므로 해서 눈이 상하게 되며 시력이 나빠지는 것입니다.

눈이 쓰라린 까닭에는 두 가지 이유가 존재합니다. 화의 열기로, 차가워야할 눈을 보호하는 물기가 더워지므로 피부가 뜨거운 것이 닿으면 따가움을 느끼는 것과 같은 이치로 쓰라린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이유로는 눈을 보호하고 있는 수분(눈물)이 열기 때문에 마르게 되므로 마치 기름이 마른 기계처럼 동작이 불편해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따라서 눈병의 원인은 열 때문이며, 열이 나는 원인은 마음속에서 화를 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탐심으로 인한 왼쪽 눈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꼬부라지는 속눈썹은 눈에 들어오는 티끌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서 마치 눈은 주인이요. 속눈썹은 파수병과 같은 관계인데, 파수병은 주인을 보호하고 존경해야 하지요. 그런데도 꼬부라진 속눈썹은 보호하고 존경해야 할 주인인 눈을 속눈썹으로 찔러서 아프게 하는 형상입니다. 실제로 속눈썹이 이 같은 사람을 우리 주변에서 종종 접하게 됩니다. 모든 것을 둥글게 보고 둥근 마음으로 아름답게 본다면 눈의 신상은 없다고 합니다.

 

넷째, , ()부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람의 덕기는 귀로서 알아본다. 덕기란, 어질고 넉넉한 마음씨, 낯빛에 덕기가 있습니다. 모든 복신의 귀는 크고 귓밥이 튼튼하게 달려있고, 귓밥에 사마귀라도 있는 자는 부귀할 상이라고 합니다. 여러분들 중에 혹시, 귀에 사마귀가 있으신 분은 앞으로 잘 사실 상이니까. 잘 보호하시기 바랍니다. 대개 보면, 귀가 큰 사람이 총명한 까닭은 상대방의 소리를 수신하는 폭이 넓기 때문에 많은 양의 정보를 받아들이게 되므로 판단의 정확도가 매우 높은 것입니다. 따라서 사리에 밝아 총명하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모든 동물의 귀는 움직일 수 있는데 유독 인간의 귀만은 움직일 수 없도록 섭리해 놓은 까닭은 무엇이겠습니까? 동물에게는 선악에 대한 분별력이 없고, 인간처럼 어떤 약속을 주고받지도 않습니다.

인간은 서로 주고받는 약속을 깨지 말고 잘 지켜야 합니다. 그런데 상대와의 이론을 받아들인 귀가 흔들린다고 하는 것은 그 약속이 흔들려 지켜지지 못하게 되는 것이므로 흔들리지 말고 약속을 굳게 잘 지키라고 섭리해 주신 것입니다.

이 같은 이치를 알고 귀 본연의 사명에 어긋남이 없는 삶을 사는 사람에게는 귀에 대한 장애는 생기지 않습니다. 덕기는 귀에 있다고 하는 것은 귀로 듣고 알게 되고 지식을 얻는 것도 귀이므로 복신(절에 모신 상의 일종)의 상을 보면 귀가 큽니다. 귀가 작더라도 받아들이는 마음이 큰 사람은 귀가 잘 들리는 사람이고, 귀가 크든 귀가 작든 남의 말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 , 잘 들어주지 않는 사람은 귀머거리의 시초가 됩니다. 잘 들어야 할 귀로 잘 듣지 않는다는 것은 귀가 멀게 될 근원으로서 끝내는 전혀 들리지 않게 됩니다. 이치로 말하자면 귀는 잘 들으라고 섭리해 주신 것인데, 용도에 맞게 사용하지 않는다면 귀의 존재가치가 없으므로, 귀는 있으되 소리가 들리지 않는 세상을 살아보라는 경고인 것입니다.

또한, 입으로 말하고 귀로 듣는 것이 상담인데, 듣기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말도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입까지도 닫아버리는 것이므로, 이것이 바로 벙어리의 신상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듣지도 못하고 성장하면서 말도 못하게 되는 불행한 운명을 타고납니다. 남에게 귀를 잘 빌려주는 사람은 마음의 재산가라고 할 수 있고, 귀를 잘 빌려주지 않는 사람은 매우 가난한 자에 속하며 주위가 외롭습니다. 몸에 좋은 약은 쓰듯이 자신에게 덕이 되는 이로운 충언은 쓰고, 귀에 거슬리므로 잘 듣지 않습니다. 인간의 여러 곳의 신상은 듣지 않으면 안 될 말을 잘 듣지 않는데서 생깁니다.

눈은 집안에서는 집안일 밖에 보이지 않고, 종이 한 장 밖에 볼 수 없으나, 귀는 먼 곳의 소리까지 들을 수 있어서 넓은 지식을 얻을 수 있으므로 귀가 좋은(잘 들리는) 사람은 가장 좋은 복분이 되는 것입니다. , 복을 누릴 수 있는 분수가 됩니다. 상대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게 인생의 큰 득이 됨을 인지하시길 바랍니다.

이것으로 우리 몸의 섭리에 대한 말씀은 간단하게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은 교조130년제의 끝머리를 향해 모두가 엄청난 열정으로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전국이 모두 그렇겠지만, 특히, 서울 쪽을 보면 쉼 없는 열정으로 고성 산하 용재님들의 활동이 정말 대단합니다. 저만 빼고, 엄청난 어려움 속에서도 그것을 다 극복하고 꿋꿋이 서울역에서 자리를 잡고 한 자리에서 포교활동을 하고 계시는 용재님도 계시고, 매일 도보전도로 천리의 향기를 전하는 용재님들도 계십니다.

진주님의 유달3호 끝머리 말씀에

교조님의 도구인 용재 모두가 그 사명을 자각하고 임무에 매진하여 존명의 교조님께 기쁨을 드릴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하는 바이다.

라는 말씀의 뜻을 그대로 실천하고 계십니다. 끝까지 분발해서 노력하여 좋은 결실 이루시기를 기원하면서 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끝까지 경청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