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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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교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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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용재연성회 인사말씀

 

자유자재의 수호

 

이상봉(교회장)

 

오늘 올 들어 첫 번째 용재연성회에 참가해주셔서 수고가 많으십니다.

지금부터 잠깐 한 말씀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잘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4)

 

어떠한 일도 신님의 수호

 

우리가 천리교 신앙을 하는 목적은 즐겁게 사는 데 있습니다. 천리교 신앙을 해서 즐겁게 살고, 즐겁게 인생을 보내는 것, 우리 마음이 즐거워야 즐거운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산다는 것은 좋은 일만 생길 때만 즐겁게 산다는 게 아니라, 안 좋은 일이 생길 때 더 즐거운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어떤 일이 생겨도 즐겁게 받아들이면서 사는 마음이 즐겁고, 건강한 마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즐거운 마음이 되서 성인을 한다는 의미는 나만 잘 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찾아오는 행운이나 덕도 남에게 나눠주고 싶은 마음이 들게 되고 남의 고통이나 불행도 내가 짊어질 수 있는 마음이 됐을 때 성인했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내가 즐겁지 않으면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아서 내가 어렵고, 힘들고, 괴로운데 어떻게 남 잘 되기를 바라며 주위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까지 생기겠느냐? 라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겁니다. 이 길의 신앙은 어떠한 일이든 즐겁게 받아들이면서 살 수 있는 마음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마음을 만들기 위해서는 자기 마음을 맑히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마음을 맑히기 위한 노력이란 무엇이냐? 생각대로만 되어지는 좋은 일만 수호라고 생각하는 마음은 욕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생각대로 안 되는 나쁜 일은 무엇이 있습니까? 신상이나 사정도 어버이신님의 훈계, 인도로 받아들여서 수호라고 생각하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신상이나 사정도 수호라고 생각하려면 리의 세계에서 깨닫는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이걸 모르면 당장 눈앞에 나타나는 대로 안 좋은 일, 손해 보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수호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런 일들을 리의 세계에서 깨달아 보면 어버이신님이 안 좋은 것처럼 보여도 우리에게 좋게 되어지는 방법으로서 보여주시는 것도 신상, 사정이라고 깨달을 수 있게 됩니다.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맑혀야 하지만, 무슨 일이든 즐겁게 받아들이면서 살기 위해서는 가르침을 구하려는 마음이 없으면 안 됩니다.

이 길의 가르침을 구하는 것은 어디에 있느냐 하면, 교조님이 가르쳐주신 원전에 있습니다. 원전을 가까이 하면 가르침을 구하는 일이 충분히 가능해집니다. 친필, 신악가, 지도말씀 등입니다. 매일 가까이 하고 있지만 예사로 생각하지 말고 잘 읽어보면 그 안에 우리가 구하는 가르침이 다 나와 있습니다. 그렇게 원전을 가까이 하다보면 나타나는 일에 대해 분별력을 가지고, 마음가짐을 이에 맞춰서 써 나갈 수 있게 됩니다.

지도말씀에 보면 잘 분간해 들어라라는 식으로 분별력에 대한 말씀이 상당히 많이 나옵니다. 분간해 듣는다는 것은 이 세상에 여러 가지 일들, 좋은 일, 나쁜 일, 해야 할 일, 해서는 안 될 일들을 분간을 한다는 겁니다. 분간을 한다는 것은 선·, 어떤 것을 가리지 않고 신님의 가르침에 따라서 분별하는 힘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 분별력을 가지게 됐을 때 비로소 리에 맞춰서 어떤 마음을 써 가야 할지가 나오게 되는 겁니다. 분별력이 없으면 뭐가 뭔지도 모르면서 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럼, 이런 분별력은 어떻게 갖추어질 수 있는가? 앞서 말한 대로 원전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신악가는 아침, 저녁으로 하지만 친필도 의미 하나하나를 되새기면서 읽어봐야 합니다. 지도말씀도 예사로 읽으면 아무 의미 없는 말이 될 수 있습니다. 가까이 해서 자주 읽어보면 의미를 알아갈 수 있게 됩니다.

천리교를 신앙하는 데 있어서 방해가 되는 것이 인간마음이라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인간마음을 달리 표현하면 지식, 능력, 지혜 등이 그런 것들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지능이 높으면 신앙하기가 상당히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생각으로 분별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 너무 많이 보이게 됩니다. 인간생각이 분별력이기 때문에 신앙이 어려워집니다. 이것도 틀렸고, 저것도 잘못됐고 하는 게 너무 많이 보이게 되면 신앙하기 어려워집니다. 여기서 말하는 분별력이라는 것은 공부를 많이 하고 머리가 뛰어나서 얻어지는 분별력이 아닙니다. ‘지나야만 길이라고 한다.’라고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지나가지 않으면 모르는 길이 세상에 너무 많습니다. 신앙을 하면서도 여러 가지 마디나 힘든 일을 지나가고 나서 과연, 그렇구나.’ 하고 납득하게 됐을 때 비로소 그에 대한 분별력이 생기는 겁니다.

인간생각을 버리고 신님을 의지해서 신님의 뜻에 따를 때 분별력이 생깁니다.

지도말씀에

 

사정의 길은 세상의 길, 신의 길은 마음의 길. 세상의 길은 어떤 짓을 하더라도 눈에 띄지만 않으면 통한다. 하지만 마음의 길은 모두 몸에 나타난다. 길은 두 갈래가 있다. 세상의 길과 마음의 길. 세상의 길에는 어떠한 구멍이 있을지 모른다. 또 어떤 칼날이 있을지 모른다. 신의 길은 가슴 세 치의 길이므로 지나려 해도 지날 수 없다. 이것만 충분히 납득한다면 어떤 일도 모두 다스려진다. (1891. 1. 27)

 

라고 깨우쳐주시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신님의 길은 형체가 있는 길이 아니다. 그래서 이렇게만 하면 된다. 라든지 저렇게만 하면 된다. 라는 식이 아니라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나는 지금 포교소장이기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서 근행보고 손춤 추고 히노끼싱도 하고 하는 것이 겉으로 보기에는 신님의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정신적으로 신님에게 의지해서 따라가는 마음이 없으면 형체로서는 아무리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여도 신님의 길을 걷는 것이 아니다. 라는 겁니다. 신님이 받아주시지 않습니다. 겉으로 아무리 열심히 해도 마음이 신님에게 의지해서 따라가는 마음이 없으면 안 됩니다.

신님이 안 받아주시면 신님이 우리를 이끌고 갈 수 없기 때문에 아무리 오랫동안 신앙을 했더라도 신님의 리가 마음에 다스려지지 않기 때문에 분별력도 갖출 수가 없게 되는 겁니다. 분간할 수 있는 마음이 없게 되면, 나중에는 신앙하는 즐거움보다는 부족의 마음만 남게 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눈앞의 현실에 집착하는 인간의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건강하고 아무 부자유 없이 걸어가게 되는 일이나 내 생각대로 모든 일이 풀리는 일만이 어버이신님의 수호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어버이신님은 모든 인간이 말대까지 영원히 즐겁게 살 수 있는 세계건설을 위해서 활동해주시고 있기 때문에 그것들을 위해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모든 고난, 고생의 마디야말로 어버이신님의 수호다. 라고 생각합니다.

남이 뭐라고 말하더라도 어떻게 생각하더라도 신님을 믿고 신님의 가르침을 구해서 바보가 되서 신님의 가르침대로 걷고만 있으면 신님이 그 마음을 받아주셔서 꼭 신님의 자녀로서 좋은 견본으로 성인시켜주신다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어버이신님은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을 살펴보시고 고맙게 되는 리로써 다스려주려고 활동하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상이나 사정에 의해서 알려주시는 어버이신님의 진실을 분간해 듣지 않으면 안 됩니다. 어버이신님의 진실을 모르는 사람들끼리 멋대로 인간마음으로 이렇게 해야 된다. 저렇게 해야 된다. 라고 해서는 어버이신님의 활동에 방해가 되어 쓸데없는 고생을 더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인간은 어버이신님에 의해 살리어지는 차물이기 때문에 어버이신님의 뜻에 따라서 사는 것이 최선의 길입니다. 그것을 알려고도 하지 않고, 인간의 지혜나 능력으로 생각을 해서 일시적으로 부를 축적하거나 성공을 거두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겉모습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 것은 나중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고 더 허무한 결말을 보게 될지도 모릅니다. 거꾸로 이야기하면, 어버이신님의 뜻에 따라서 자기를 버리고 걷는 사람은 생활에 고생을 할지 모르지만, 그것도 겉모습뿐이고 사실은 어떤 일도 즐거워할 수 있는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버이신님이 말하는 자유자재한 수호인 겁니다. 자유자재라는 게 내가 바라는 대로 모든 것이 잘 되고, 물질적으로 성공하고, 자녀의 출세 등을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고, 어떤 일도 즐거워할 수 있는 건강한 마음이 자유자재한 수호다. 라고 생각합니다. 되어져오는 모든 일을 마음으로부터 즐거워할 수 있게 되는 일이 자유자재한 수호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리의 가르침에 대해서 분별을 할 수 있게 되면 참회를 할 수 있게 됩니다.

지도말씀에

분별을 하게 되면 참회를 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참회는 말할 것 없겠지. 보고 참회, 당해서 참회. 장래의 일도 깨우치는 거야. 이제부터 앞으로 평생의 사정을 정하는 것이 참회.

참회 참회욕심이 없고 미련이 없는 일무리한 이야기, 손해 보는 이야기를 진실한 신님의 진실한 수호라고 받아들여서 즐겁게 다스려가는 리에 의해서 참회의 리가 다스려진다. 참회의 리가 다스려지면 걷는 길이 크게 넓어지는 것도 알지 못하고 말해주어도 못 알아듣고 남의 잘못에 대해 <저래서야 리에 어긋나서 안 된다. 이래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말한다.

무리한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지 않고 자신의 유감스러운(부족스럽게 생각하고 있는)리를 단노하려고 노력하지만 현실에서는 인간의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용서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러한 때야말로 참회의 리를 다스린다면 앞으로 장래의 운명이 크게 열리는 것을 알지 못하는 불쌍한 마음을 인간마음이라고 한다. 그래서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유감의 리가 없어지지 않고, 고생스러운 길만을 걸어야 한다고 진실한 신의 의도를 전해주는 것이 전갈인이라고 한다. (1892. 2. 8)

 

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참회의 마음이 다스려지게 된다면 내 대신에 저 사람이 만족스럽고 즐거워지면 좋겠다.’라고 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면 내가 쌓은 유감의 리가 없어져버리는 겁니다. ‘저 사람이 저렇게 좋아하는 데 이걸로 됐다.’라는 남이 잘 되는 것이 좋은 마음이 되면 유감의 인연이 깨끗하게 없어지는 겁니다. 그런 마음이 생긴다면 충분한 참회의 리가 다스려진다고 했습니다.

지도말씀에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이런 것들을 가까이 해서 읽고 가르침에 따라서 분간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겁니다. 현실에 나타나는 일만 쫓아 가다보면 어느새 인간마음에 빠져서 신님의 의도대로 가는 것을 깨닫지도 못하고 노력도 하지 않고 지나가게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마무리해의 의미

 

이야기가 바뀌지만, 본부 춘계대제의 진주님의 신전강화의 요지를 잠시 읽어드리겠습니다.

 

우리들이 교조님의 한없는 어버이마음에 다가가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지만, 예를 들면, 화가 나면 남이 미워지게 될 때라도 교조님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하고 생각만 해봐도 많이 달라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금 시순에 있어서 한마음 한뜻의 활동이란, 모든 용재가 구제에 마음을 기울이고 구제에 전념하는 것입니다. 그 의미는 구제하고 싶은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구제를 남의 일처럼 생각했던 사람도 남을 구제하는 첫걸음을 내디딜 수 있도록 주위에서 도와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한마음 한뜻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의 목적을 향해서 각자가 자신의 입장에 따른 활동을 충분히 다하면 서로 간에 연대해서 전체로서 조화로운 활동을 하는 데 있습니다. 용재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이 할 수 있는 구제활동, 나이기에 할 수 있는 구제활동을 한다면 전교회의 구제의 기운도 더욱 왕성해질 것입니다.

교조130년제를 향한 삼년천일로 기한을 정해서 활동해온 연제활동도 드디어 그 3년째 마지막 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1년을 마무리의 해라 부르며 각자 전력을 다할 것을 다짐하고 있습니다. 보통, 곧잘 쓰는 마무리라는 말의 의미를 살펴보면 완성시키는 일, 일의 마지막 단계에서의 손질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이것은 완성시켜야할 구체적인 목표가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갑작스레 마무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실천해왔던 일이 있고 그 위에 마무리라는 마지막 단계가 있습니다. 유달 발포 후 그 뜻을 철저히 하기 위해 실시된 직속교회의 본부순교, 전교회의 일제순교 그리고 작년 봄에는 구제의 실체를 재촉하기 위해서 각 지역에서 개최된 용재 모임 또한 마무리의 해를 향해서 마음작정의 달성을 위한, 실천을 위한 본부순교와 연제활동을 촉진하기 위한 여러 가지 활동들을 해 왔습니다. 이런 일련의 행사는 모든 교회, 모든 용재가 유달의 정신에 근거하여 지금까지 활동한 위에 더욱 움직여야 합니다.

개중에는 나는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는 데 이제부터 하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는 것은 없습니다. ‘아직 1년이 남아있다.’고 생각하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습니다. 늦었다는 생각이 들어도 늦게 출발했다는 것을 만회하는 마음으로 새롭게 마음을 가다듬어 실천해 주었으면 합니다. 용재 모두가 이 시순에 교조님의 어버이마음에 보답하는 성인의 발걸음을 한 걸음이라도 두 걸음이라도 나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연제활동 중 일관해서 말씀드린 것은 구제의 실천입니다. 그것을 남을 구제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은혜보답을 하는 것이고 세계 일렬들을 구제하는 천리교가 시작된 목적에 바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 됩니다. 그리고 교조님께서 현신을 감추신 그날의 지도말씀의 한 구절인 지금부터 구제하는 거야.’라는 말씀을 받들어서 하는 활동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교회장이나 포교소장만 하는 일이 아닙니다. 신상·사정과 관계없이 구제를 해야만 교조님의 도구들인 용재로써의 이름에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연제활동의 마지막 1년을 마무리라는 말에 어울리는 실천으로서 교조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도록 노력해서 후회 없이 열심히 했다.’라는 맑게 개인 하늘과 같은 기분으로 교조연제의 당일을 맞이했으면 좋겠습니다.

 

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남은 마무리 1년 동안 남을 구제하는 데 있어서 정성을 다해서 노력을 해서 내년 연제 때에는 활동한 결실만큼 교조님을 기쁘게 해줄 수 있는 작정을 해서 실천해 주셨으면 합니다.

잘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4)

 

 

* 본 인사말씀은 교회보홈페이지(www.tenrikyo.kr)와 유튜브에서 동영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