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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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교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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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용재연성회 인사말씀

 

출직과 환생

- 남을 도와야 하는 이유 -

 

이상봉(교회장)

 

반갑습니다. 오늘 용재연성회에 시간을 내서 참가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지금부터 잠깐 말씀을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4)

 

얼마 전에 팔목대교회 산하 중 옛날에 지진이 났던 지역인 센다이시에서 교회장을 하셨던 부부가 고성교회에 방문했습니다. 그분들은 할아버지부터 신앙을 시작해서 3대째 천리교 신앙을 이어오고 있다고 합니다. 일본에서도 한 교회에서 3대가 신앙을 이어가기가 쉽지 않다고 합니다. 5, 6대째 이어가고 있는 교회들도 있긴 하지만, 한 집안에서 신앙을 이어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합니다.

교조님께서 입교의 계시를 받으시고 월일의 현신이 되신 다음 제일 처음으로 하신 것은 가난에 빠진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재산을 없애는 데에만 그치지 않고, ‘나카야마 가문의 명예나 체면 같은 것도 망했다.’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모든 걸 없애버린 결과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위에서는 모두 미쳤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지나서 현재 입교로부터 178년째가 되었는데, 그 나카야마가가 망했습니까? 안 망했습니다.

우리, 한국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지만, 일본에서는 진주님을 거의 신님과 같은 급으로 받들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재산도 없애고, 집안의 권위나 체통도 모두 던져버린 교조님의 집안으로 보면, 시간이 지난 다음에 정 반대의 결과를 가져온 겁니다. 교조님께서 이에 대해서 누차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 그렇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말이죠.

 

출직과 환생

 

제가 이번에 검정강습에 담임으로 갔다가 했던 이야기 중에 여러분께 들려드리고 싶었던 이야기가 하나 있었는데, ‘출직과 환생에 대한 것입니다. ‘출직과 환생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하면, ? 남을 도와야 되는지에 대해서 알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내 가족만 돌보면 되지, ? 쓸데없이 남을 도우며 살아야 하나?’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남이 남이 아니라는 것을 출직과 환생으로 설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만나고 얼굴을 보며 이야기를 자주 하는 식으로 인연을 맺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반드시 전생에 인연이 있어서 만나게 된다는 걸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냥 가벼운 인연이 아니라, 엄청나게 무거운 인연이 있어서 금생에 만나게 되는 겁니다.

교조님께서 재세시에 자주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교조님께서 처음 환생에 대해 말씀을 해주신 것은 교조님의 셋째 딸 오하루님이 아들을 낳았는데, “친정아버지가 환생해서 태어난 것이다.”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첫 아들인 이 가메조(亀造)’라는 아이는 이렇게 이 집안에 인연이 있어서 진주로 삼아야겠으니, 양자로 들여야 되겠다.”라고 말씀하시니, 그 집안에서는 장손을 어떻게 양자로 줄 수 있느냐.”하고 반대했습니다. 그 후에 그 아이가 7살까지 살다가 출직했습니다. 그 후에 다시 셋째 아들로 태어났을 때, 양자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장남을 주라고 하면, 인간의 정으로 섭섭해서 줄 수 없으니, 삼남으로 태어나게 하면 괜찮을 거라 생각했던 겁니다. 그 아이가 신노스케입니다. 친정아버지 마에가와 한시치마사노부(前川半七正信)’가 태어난 아이입니다. 이 아이를 양자로 삼아서 나카야마가를 잇게 한 겁니다.

이것이 첫 번째 출직과 환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다음에 교조님께서 입교의 계시를 받으시기 10년 전에 있었던 일인데, 맡아 기르던 옆집의 아이가 마마 병에 걸려서 죽을 지경에 이르게 됐을 때, “이 아이를 살려주게 되면 자신의 아이 두 명과 그것도 모자란다면 자신의 목숨까지 바치겠습니다.” 하고 천지신명과 약속을 하게 됩니다. 그 아이는 살아났지만, 이후에 교조님의 아이 두 명이 차례로 어린 나이에 요절하게 됩니다. 교조님의 둘째 딸 야스가 출직하고 이후에 넷째 딸 쓰네라는 아이로 환생해서 다시 2살까지 살다 출직하고, 그 아이가 다시 환생한 것이 다섯째 딸 고칸이라고 이야기 해주셨습니다.

 

교조님께서 1862년에 안도 마을의 이다 이와지로씨를 구제하러 갔을 때, 전생의 삼촌이라고 하셨습니다. ‘! 그리워라. 전생의 삼촌이라고 하셨습니다. 6살 난 중병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말씀하신 것이 친필에 있습니다.

전생 인연 모아서 수호한다

이것으로 영원히 확실히 다스려준다 1-74

 

이외에도 교조님의 아들인 슈지님의 부인인 마쓰에씨가 임신을 했을 때, 친필에

이 자를 6년 전 3

15일에 데려갔던 거야 7-67

마쓰에씨가 임신한 아이가 6년 전, 1870315일에 배는 다르지만 출직한 슈지님의 딸 님이 환생하는 것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렇게 다시 태어난 아이가 다마에라는 아이입니다. ‘님은 나카야마 집안에서 자랐으며, 18세에 출직했습니다. ‘님은 다마에님으로 환생해서 나카야마 집안의 적자로 자라게 됩니다.

이에 대해서도 친필에 나와 있습니다.

이름은 다마에 빨리 보고 싶거든

월일이 가르친 손짓을 단단히 7-72

교조님께서 가르쳐주신 순산근행의 손짓을 단단히 하게 되면 그 아이를 빨리 환생해서 볼 수 있게 된다고 가르쳐주신 겁니다.

, 뒤에 말씀하신 것은 교조님의 셋째 딸인 오하루님의 딸인 히사가 있는데, ‘히사가 또 딸을 낳은 것이 사요인데, 이 아이는 오하루님이 환생해서 태어난 것이라고 지도말씀에 나옵니다. ‘오하루님이 자신의 딸의 딸로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사요님이 태어난 날(1888. 4. 26)의 지도말씀에서, ‘기다려서 데리고 돌아왔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버이가 자녀가 되고, 자녀가 어버이가 된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 ‘마쯔무라 사쿠라는 여자에게는 전생에 내 어머니였다.”라고 이야기 하시고, “4대 전의 내 어머니였기 때문에 나이는 나보다 어리지만, 언니라고 부르겠다.”라고 하고 항상 언니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나카타 기사부로에게는 5대 전의 내 아버지이고, ‘무라타 코오스케에게는 3대 전의 내 아버지라고 이야기 해주셨습니다.

이 분들을 다 보면 몇 대 전의 아버지 어머니들이라고 이야기해주셨는데, 가만히 보면 성이 다 틀립니다. 같은 집안에 태어나거나 그렇지 않고는 사람의 힘으로는 알 수도 없는 것이고, 법칙이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분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 교조님께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이 사람들이 모두 전생에 부모자식의 인연으로 이어져오는 관계에서 금생에 다시 만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길에 친족은 없다

 

이 길에 친족은 없다

라는 친필, 지도말씀도 있습니다. 우리는 내 집안, 내 가족만 생각하며 열심히 살고 있지만, 혼의 세계에서 보면 이런 게 다 부질없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저도 여러분들과 자주 만나고, 대화하는 것을 보면, 전생에 모두 깊은 인연으로 전생에 한 번씩은 만났던 사이였을 겁니다. 부모자식일 수도, 형제일 수도, 삼촌, 이모, 고모 등의 관계로 만났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우리는 서로 남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서로 간에 좋은 인연을 맺어서 다음에 더 좋은 인연으로 만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만약에 내 가족이나 내 자식만 위한다고 해서, 내 자신과 다른 사람의 인연을 소홀히 한다면, 그것이 다음의 생에 좋지 않은 인연을 만들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신앙을 하는 우리는 이것을 더 깊이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앞에 얘기했던 교조님의 전생의 삼촌이었던, ‘이와지로씨는 6살 때 병이 나서 교조님께 오게 되었습니다. 교조님이 계신 곳으로 오면 병이 나았습니다. 1874이와지로는 다시 병이 나서 들것에 실려 돌아왔습니다. 그 때 이와지로는 상당히 괴로워했다고 합니다.

교조님께서 이와지로의 머리맡에 앉아서,

삼촌, 힘듭니까?”

힘듭니다.”

그래도 교조님께서는 구제해 주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묵묵히 계셨습니다. ‘이와지로씨가, “이렇게 괴로울 바에야 차라리 죽는 게 났겠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교조님께서는,

죽는 편이 좋겠다고 했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이와지로씨는

죽는 편이 낫겠어요.”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교조님께서는

당신은 전생에 전당포 주인이었어요.”

라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전생에 전당포 주인이었을 때, 사람들에게 물건을 빌려주고는 기한이 오면 돌려 달라고 하며 재촉을 합니다. 재촉을 받은 사람은 얼마만큼 죽고 싶은 심정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당신은 금생에 죽고 싶은 만큼의 신상으로 고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리가 금생에 돌아온 것입니다.’라고 얘기 했답니다.

 

우리는 물질,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계산하려 하지만, 인연은 마음씨 뿌려놓은 대로 계산되는 겁니다. 물질로 계산되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에게 어떤 마음이 들게 했는가에 대한 씨를 우리는 계속 뿌리고 있으면서도 자신은 그것을 모르고 있는 겁니다. 우리는 자신의 마음만 중히 여기고 내 기분 내키는 대로, 내 마음 풀리는 대로, 남에게 말씨나 마음씨를 함부로 뿌리고 다니게 되면, 그것도 전부 내가 거둘 수밖에 없는 겁니다. ‘인연이면 다 해야 한다.’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인연은 지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겁니다. 피해갈 수 없는 겁니다. 수훈을 전해서 도움을 받을 수는 있지만, 그 근본의 씨앗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갚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런 걸 보면, 우리가 마음속으로 뿌린 씨앗이라는 것이 얼마나 깊고 무서운 것일 수 있느냐 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좋게 뿌려놓은 말씨, 마음씨의 씨앗도 그것이 다 자라나게 되면 우리에게 현실의 세계에 보여지는 것이라고 납득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나와 똑같은 상황에 있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저 사람은 하는 일마다 잘 되고, 나는 왜? 안 될까. 라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그것은 분명히 뿌려놓은 씨앗이 싹터온 것이라고 여겨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을 못하면, 교조님의 가르침을 무시하고 가는 것이 되는 겁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나와 관련된 모든 주변 사람들은 전생에 깊은 인연으로서 만나게 되고, 전생인연을 갚기 위해서는 남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서로 도와서 잘 되기를 바라야 합니다. 남이라고 생각하니까 좋은 씨를 뿌릴 수 없게 되는 겁니다. 못 갚은 은혜가 있으면, 서로 만나고 도와서 청산하고, 좋은 덕을 심어서 좋은 운명을 열어가야겠습니다.

 

정성 하나의 길

 

, 이번에 검정강습을 하며 느낀 것입니다. 이번 검정강습은 일본어 이외의 외국어 반으로서 한국어, 중국어, 포르투갈어(브라질) 등이 개강했습니다.

브라질에서 온 사람들이 10여명 정도 있었습니다. 브라질에서 온 선생님께 터전까지 오는데 교통비가 얼마나 드냐고 물어보니, 비행기 값만 200만 원 정도 든다고 합니다. 그것도 한 번에 오는 것이 없고, 중동의 두바이를 경유해서 온답니다. 물론, 미국 LA를 경유해서 올 수도 있는데, 시간은 좀 덜 걸리지만 비싸고, 더군다나 미국은 잠시 경유하는 경우에도 비자를 받아야만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몇 시간 더 걸려서 돌아오더라도 두바이를 거쳐서 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브라질은 우리와 소득수준을 비교하면, 우리의 3분의 1밖에 안 됩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들에게 200만원의 비행기 값이면, 우리로 환산하면, 600만 원 정도의 값어치가 되는 겁니다. 600만 원의 돈을 내고 강습을 가라고 하면, 우리나라에서는 과연 몇 사람이나 갈까 생각해봤습니다. 대단한 정성입니다.

브라질은 우리나라 땅과 비교해서 85배 정도 크다고 합니다. 나라가 워낙 크다 보니, 전도청에 한번 참배하려고 하면 어떤 사람은 3,000km를 이동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터전에 가는 거리가 고작 700km도 되지 않는데 비하면 어마어마한 거리입니다. 우리가 동남아시아에 가는 정도의 거리입니다.

예전에는 이 거리를 버스를 타고 이동했답니다. 여러 명의 운전기사가 교대로 밤낮없이 달리면 사흘 정도 걸린답니다. 편도만 그 정도이고, 왕복으로 하면 버스를 타고도 일주일 이상 걸리는 거리입니다. 요즘은 항공편이 있어서 조금 편해졌다고 합니다. 요즘도 브라질 전도청 월차제에는 1,000명 이상이 참배를 한다고 합니다. 교회 수는 한국보다 작지만, 그 먼 거리에서 1,000명 이상 참배를 하는 겁니다. 그렇게 생각을 해보면 조건이 참 안 좋은데도 오히려 그렇게 모이는 것은 정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브라질에 처음 포교를 갔던 사람 중에 오타케 주지로라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포교이민으로 가서 교회를 설립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나중에 브라질 초대 전도청장까지 맡게 됩니다.

이 사람이 혼자 포교를 해서 브라질에 12개의 교회를 설립하게 됩니다. 이 분이 얼마나 정성을 들이는 노력을 했느냐하면, 당시, 브라질에서 배를 타고 터전에 참배를 오게 되면, 편도만 48일이 걸렸답니다. 왕복으로 하면 거의 100일인데, 그걸 해마다 빠짐없이 했다고 합니다. 그걸 수십 년 동안 했다고 하니, 이 얼마나 큰 정성입니까? 현재의 브라질 전도청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참배를 하는 토대는 초대 청장의 정성이 있어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만에서 온 강습생들도 있었는데, 대만의 경우 우리나라와 상황이 많이 비슷합니다. 일본의 침략전쟁으로 인해서 천리교가 포교됐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당시 천리교가 엄청나게 번성했습니다. 해방 전에 교회가 엄청 많았습니다. 그때, 명칭의 리를 받은 교회가 북한까지 102개소 있었습니다. 1945년 일본의 패전과 동시에 모두 일본으로 쫓겨 가고 모두 없어졌다가 한국전쟁 이후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서 지금에 이르고 있는 것입니다.

대만의 경우도 일본패망과 동시에 거의 쫓겨났지만, 중국에는 관우상을 숭배하는 신앙이 있는데, 그 관우상 뒤에 신님을 감춰놓고 몰래 근행을 보고 했답니다. 어쨌든 대만에서는 정부의 눈을 피해서 신앙을 이어오고, 나중에 일본에서 이주해 온 일본의 교회장들이 터전과 대만 사이의 가교역할을 해서 신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문화적 차이로 말하자면 한국보다 대만이 더 힘들다고 합니다. 특히 대륙에서 온 사람들이 아닌, 고산족이라고 하는 현지 원주민들이 주로 신앙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전체 대만 인구의 2%정도라고 합니다. 장개석(장제스)이 이끄는 국민당이 대만으로 피신을 할 때 대륙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98%의 인구를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 원주민들은 당시 많이 학살당하고 줄어들어서 2%의 인구로 연명하고 있답니다. 그래서 문화적으로나 전통적으로 대만에서의 포교가 상당히 힘든 면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도 이민을 가서 포교를 하는 선생들의 정성으로 인해서 대만에서의 포교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초대들도 정성을 기울이는데 대단했었습니다. 우리 초대들의 남을 도우려는 정성의 전통이 12장 근행, 밤기원, 냉수목욕, 걷기 실천, 등의 형태로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일본 내에서의 기원근행이라고 하면 주로 좌근만 봅니다. 전에 전도청장님 부인이 폐암으로 고생을 많이 했는데, 기원근행을 드리자고 해서 우리가 12장 근행을 보니까 깜짝 놀라시더랍니다. 당시 전도청장님이 기원근행으로 12장 근행을 올리는 것은 처음 봤다고 합니다.

그때 그 영향인지 모르겠는데, 일본 내의 교회에서도 기원근행으로 12장 근행을 보는 곳이 늘어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신앙도 사회가 물질이 풍부해지면서 효율만 강조하다 보니, 비효율적인 것들, 물질에 비해 손해가 많이 나는 것들은 안 하려고 하는 추세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정성을 들이는 것에 소홀해졌다고 자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정성이 부족하다보니, 수호가 나는 것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냐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겁니다.

요즘, 아프리카에 포교 가는 것이 유행이라고 합니다. 가서 수훈을 전하면, 바로 수호가 난답니다. 분명히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도 충분히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경제적으로 풍족해질수록 선택의 폭도 늘고 인간생각도 많아져서 신한줄기의 생각이 끼어들 여지가 없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 번은 제가 밖에 있는데 집사람이 전화가 와서 간장 하나를 사오라고 해서, 마트에 가서 보니, 간장의 종류가 수없이 많아서 다시 전화를 해서 물어보고 사야할 정도로 물질이 풍족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물질적으로 풍족하다는 것은 해야 할 것이 많고 생각도 복잡해져서 한 곳에 몰입해서 정성을 들인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사회라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신앙하는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 생각도 많아지고 신님 뜻만 보고 살 수 있는 여지가 많이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의 정성들이는 것을 보고, ‘못 한다. 할 수 없다고 하며, 할 수 없는 이유는 수없이 늘어 가지만, 해야만 하는 절박한 상황에서 해야만 하는 것이 정성의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많이 배웠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어떻게 하든, 하고만 있으면 되겠지.’하고 생각하지 말고 우리의 마음을 자꾸 가다듬고 닦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처해있는 현실에만 집착하지 말고 장래에 대해 걱정만 하지 말고, 좋은 씨앗을 자꾸 뿌려야 합니다. 우리가 만나는 소중한 인연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도와서 좋은 운명을 열어갈 수 있도록, 어떻게 하면 정성을 들여서 남을 도울 수 있을까? 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려해 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두서는 없지만, 요즘 제가 느낀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잘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4)

 

* 본 인사말씀은 교회보 홈페이지(www.tenrikyo.kr)와 유튜브에서 동영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