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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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하나 36

여덟가지 티끌과 마음청소 23

 

이 시 중

. 여덟가지 티끌의 내용

4. 편애

편애에 대해 용재핸드북에서는 다음과 같은 기본설명이 나옵니다.

나만 좋으면 남이야 어떻게 되어도 좋다는 마음, 제 자식 사랑에 빠져, 음식이나 옷에 대해 투정을 부려도 나무라지 않고, 나쁜 짓을 해도 주의시키지 않은 채, 제멋대로 하도록 내버려두는 마음. 또 자기만을 위해 남을 나쁘게 말하는 것 등이 티끌.

 

편애는 애정이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이끌리는 것을 말합니다. 나만 좋으면, 내 자식만 좋으면, 내 가족만 좋으면, 내 교회만 좋으면, 내 지역만 좋으면, 내 나라만 좋으면, 아니면 인간들만 좋으면 하는 식입니다. 의식이 아무리 확장되어가더라도 전체를 보지 못하고 한쪽으로만 치우쳐 애착심을 가지는 마음입니다. 어디를 가나 무엇을 하나 , , 하는 마음이 따라 다닙니다. 편애는 편 가르기하고 남을 차별하는 마음입니다.

편애심이 강한 사람은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남을 나쁘게 얘기하는 변명에 능하고, 남에게 잘못을 전가하는 책임회피 선수이기도 합니다.

편애의 무서움은 자기가 결코 나쁜 짓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짓는 경우가 많다는데 있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내 아이가 대학입학 시험을 친다고 합시다. 아이가 공부하는 동안 즐겁게 공부하고, 하나씩 알아가는 기쁨을 누린다면 얼마나 좋습니까. 이것이 지나치다보면 이웃집 아이는 시험에 떨어지고, 내 아이가 합격해야 좋아합니다. 특히 내 아이 합격 조건이 상대아이가 떨어져야 하는 일일 때 더욱 이런 마음이 강합니다.

한국과 일본이 축구시합을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스포츠 자체를 즐긴다면 누가 이겨도 상관없는 일이지 않습니까. 하지만 내가 한국인일 때는 한국팀이 무조건 이겨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한국팀이 잘하면 기쁨에 온갖 함성을 다 지르고, 못할 때는 갖은 야유를 보내거나 침울 속에 빠져듭니다. 상대가 잘할수록 기분 나빠 죽습니다. 스포츠를 즐긴다는 정신은 어디에도 찾을 길이 없습니다.

예전에 한국부인회총회가 전도청에 있었습니다. 그때 각 교구나 교회별로 나누어서 12장 근행을 보았지요. 근행을 잘 보기 위해서 사전에 각자 교구나 교회에서 열심히 노력하는 것은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그러나 남들보다 더 잘 해야 한다는 의욕이 넘쳐서 자기 교회가 잘 할 때는 기뻐하고, 남의 교회가 못하는 것을 보고 안도하거나 고소해 한다면 이것은 편애의 티끌을 쌓는 것이지요. 총회는 참가한 사람들이 모두 즐거워해야 하는데 남보다 더 즐겁자하는 것은 티끌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같이 편애의 티끌은 그것이 티끌이 되는 줄도 모르고 짓는 경우가 많다는데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자기와 가까운 사람들에게 애착심이 강하고, 타인에 대해서는 배척합니다. 애정이 한쪽으로 치우치면 반드시 조화가 깨지고 균형도 잃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애정이 지나치다보면 어느새 증오로 변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죽기 살기로 붙어 다니던 연인사이가 원수보다 더한 사이가 되고, ‘아이고, 귀여운 내 새끼하다가 죽일 놈, 살릴 놈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면 사랑하지 않는 것 보다 못한 결과를 낳기도 하지요. 사랑이 지나쳐서 괴롭고, 그 기대가 채워지지 않을 때는 사랑만큼이나 증오로 변하니 더욱 괴롭습니다. 사랑과 증오는 얼굴을 달리하지만 같은 양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서 벗어나는 길은 치우치지 않는 것, 애착심을 갖지 않는 것 즉 편애에서 자유로워지는 일이겠지요. 사실 이게 말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하지만 편애가 심할수록 그 만큼 즐거운 삶에서 멀어진다는 것은 언제나 변함없는 진리이겠지요.

편애에 대해서 몇 가지로 나누어 좀 더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나만 좋으면 좋다, 지금만 좋으면 그만이다

편애는 우선 나만 좋으면 좋다, 혹은 지금만 좋으면 그만이다이라는 생각에 갇혀 사는 모습입니다. 제 멋대로 하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려는 마음입니다.

나만 좋으면, 내 가족만 행복하면, 내 교회만 잘 되면, 내가 사는 지역만 발전하면, 내 나라만 성장하면 좋다는 식입니다. 언제나 라는 울타리를 칩니다. 남에 대한 고려가 별로 없습니다. 남이야 어떻게 되든, 상대가 어떻게 생각하든, 나만 좋으면 좋고, 우리만 편하면 좋다는 편협한 생각에 싸여 삽니다. 이것이 편애이며 세상의 화평을 깨는 마음입니다.

나라는 존재 기반 자체는 나만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존재기반은 바로 너입니다. 어느 누구도 자기만으로 절대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너가 있어서 내가 있고, 이웃이 있어서 우리 가정이 있고, 다른 교회가 있어서 우리 교회가 있고, 이웃 나라가 있어서 우리나라도 있는 것입니다. 도시민은 농민에 의지해서 살고, 농민은 도시민에 의지해서 삽니다. 교회는 신자에 의지해서 살고, 신자는 교회를 통해 구제받는 길로 나아갑니다. 어느 한 쪽의 일방적인 존재만으로 살 수 없는 일입니다.

지도말씀에서는

남이 남이 아니고 가족이 가족이 아니다. 이것 하나 분간한다면 어떤 사정도 다 알게 된다. (1894. 1. 22)

고 했습니다.

남이라 할 만한 사람도 없고, 남의 가족이라고 구별 지을 수 없다는 말이겠지요. 남의 도움 없이 내가 있을 수 없고, 이웃의 평화 없이 내 가족의 평화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세계인류는 모두 한 형제입니다.

제 아무리 자기가 하는 일이 올바르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 해도 나를 내세우면 전체적으로는 화평을 깨게 됩니다. 잘난 사람 똑똑한 사람이 흔히 저지르기 쉬운 일이 바로 화평을 깨는 일입니다. 잘난 것으로 더 나아가고, 똑똑한 것으로 더 내세우기 때문입니다.

각자 자기라는 벽을 허물지 않고는 세상의 참 평화는 없고, 참 행복도 깃들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각자 권력이나 권위, 그리고 학력과 재산을 앞세운다면 아무리 많은 사람을 모으고, 아무리 의미있는 일을 해도 한마음 한뜻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원하고 바라는 대로 수호를 받을 턱이 없지요. 평화로운 세상도, 즐거운 삶도 이룰 수가 없을 겁니다.

 

그리고 지금만 좋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은 참으로 좁은 생각입니다. 과거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삶의 흐름을 망각하는 일입니다. 전생 현생 내생으로 이어지는 긴 전망도 없고, 세상을 폭넓게 보는 안목도 없게 합니다. 지금 당장 눈앞에 있는 이익에 매달려 살게 하고, 지금 눈앞에 닥친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게 합니다.

이익에 쫓아다니면 눈이 멀고, 돈을 밝히면 돈 벌레가 됩니다. 지금 당장 득을 보는 게 없어도 내 눈이 맑고, 설사 수중에 돈이 없어도 꽃향내가 난다면 이것이 더 가치가 있는 게 아닐까요.

그리고 외면하고 싶은 고통에는 삶의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지난 삶을 되돌아보게 하고, 새로운 삶의 이정표를 세워보라는 어버이신님의 고마운 손길, 따뜻한 배려가 담겨있지요.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막힌 곳은 뚫고, 끊어진 곳은 잇고, 지나친 곳은 들어내며, 부족한 곳은 채워보라는 게지요. 이것이 교정되지 않는다면 누구라도 더 이상 즐거운 삶은 없지 않습니까. 이것이 너무나 안타까워서 견딜 수 없다는 어버이신님의 애절한 마음의 표현이 신상과 사정에 담긴 고통이지 않습니까.

 

나만 좋으면 좋다, 지금만 좋으면 그만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의 집착입니다. 집착하는 배경에는 돈과 물질이 있고, 자존심과 편안함이 있습니다. 돈이나 물질은 참 좋습니다.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저도 참 좋아합니다. 살아가면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것들이지요. 삶의 원동력입니다. 그리고 자존심은 자기를 지켜가는 에너지이기도 하고, 편안함은 누구나 꿈꾸는 일입니다. 하지만 이것들은 온갖 고통의 씨앗이며, 세상 천지에 끊임없이 일어나는 모든 다툼, 투쟁, 혼탁함의 원인이기도 합니다. 즐거운 삶을 가로막는 장애물인 셈입니다.

아무리 필요하고 중요하고 가치있는 일이라 해도 매순간 순간마다 집착을 내려놓지 않으면 이내 편애 속으로 빠져들고 맙니다.

 

그리고 세상에는 내가 잘 되어야 한다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남이야 어찌되든 내가 우선 기분이 좋아야 하고, 내가 먼저 즐거워야 하고, 내가 먼저 대접받고 싶어합니다. 그러니까 남의 어려움이나 고충이 진실로 눈에 들어올 리가 없지요. 내 잘 되기만을 바라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으니 바로 지옥입니다. 만약에 남이 잘 되기를 바라는 사람이 많다면 어떻겠습니까. 남의 어려움과 괴로움을 서로 돕겠다고 나서겠지요. 그래서 극락이 될 겁니다.

 

교조님께서 우리에게 남겨주신 모본에는 입교 이후 극빈에 빠지는 일부터 시작하셨습니다. 시집오실 때 가지고 오신 가재도구부터 베풀기 시작하여 창고에 있는 물건까지 미치고 나중에는 높은 담과 이중 지붕벽을 허물고 안채를 허무는 데 까지 나아가셨습니다.

본래 높은 담이란 배타적인 성격을 지니며, 이중 지붕벽이란 신분의 고귀함이나 권위의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이것을 허문다는 것은 이미 낮은 사람으로 임한다는 뜻이며, 나와 남과의 구별을 허무는 일이기도 합니다. 재산이나 신분, 그리고 권위로써 사람과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일찍이 팔려고 내놓았던 나카야마 댁의 안채도 사려는 사람이 있어서 드디어 팔리게 되었습니다. 안채를 헐어낼 때, 교조님께서는

이제부터 세계의 역사(役事)를 시작한다. 축복해 다오.”

라고 하시면서, 기꺼이 인부들에게 술과 안주를 내놓았다고 하셨습니다. 세상사람들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안채가 팔려서 허문다는 것은 한 집안의 몰락이 극에 달한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비탄에 잠길 일입니다. 그런데 교조님

께서는 축복해다오하시면서 즐거워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이처럼 즐겁게 집을 헐어 보기는 처음이라고 입을 모았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어느 덧 세월이 흘러 그 장소에 여러 사람들의 정성에 의해 근행장소가 세워지게 됩니다. 말하자면 한 개인의 집이 세계구제를 위해 쓰이는 구제근행의 장소로 탈바꿈한 것이지요. 나와 내 집안 살림을 우선으로 하고, 높은 담과 좋은 집속에 안주해 있을 때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교조님께서는 한 아이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귀여운 딸 둘을 바친 적도 있고, 115세 정명을 25년 줄이시면서 까지 세상 구제를 염원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교조님께서 걸어주신 모본의 길은 처음부터 끝까지 나만 좋으면 좋다, 지금만 좋으면 그만이라는 편애심을 어디에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나만 좋으면 좋다, 지금만 좋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에 갇혀 살게 되면 의식의 확장이 일어날 수 없고, 남을 구제한다는 정신을 일깨울 수도 없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단 한치도 교조님 모본에 다가갈 수 없다는 말이 되기도 합니다.

 

편애가 심하다는 것은 그 만큼 주변 일에 무관심하다는 말이며 베풀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남의 아픔과 고통은 단지 남의 아픔과 고통일 뿐이지 나와는 무관한 일로 여기게 되죠. 그러니까 남을 위해 베풀고 구제하는 마음을 낼 수가 없습니다. 베푼다는 것은 자기가 가진 것의 일부를 포기해야 한다는 의미이며, 남을 구제하기 위해서는 자기의 시간, 마음 그리고 정성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입니다. 편애심이 강한 사람은 자기 사랑에 빠져 이것을 전혀 사용하지 못하니까 남을 구제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예로부터 구제한줄기 정신으로 투철한 사람은 어떤 처지에 놓이든지 간에 구제를 청하는 사람이 있으면 하던 일을 놓고 바로 달려갔다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내 할 일을 다 해 놓고 갔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를 못했습니다. 내 할 일을 다 해 놓고 간다는 것은 자기 입장이나 처지를 우선한다는 말이며, 자기 몸 생각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편애란 나부터 이익을 챙기자, 나부터 험한 일에서 벗어나자, 나부터 좋은 것을 챙기자하는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편애심이 강한 사람이 남을 위해서 뭔가를 한다는 것이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설사 남을 위해서 뭔가 한다고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생색내기이며, 진실성이 의심스럽기 마련입니다.

남을 돕고 구제한다는 것은 자기 희생이나 헌신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편애심이 강한 사람은 어떻게 자기를 희생하고 헌신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어찌 되어도 좋다, 지금 어떤 꼬라지나 처지가 되어도 좋다는 생각이 들어야 비로소 구제의 첫 걸음이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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