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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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경지수56

영혼 없는 신앙

 

박지수

 

언젠가 상급교회 사무실에서 있었던 일이다.

누가 사무실의 문을 열면서 "반갑습니다." 하고 인사를 하자, 사무실 안에 있던 사람이 웃으며  "영혼 없는 인사!"라고 했다.

우리집은 TV가 없으니 모르지만, 아마도 요즘 유행어인 듯한데, 그건 의례적으로 인사를 한다는 말이겠지?

그리고 건성으로 하는 말, 습관적으로 대충하는 말을 뜻하는 것인가 보다.

정성이 들지 않은, 마음이 없다는 표현이기도 할 테고...

참으로 그 순간에 딱 맞는 말이다싶었다. 누가 만든 말인지 절묘한 표현이라 감탄스럽기까지 하다. 그리고 마음에 오래 남는다.

~ 영혼 없는 인사라....’

이어서 이런 말들이 떠올랐다.

영혼 없는 전도, 영혼 없는 근행, 영혼 없는 신앙, ...

영혼 없는 전도란 어떤 것일까?

전도날이니까 그냥 모여서 시간 때우며 하는 전도가 그렇다.

정해진 복장을 갖추지 않고, 시간을 맞추지 않는 일.

의례히 하는 행사로 여기는 것,

마음과 정성을 내지 않고 그냥 대충 그 시간만 어영부영 채워 보내는 것.

남의 눈치를 보며 마지못해 억지로 하는 즐겁지 않은 전도 등...

물론 전도하러 모인다는 것 자체가 이미 정성을 낸 것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조금 더 정성스럽게, 진실한 마음을 내야 하는데 진실과 정성이 들어가지 않는 것은 영혼 없는 전도라고도 할 수 있다. 영혼이 없기 때문에 정성이 들지 않는다.

어느 선생님께서는 무슨 일이든 여러 단계 모든 과정에서 정성을 들이지 않으면

일이 만족스럽게 되지 않는다. 모든 과정에 정성을 들이라!“고 하셨다.

영혼 있는 삶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전도지를 준비하는 작은 일에서도 정말 그렇다고 100%로 느끼는 일이 많다.

전도지를 접는 작은 일에도 영혼 없이, 정성 없이 하고 있구나싶을 때가 많다.

딴 생각을 하면서 대충 접으면 누구라도 건성으로 접었구나, 건성으로 전도를 하나 보다.’ 하고 생각하게 된다.

전도지에 붙이는 주소 스티커 역시 그렇다.

반듯하게 네모 칸에 맞춰서 붙여야 하는데, 산란하고 급한 마음으로 붙이다 보면 비뚤어지거나 튀어나오거나 구겨지기도 한다.

지금도 가슴 뜨끔해지는 말씀 중 하나는 바쁠 때 속마음(진심)을 알아본다는 것이다.

전도지를 접고, 주소스티커를 붙이다 보면 한 순간 방심해서 비뚤어지게 접히는 전도지를 본다. 바빠서 힘들고 귀찮아하는 마음이 비뚤어진 전도지에 그대로 나타나 있다. 그 마음을 반성하고 호흡을 가다듬고 정성을 기울인다.

 

누군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이 길에 용재로 있으니 그냥 보는 거라고 근행을 보고, 하는 거니까 신님 일을 그냥 하고, 히노끼싱도 해야 하는 거니까 그냥 히노끼싱을 한다. 그래서인지 근행을 보면서 눈물 흘린다는 얘기를 들으면 좀 놀랍다, 나는 근행을 올리면서 눈물을 흘린 적이 없다는 말을 한다. 참 솔직하다.

그런데 그 신앙이 참으로 안타깝고 안쓰럽게 여겨진다.

기원근행, 혹은 조석근행, 월차제 근행을 올리며

나날이 살리워지고 있는 어버이신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눈물,

서로 즐겁게 살기를 바라시는 신님 뜻에 미치지 못하고, 정성이 부족한 것에 대한 참회와 반성의 눈물, 스스로 인연에 휘말려서 괴로움을 자초하는 어리석은 자신을 부끄러워하며 흘리는 회한의 눈물,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해 기원 드리다 그 아픔이 내 아픔이 되어 흘리는 연민의 눈물, 용재로써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마음성인에 이르지 못해 죄송해서 흘리는 사죄의 눈물...

그런 눈물들을 흘린 일이 없다면 그 신앙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그야말로 영혼 없는 근행, 영혼 없는 신앙이지 않을까?

나 스스로도 때때로 영혼 없는 근행을 올릴 때가 많다.

딴 생각을 하며 마음은 다른 데 있고, 몸만 습관적으로 올리는 근행,

힘들다, 피곤하다투덜대며 귀찮아하면서 올린 근행.

시간 없다고 마음 급해서 빨리 빨리 대충 올린 근행.

어버이신님, 교조님 앞에 엎드려서도 딴 생각을 하고 있는 자신,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정성스레 신전청소와 헌찬하지 않고

, 고단해, 조금 더 자고 싶어하면서 꾸물거리다 총알같이 준비해서 정성이 부족한 새벽 근행!!

이런 일이 얼마나 많았던가. 이것들이 영혼 없는 근행일 것이다.

여기에 생각이 미치니 신님, 교조님께 몹시 죄송해 진다.

이 모든 것을, 내 마음과 행동을 신님은 다 꿰뚫어보고 알고 계시겠지? ㅠㅠㅠ

일상적으로 올리는 근행이 영혼 없는 근행이 되면 결국 영혼 없는 신앙이 돼 버린다.

영혼 없는 신앙이란 말에 스스로 놀라 등골이 서늘해진다.

신앙은 곧 진실과 정성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고, 그 진실과 정성이 없다면....

 

신님 일을 하면서도 영혼 없이 하는 것도 많지 않을까.

정성스럽게 하지 않고, 습관적으로, 건성으로, 의례적으로 하는 신앙 말이다.

신앙할수록 기쁘고 즐겁고 고마운 게 아니라, 안하면 뭔가 불안하고 찜찜해서 하는 신앙, 월차제 부인회 날이 되니 월차제 부인회 맞이하고, 상급교회에 그냥 왔다 가는 신앙, 신앙해도 신님이 바라시는 마음성인에 가까워지지 않는 신앙, 오히려 독선과 교만이 더 차올라 아무도 못 말리는 사람, 자기 주장만으로 주변에 분란을 일으키는 신앙, 기복신앙에 머물러서 더 이상 세계구제로 나아가지 못하는 신앙......

 

이런 일을 통해 신앙뿐만이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일, 일상생활 하나하나에서도 정성을 다하고 있는지 새롭게 되돌아본다.

이 길에서는 마음 하나 없으면 안 된다. 마음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마음을 다하지 않으면 고맙게 눈을 뜨고 있어도 장님과 같다고 할 거야. (1906. 5. 26)

정성 하나를 잃으면, 다른 길도 한순간에 없어진다. (1893. 5.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