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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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교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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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경지수 55

 

교조님 따라쟁이

 

박지수

 

복많은 사람

많은 이들이 부부가 같이 포교의 길, 신앙의 길을 가니 정말로 좋겠다, 부럽다고 하면서 지수는 복이 많은 사람이란다. 고마운 일이라고 대답하고 인정하면서도 한편 이런 생각이 잠시 들었다. 그런 당신은 남편이 벌어다 주니 먹고 사는 일에 근심 걱정이 없어서 편안하지 않냐고 되묻고 싶다. 물론 그들의 처지를 부러워하는 건 아니다. 다만 우리는 각자 자신의 처지에서 최대의 행복과 평화를 가꿔나가는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지 않나 하고 여길 뿐이다.

사람들은 종종 남한테 있는 것을 부러워하면서도 자기한테 있는 소중한 것에 대한 감사를 잊고 지내기가 쉽다. 부러워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남이 잘되는 것이나 좋은 것을 보고 자기도 그렇게 되고 싶어하다이다. 비슷한 말로는 선망하다. 동경하다라는 말도 있다. 영어로 envy부러워하다와 함께 질투하다, 시기하다라는 뜻도 들어 있다고 한다.

남이 잘하는 것, 잘되는 것을 보고 부러워하는 것은 보통 사람들이 가진 마음이다. 하지만 그 부러움이 유난히 많은 사람도 있다. 부러움이 많다는 건 상대적으로 자신의 처지를 불만스레 여긴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부러우면 따라해서 자신도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던지 아니면 자기 삶에 만족하며 살면 되는 것이다.

부러우면 지는 것이다는 말도 있지만, 부러워해서만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남의 행복을 부러워하고, 남의 출세를 부러워하고, 남이 받는 수호를 부러워 하다보면 어느 새 마음에는 어둠이 깔린다. 자기비하가 생기고, 시샘이 나고, 질투가 나고, 때때로 원망이 생기고, 자신은 더 초라해질 뿐이다.

 

바람은 눈을 부러워한다

다음은 장자 외편 추수11에 나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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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연현, 현연사, 사연풍, 풍연목, 목연심

(외발 짐승인) 기는 (발이 많은) 노래기를 부러워하고, 노래기는 (발이 없는) 뱀을 부러워하며, 뱀은 (모습이 없는) 바람을 부러워하고, 바람은 (제 자리에서 움직이는 정도만으로도 작용하는) 눈을 부러워하며, 눈은 (안에 들어앉았으면서도 모든 것을 다 꿰뚫어 아는) 마음을 부러워한다.

 

장자에 나오는 우화를 예로 들었지만, 이와 같이 사람들은 늘 다른 사람을 부러워한다.

이길 안에서도 살림살이에서 늘 쪼달리는 최일선 포교사 부부용재는 아내나 남편 중 한사람이 돈을 벌어 포교활동을 지원하는 용재를 부러워하고, 전적으로 포교에 나서지 않고 경제활동을 하는 배우자를 가진 용재는 궁핍하지만 부부같이 포교생활에 전념하는 용재를 부럽다고 한다. 극단적으로 신자가 거의 없는 말단포교사인 나에게 너는 신자가 별로 없어서 신경 쓸 게 없고, 부족 사는 산하가 없으니 좋겠다.고 하는 어느 교회 사모님도 계신다. 맞는 말이지만 참으로 기가 막힌다. 웃으며 저는 신자나 산하를 수호 받을 마음그릇이 안되니 그렇지요! 하지만 씁쓸해지는 마음은 어쩔 수 없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고 말썽 일으키는 산하를 둔 교회장은 신자가 적은 용재를 부러워한다. 먹고 사는 자체가 힘든 말단포교사는 신자 많은 교회장을 부러워한다. 신자가 많아도 정성금이 적게 들어오는 교회가 있고, 신자는 적어도 정성금은 많이 들어오는 교회도 있다. 근행을 볼 때는 신자 많은 것이 부럽고, 일이 많고 번거로울 때는 정성금은 많고 신자가 적은 교회가 부럽다.

서로서로 남이 가진 좋은 점, 잘되는 점만 부러워하면 그야말로 장자의 우화처럼 된다.

옛 이야기에서 누구나 가진 인생의 짐보따리를 모아서 한 곳에 다 같이 놓아두고 고르라고 하면 결국 자기 짐보따리를 고르게 된다고 하였다. 다른 사람의 짐보따리가 무겁고, 자기인연에 맞는 자신의 짐보따리가 제일 가볍게 느껴지는 것이리라.

 

마음의 방향을 돌리기

그래서 뭔가 부럽다는 생각이 들면 곧 바로 마음의 방향을 돌리려고 애를 쓴다.

부러운 것을 쳐다보기보다는 내가 가진 장점을 생각하고, 그 어떤 처지에서도 단노하며 만족하게 지내려 한다. 못 가진 것, 내 못난 것에 집중하려는 부정적인 내 마음을 보면서 단노한다. 신앙은 남을 부러워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현재 상황에서 단노로써 마음을 다스리고, 스스로 만족하고, 평화롭게 사는 길을 찾아가는 데 있지 않은가.

누군가의 어떤 점이 부럽다면 따라해서 내 장점으로 만들던지, 그게 안 될 것 같으면 남의 것을 부러워하기보다 내 장점을 좀 더 키우는 쪽으로 집중하는 것이 좋겠다.

남의 부러운 점이 내가 따라 하기엔 도저히 불가능하거나, 부럽긴 하되 그 노력을 하기 싫을 때는 마음의 방향을 빨리 바꾸어야 한다. 지금 내 처지를 만족하고 내 장점을 극대화하는데 노력을 집중한다. 자신의 못난 점을 볼 게 아니라 잘하는 것을 더 잘 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자신이 잘하는 것은 보통은 재미있어하는 것과 통하기 때문에 그렇게 힘들이지 않고도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게 할 수 있다.

 

교조님 따라쟁이

따라하기모방이다. 서예를 하는 분의 말씀이 글씨를 잘 쓰고 싶다면 훌륭한 서예가의 서체를 많이 흉내 내서 따라 써보라고 한다. 그러다 보면 자신만의 서체가 만들어지게 된단다. 작가나 시인들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앞선 선배작가들의 글을 그대로 따라 베껴 써보다 보면 자신의 글이 나오게 되는 것이라고……. 모방에서 기발한 아이디어가 나오고, 나만의 독창적인 새로운 것이 탄생되는 것이다.

이길에서도 최고의 용재는 교조님 따라쟁이가 아닐까? 우리들이 늘 입에 담고 사는 교조모본도 따지고 보면 교조님 따라하기이다. 따라하는 것은 창피한 것이 아니며 남부끄러운 것도 아니다. 교조님을 따라서 그 모본을 따른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희망하고 선망하는 일이다.

교조님 따라쟁이가 되어서 더 크게 마음을 열고 더 낮고 따스한 마음을 만들어가다 보면 어느새 나만이 할 수 있는 구제에 달인이 되어가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사람들은 보통 뭔가를 부러워하면서도 그 부러움 뒷면에 감춰진 노력은 따라하지 않는다. 단지 결과만 부러워할 뿐이지 그들의 땀은 무시한다. 그런데 부러워하는 것으로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 변하지 않는다. 마음만 더욱 위축되고 초라해질 뿐이다.

 

즐거운 삶 - 모자이크 천국

이쯤에서 생각나는 것이 십전수호의리이다. 십전수호는 신님의 수호를 10가지로 편의상 나눠져 있지만 서로 조화와 균형을 이뤄서 완전한 수호가 되는 것이다. 10개의 모자이크 조각이 모여 완전한 하나가 되는 것이다.

세상은 어쩌면 그렇게 모자이크로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 각자 다른 모자이크의 한 조각이 되어서 자신이 맡은 바 소임을 다할 때 이 세상은 즐거운 삶의 세계, 즉 천국이 되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그 모자이크 조각들이 자신의 모양을 탐탁치 않게 여기고 남의 모자이크의 색깔과 모양을 부러워한다면 하나의 온전한 모자이크는 완성될 수가 없다. 모두 다르지만 각자 고유한 소임이 있는 것이다. 각자 자기에게 부여된 소임을 무시하고, 모두가 남의 멋진 겉모습만 부러워하고 있어서는 아무 것도 안 된다.

십전수호의리에서 만약 결합수호의리가 지탱수호를 부러워하여 거북이가 범고래처럼 살고 싶어 한다면 어찌 될까? 균형이 깨지고, 질서가 무너지고, 극도의 혼란이 찾아올 것이다.

자신이 잘하는 부분을 내팽개치고, 남의 좋은 점을 부러워하다보면 어느새 티끌이 수북이 쌓인다. 인색의 티끌이 쌓이고, 탐의 티끌이 쌓이고, 미움의 티끌이 쌓이고, 원망, 욕심, 교만의 티끌이 쌓인다.

남이 받고 있는 수·장점을 부러워하기보다 신님께서 나한테 부여해 주신 나만의 특··사명을 언제나 감사하게 받고, 나날이 기쁘게 쓰고 싶다. 이것이 바로 나에게 주어진 즐거운 삶이라는 모자이크를 완성하는 중요한 퍼즐 한 조각을 완성하는 길이 아닐까.

 

오늘도 감사와 기쁜 마음으로 교조님 따라하기에 힘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