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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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교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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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경지수 57

 

 

그 후 1

 

 

박지수

 

작년 5월 용재연성회를 할 때 130연제를 맞이한 실천으로 어떤 것을 작정하겠는가하는 내용이 있었다. 그때 매일 전도하겠다는 작정을 했다.

그것을 작정하게 된 것은 바로 앞에 들었던 광일교회장님의 샌드위치맨 전도이야기였다. 그 때 광일교회장님께서는 옛날에는 새 영화가 들어오면 지금처럼 TV가 없던 시절이라 커다란 종이판에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서 앞뒤로 옷 입듯이 걸치고 다니면서 홍보를 했다. 가끔 TV에서 보는 1인 시위하는 사람들처럼……. 그런 사람을 샌드위치맨이라고 했다. 나도 130연제를 맞아 신님의 가르침을 홍보하는 샌드위치맨이 되겠다. 우리는 천리교 어깨띠를 매고 왔다갔다만 해도 천리교 전도를 하는 셈이다. 천리교 홍보하는 샌드위치맨이 되자. 어깨띠만 매고 다녀도 저절로 전도가 된다.”고 하셨다.
그 때는 매일은 아니지만 수시로 어버이신님 말씀이 쓰인 천리교 홍보 어깨띠를 매고 전도를 다니던 때라 그 말씀이 더 깊이 와 닿았다. 거기에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매일 전도할 작정을 하게 되었다. 만약 너무 바빠서 전도할 시간이 전혀 없다면 어버이신님께 고하고, 5분이라도 어깨띠를 매고 집밖에 잠시 나갔다가 오기라도 하겠다는 작정을 했다.

매일 전도 작정을 하게 된 또 하나의 계기는 친구의 어머니가 개신교 권사님이셨는데 어느 날 그 친구 말이 지수는 자주 전도 나가지? 그래야지, 우리 어머니도 매일 전도를 나가셔. 어머니에겐 그게 당연한 일상이셔. 권사님이니까.”하였다. 그 순간 나는 뒤통수를 크게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매일 전도가 당연한 일상이라니! 게다가 권사님이니까!’ 라고 하였다. 나는 권사님보다 더한 용재인데.... 부끄러웠다. 나는 천리교 용재라면서 매일 전도가 아니라 가끔 전도, 혹은 이벤트로 전도를 해오지 않았던가. 이런 내가 용재라는 것이 신님께 부끄럽고 친구 앞에도 부끄러웠다. 스스로에게도 부끄러웠다. ‘이래선 안 되겠구나. 좋아, 나도 매일 전도다!’ 하고 각오를 다졌다.

매일 어깨띠를 매고 5분이라도 전도 나가는 것은 내가 나날이 신님께서 구제에 사용하는 도구인 용재라는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함이고, 전도를 몸에 붙이기 위함이었다. 그리하여 나날이 전도가 시작되어 어제로 365, 1년이 되었다. 최초 한 달 동안은 인증 샷을 찍어 인터넷 블로그와 카카오스토리에 올렸다. 그래야 자꾸 게을러지려는 자신을 추스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1년 동안 온갖 일이 다 있었지만 눈에 보이는 구제의 성과를 말하라고 하면 딱히 할 말은 없다. 그래도 대난이 소난이 된 여러 일들은 있었다. 예전에 전혀 겪어보지 못한 어려운 사정, 악인연 하나가 떨어져 나간 것을 느낄 때면 고맙기 그지없다. 만약 이렇게 작정하고 실천하는 중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지금 나는 없었을 것이다. 매일 전도를 실천하고 있었기에 어렵지만 소난으로 넘어갈 수 있는 마디가 되었다. 뒤돌아보면 아찔하고 위태롭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악인연의 막중함을 느낄 때면 그 전도 작정이 나를 살린 것이었음을, 신님의 수호였음을 깨닫게 된다.

 

1년이 지나는 사이에 스스로 놀라운 것은 전도가 일상화되었다는 사실이다. 어깨띠를 매면 거의 자동이다시피 입에서 나오는 인사와 밝은 웃음, 그리고 구제본능이라 할 수훈을 전할 기회를 잡는 일들이 몸에 붙은 거 같다. 어딜 가느라 어깨띠를 하지 않을 때에도, 앞에 사람이 걸어오면 나도 모르게 웃으며 안녕하세요? 행복을 전하는 천리교입니다.”하는 말이 튀어나와서 자신도 깜짝 놀랄 때도 있다. 놀라면서도 내가 드디어 미쳤구나. 천리교에!’싶어 한편 흐뭇하기도 하다. 이왕 이 길을 걸을 바에야 미쳤다는 소릴 듣는다면 최상의 칭찬 아니겠는가? 교조님도 미쳤다는 얘길 많이 들으셨지 않은가. 우리 용재는 교조님 따라쟁이’-교조님 모본을 따라가는 것 - 하는 거니까 미쳤다는 소리가 좋다. 흔히 미쳐야 미친다고 하기도 한다. 이 길에 미쳐야 어버이신님께서 바라시는 마음성인, 즐거운 삶에도 미쳐갈 것이다. 그러니 이보다 더 좋은 칭찬은 없을 것이다.

처음에는 어깨띠 매는 것을 잊어버리고 잠자리에 들었다가 잠이 들려는 순간 생각나는 일도 있었다. 하루 종일 바쁘고 피곤하여 잠자리에서 꼼짝도 못하겠다 싶지만 작정한 것이니 할 수 없이 다시 옷을 입고 신님께 고하고 나간다. 한밤중 모두가 잠들어 개미 한 마리 얼씬 거리지도 않는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오는 웃지 못 할 일들도 가끔 있었다.

예전에는 월차제날은 다른 일은 하지 말라고 일화편에 나와 있으니 쉬어야지 했지만 지금은 월차제 후에도 잠시라도 전도를 한다. 전에는 전도청, 원남성교회, 교구, 상급교회 월차제 후에는 사람들을 만나거나 돌아오기 바빴지만 지금은 그곳에 모인 용재들과 함께 전도에 나선다. 하루 한 두 가지 일을 해 왔던 일상에서, 매일 전도를 추가하니 두세 가지로 일이 늘어나고, 아침에 나가 한 밤중에 돌아올 때도 많다.

월차제보다 더 바쁜 월차제 전날에는 장보기 전도를 한다. 제물장을 보러갈 때 어깨띠를 매고 장을 보는 것이다. 마트에 갈 때도 거리낌 없이 어깨띠를 매고 다닌다. 어떤 상인은 앞쪽 어깨띠에 적힌 글귀를 보고는 나를 잡고 돌려서 뒤쪽 글귀까지 읽고는 미안한 지 뒤에는 뭐라 쓰였는지 궁금해서요.”하기도 한다.

통영 이마트에서 처음 어깨띠를 매고 들어가려는 데 직원이 우릴 붙잡았다. “어디 가십니까?” “장보러 왔는데요!”하니 여기서 전도지 같은 거 뿌리고 하심 안 됩니다.” “~ 걱정 마세요! 저희는 장보러 왔을 뿐이랍니다.”하고는 마트를 일부러 여기 저기 더 휘젓고 다닌다. 어깨띠를 보면 앞뒤로 <즐거운 삶, 천리교> <감사 겸허 서로돕기, 천리교>라고 적혀 있는 것도 있고, 혹은 <세계는 하나, 천리교> <우리는 한 형제, 천리교>라고 적혀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셈이다.

장보기 전도 때는 물건을 사며 전도지를 돈과 함께 건네고, “사장님, ~자 되세요! 많이 파세요~”같은 인사를 한다. 다들 좋아한다. 장볼 때 전도지 전하기는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다. 장보기 전도는 즐겁다. 물건도 사고, 전도지도 전하고, 덕담까지 해드리니 즐겁다.

하루 종일 차로 어딜 갈 때는 톨게이트를 지날 때 통행료를 낼 돈과 전도지를 함께 내민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하면서... 참 쉬운 전도이다. 요즘은 자주 다니는 길 톨게이트에선 다른 종교를 믿는지 싫은 내색을 하는 분들도 계시기도 하지만... 그리고 휴게소에 내릴 때 일부러 어깨띠를 매고, 전도지를 지참하고 내린다. 한번은 몇 명이 복장을 통일하고 어깨띠를 하고 차에서 내리니 관리하시는 남자분이 놀랐는지 급히 우리한테로 오셨다. 경계하는 눈빛으로 여기서 뭐 하십니까?” “? ~ 우리는 화장실 가고, 차 한 잔 마시고 가려는 데요~” “! 그렇습니까?”하면서 어깨띠 내용을 읽으며 경계심을 푼다. 웃으면서 저희는 여기 잠시 쉬었다가려고요. 행복해지는 천리교입니다.”하고는 전도지를 내밀었더니 안심하면서 전도지를 받고 같이 웃었다.

놀러가는 일이 있어도 그곳에서 잠시라도 어깨띠를 맨다. 관광전도, 산책전도, 새참전도, 힐링전도, 전도놀이, 축제전도.... 내 생활 일상에서 일어나는 온갖 일들에다 전도를 함께 붙인다. 이렇게 온갖 전도이름을 갖다 붙이며 나날이 전도 하는 즐거움을 조금씩 알아가고 즐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