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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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교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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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계대제 신전강화

 

남을 구제하는 정성의 마음

 

발췌 문구: 마음이 풍요로워지려면 먼저 자신의 마음을 파내려 가야 합니다. 주위의 누구보다도 낮은 곳에 자신의 마음을 둔다면 즐거움이 가득한 윤택한 나날을 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상봉(고성교회장)

 

오늘 고성교회 춘계대제에 참배해주시고 근행을 용솟음치게 올리게 되서 기쁘게 생각합니다.

지금부터 잠깐 한 말씀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잘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4)

 

올해는 교조님께서 은신하신 지 129년째 되는 해이고 내년이면 교조130년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교조님을 통해서 이 길의 가르침을 알게 됐고, 교조님께서 보여주신 모본을 통해서 이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교조님의 모본을 통해 어떻게 사람들을 구제했나를 살펴보면 우리는 남을 돕기 위해 어떤 마음을 써야 하는지 알 수 있게 됩니다.

 

남을 돕는 것은 먼저 상대를 인정하는 데서부터

 

고본천리교교조전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한번은 쌀 창고를 부수고 쌀을 훔쳐 가려는 자가 있었다. 그것을 발견한 하인들이 곧 범인을 붙잡아서는 고발하자며 소란을 피웠다. 이때, 마침 잠을 깬 교조님께서는 하인들을 만류하시며

가난에 쪼들려서 한 짓일 거야. 그 마음이 가엾다.”

하고, 오히려 도둑을 위로하고 용서하신 다음, 쌀을 주어 돌려보내셨다.

어느 해 가을 추수 때엔 손이 모자라 일꾼을 하나 더 댔더니, 그 사람은 몸이 튼튼함에도 불구하고 게으름만 피울 뿐, 다른 사람이 아무리 바빠도 도무지 일을 하려고 하지 않아 여러 사람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교조님께서는 그냥 내버려두시지 않고, 언제나

수고가 많구나.”

하고 인자스러운 말씀으로 꾸준히 이끌어 주셨다. 그 일꾼은 처음에는 그것을 기화로 여전히 게으름을 피웠으나, 이윽고 이래서는 정말 부끄러운 일이라 깨닫고 일을 하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누구보다도 부지런한 일꾼이 되었다.

이 두 가지 이야기가 이어서 나와 있습니다. 여기서 보면 도둑질을 하다 들킨 사람에게 가난에 쪼들려서 한 일이다라고 이야기 하셨습니다. 잘못을 지적하거나 책망하지 않고 그 사람 처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이해하고, 용서를 해주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또 게으른 사람에게도 수고가 많구나했습니다. 사람을 평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사람을 보고, 그것을 인정을 하고 용서를 해주는 그런 마음을 쓰셨습니다. 이것이 교조님께서 남을 구제할 때 쓰신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흔히 잘못한 사람을 고치려고 당신이 틀렸소”, “이런 것이 잘못 되었소하고 지적을 하지만, 사람은 여간해서는 잘 바뀌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기 마음에 들지 않거나 대립하는 상대를 용서하는 마음은 결과적으로 자신을 용서하는 일이 된다고 합니다. 상대가 처한 환경을 보고 그래도 괜찮다며 인정해주고, 내가 처해진 환경을 보고서 그래도 괜찮다며 충분히 만족하는 마음이 고마운 수호를 받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용서하고 인정하는 것, 지금 내가 어떤 처지라도 충분히 고맙다고 생각하는 일이야 말로 단노입니다. 누가 충분히 고맙게 해주느냐고 한다면 어버이신님 외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처지에서도 어쨌든 충분히 고맙다는 마음으로 상대를 바라보고, 내 자신도 그런 마음을 가지면, 있는 그대로 인정하게 되고 이것이 단노의 마음입니다.

 

정성의 마음은 남을 구제하는 마음

 

우리가 용재가 되기 위해서는 9번의 별석을 거쳐서 존명하신 교조님이 계신 곳에서 진주님으로부터 수훈의 리를 받습니다. 용재가 되어 수훈의 리를 받으면 곧바로 가석의 말씀이라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때에 받는 것이 하서입니다. 수훈의 리를 받은 용재가 평생 지켜야 할 마음가짐에 대해서 적혀 있습니다.

그 하서 가운데

나날이라 한다 항상이라 한다 나날이 항상 정성 하나라 한다. 정성의 마음이라고 하면 얼핏 약한 듯이 생각하겠지만 정성보다 굳세고 오래가는 것은 없다. 정성 하나가 하늘의 리

라고 나와 있습니다.

신님은 우리들에게 정성의 마음을 바라고 계십니다. 그 정성의 마음은 우리들이 생각하기에 손해를 보는 듯한, 믿음직스럽지 못한 것 같아도 이 정성보다 튼튼하고 오래가는 것은 없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정성의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요? 무엇을 정성이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까?

친필에 정성이라는 말씀이 많이 나오지만 대부분은 참된 것, 확실하게 라고 강조하는 말로써 쓰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서에 나오는 정성의 마음과 같은 의미로 쓰이고 있는 것이 친필에 몇 구절 나옵니다.

입으로만 아첨하는 것 쓸데없어

마음 가운데 정성만 있다면 3-39

입으로 아무리 좋은 말을 하더라도 신님의 눈으로 보자면 필요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참된 정성의 마음이 있으면 그것을 보고 계신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술이나 법이 훌륭하다 생각 말라

마음의 정성 이것이 진실 5-44

이 세상에 인간이 개발한 기술이나 학문, 인간 세상을 다스리는 법에 의지해서 그것이 훌륭하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우리들이 쓰는 정성의 마음이 진실이라고 하십니다.

진실로 마음에 정성이 있으면

어떤 구제도 틀림이 없다 13-71

우리들의 마음에 정성의 마음이 있으면 어떤 구제도 해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면 신님이 받아주시는 정성의 마음이란 어떤 것일까요?

그것이 친필에 있습니다.

진실로 구제한줄기 마음일 것 같으면

아무 말 아니해도 확실히 받아들인다 3-38

즉 어버이신님이 받아주시는 유일한 마음씨 그것이 구제한줄기의 마음이것 밖에 없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터전에서 별석 이야기를 9번 듣고, 또 우리가 원해서 받을 수 있는 것이 구제한줄기를 위한 수훈입니다. 이 길을 신앙하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신님에게 통하는 길은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이 사람을 도와주세요.’라고 바라는 마음뿐이라고 말해도 좋습니다.

 18877월 지도말씀에

어떠한 일이든지 모두 각자의 마음 나름이라고 말해 둔 것이다. 어디에 있더라도 月日의 몸뚱이야. 어디에 있더라도 마찬가지. 정성스런 마음 하나야. 정성이 하늘의 리야. 하늘의 리에만 맞는다면 어디에 있더라도 길이 열리는 거야. 진실과 정성이 없으면 어디에 가더라도, 무엇을 하더라도 길은 좁아질 뿐이야.

라고 나와 있습니다. , 정성의 마음만 있으면 어디에 가더라도 길이 난다고 말씀하십니다.

 

교조님은 형체가 아니라 마음을 바라신다

 

오늘은 춘계대제입니다. 춘계대제를 올리는 의의는 교조님의 현신을 감추신 1887년 정월 26일에 올렸던 그 근행을 돌이켜보고 또한 교조 50년의 모본의 길을 돌이켜보는 날입니다.

교조님은 근행을 위해서 여러 가지 애를 쓰셨습니다. 교조님 69세인 1866년부터 신악가를 가르쳐주시고, 72세가 되는 1869년부터는 친필을 적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78세가 되는 1875년까지 신악탈을 만들고 모형감로대를 준비하고, 그해에 터전을 결정하고 신악가를 10년에 걸쳐서 완성하게 됩니다. 교조님 50년의 모본의 길 가운데 22년은 근행의 완성을 서두르신 길이었습니다.  

고본천리교교조전을 읽어보면 1887년에 교조님이 은신하실 때 전후 사정이 나와 있습니다. 그때 126일에 근행을 올리신 선생님들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교조님은 그전부터 몸이 나빠져서 초대진주님을 비롯한 여러 선생님들과 문답을 통해 지도말씀을 내리십니다. 그래서 126, 초대진주님은 선생님들에게 목숨을 버려도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만 근행에 나오라고 하시고, 그 당시 근행에 나왔던 사람들은 감옥에 갈 각오로 버선을 두 겹을 신고 옷도 몇 겹을 입고 근행을 올리게 됩니다.

하지만 그 당시 근행을 올렸던 사람들의 이름을 보면, 창인 2, 신악탈 10, 손춤 6명은 모두 남자가 올렸다고 나와 있습니다. 신악탈 5명과 손춤 3명은 여자가 올려야 하는데, 모두가 남자가 올렸다고 합니다. 그럼 악기는 어땠는가 하면 여자악기는 가야금과 월금만 여자가 치고, 해금은 아예 올리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남자악기는 박자목, 제금, , 현종 아무도 안쳤습니다. 오로지 장고만 갖추고 근행을 올리게 됩니다.

아마도 박자목, , 현종 등 큰소리가 나는 악기를 치면 경관이 단속하러 오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앞서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조용히 근행을 올릴 수 있는 가야금, 월금, 장고만 넣어서 근행을 올렸던 것입니다. , 그 당시의 근행은 온전하지 못했습니다.

교조님이 50년에 걸쳐서 가르쳐 주신 교조님의 마지막 근행인 126일의 근행이 근행인원도 다 갖추지 못했던 근행인 것입니다. 하지만 오랜만에 대낮에 당당히 악기를 치면서 즐겁게 근행을 올렸고, “근행의 소리를 교조님은 만족스럽게 듣고 계셨다.”라고 고본천리교교조전에 나와 있습니다. 만족스럽게요

무엇에 만족하셨을까요?

아마도 교조님이 만족하신 것은 내가 꼭 근행을 올리고 싶다.’라는 마음으로 올리신 분들의 마음에 만족하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날은 집터의 동쪽과 서쪽 편에는 사람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대나무로 담을 쌓아놓았는데 그 담이 허물어질 만큼 많은 사람이 와서 근행을 보았다고 합니다. 그래도 근행인원을 갖추지 못했지만 교조님은 만족하셨습니다. , ‘내가 근행을 올리자는 마음이 되는 것이 교조님께서 유일하게 만족하신 길이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어버이신님과 교조님은 형태보다 우리들의 마음을 받아주신다는 것을 이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근행을 올리지 못했던 이유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습니다.

 

근행을 올리지 못한 이유

 

19202월호 도우지에 이런 이야기가 나와 있습니다.

교조님의 옆에서 시중을 들던 분이 뒷날에 교조님의 이야기를 들려주신 것 중에

가끔 교조님의 곁에 있을 때 오른쪽인가 왼쪽인가 엄지손가락이 구부러져 있었다. 왜 그런지 여쭈어보니 이것은 교조님에게 뭔가 귀신이 달라붙어 있다고 생각해서 경찰서에서 엄지손가락을 서로 묶어서 매달아 놓았을 때 구부러져서 그렇게 되었다고 하셨다.”

교조님은 감옥에서 17,8번이나 노고를 하셨습니다. 추운 판잣집에서 겨울을 난다든지, 여름에 뜨거운 감옥에서 부채도 없이 지내셨다는 이야기는 별석 말씀 가운데도 나오지만, 그 당시의 선배선생님들이 보신 감옥에서 교조님의 모습은 엄지손가락을 묶인 채 매달려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교조님이 근행을 올리라고 해도 근행을 올릴 수가 없었고, 그래도 교조님은 근행을 올리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고생의 길을 걷는 것이 장래의 낙이다

 

하지만 그런 고생의 길도 걸어가는 것이 이 길의 신앙에서는 장래의 낙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천연자연의 리를 기다린다 (1888. 8. 17)

라는 지도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교조님의 마음에 보답하는 최선의 길은 남을 구제하는 데 있고 그 마음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고생스럽고 힘든 일, 이런 것들을 우리가 먼저 걷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자존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내가하는 마음을 버리고 당신이 하는 말이 맞다.”라고 먼저 말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상대를 인정하고 용서를 하는 것보다 자신의 의견을 먼저 말하고 싶고 그것을 그대로 밀어붙이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우리는 이 길의 가르침을 전할 때, 자신의 이야기를 먼저 하거나, 천리교 가르침을 먼저 말하고 당신은 이런 이치를 모르니까 수호를 못 받는다.”라고 말하곤 합니다. 내 아이에게 신상이 오거나, 내 주변에 신상이나 사정이 오면 누군가의 탓으로 이렇게 되어 버렸다고 하면 아주 편합니다.

하지만 진짜 원인은 자신에게 있고 그것을 납득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것이 고생스러운 길을 걷는 것이 어렵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이런 길을 걷는 것이 장래의 낙이라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즐거워할 수 없는 일이 생긴다든지 부족의 마음이 생기는 것은 자신의 마음이 높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마른 땅이라도 1m, 2m... 계속 파내려가다 보면 결국에는 물이 나옵니다. 마음이 풍요로워지려면 먼저 자신의 마음을 파내려 가야 합니다. 주위의 누구보다도 낮은 곳에 자신의 마음을 둔다면 즐거움이 가득한 윤택한 나날을 보낼 수 있을 것입니다. 마른 마음의 땅을 몇 미터나 파내려가는 것은 힘은 무척 들겠지만 특별히 기술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누구든지 언제든지 시작할 수 있는 일입니다. 무엇을 보든지 무엇을 듣던지 즐거워질 때까지 마음을 낮추는 일이 마음의 역사의 기초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교조님 연제가 일 년 남은 지금, 남을 돕고, 구제하는데 어떻든 낮고 상냥한 마음으로 노력해 주시기를 당부 드리며 오늘 이야기를 마치고자 합니다.

잘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