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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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교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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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경지수 54

향내 풍기기

 

박지수

 

따라 하고픈 멋진 모습

엊그제 전도청 월차제 후에 뜻이 맞는 몇몇 분과 함께 김해 연지공원으로 전도에 나섰다. 마침 일요일 한 낮, 겨울날씨치고 바람도 자는 따스한 오후여서 공원에는 산책 나온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연지공원은 18일 전도청 월차제 참배 후에 고정으로 가는 전도장소여서 익숙한 곳이다. 이날은 보통 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전도에 참여하여 13명이 함께 하게 되었다.

깔끔하게 검정색 일색 옷에 오렌지색 어깨띠를 통일하고, 한 줄로 걸어가며 질서정연하게 신명나르기를 하였다. 휴대용 앰프에서는 신악가가 울려 퍼지고, 청아한 박자목 소리와 편안하고 듣기 좋은 노방강연이 이어졌다. 공원의 넓은 광장에서 노방강연을 하고 있는 데 저 멀리 앞에 있던 대 여섯살 된 남자 꼬마가 큰 소리로 ! 멋있다, 멋있다, 멋있다!!”는 것이었다. 우릴 보면서 엄지손가락을 척 올리고 말이다. 순간, 우리들 마음도 즐거움이 샘솟았다. ‘녀석~ 뭘 아는 데!!!’ 생각하며 더욱 즐거운 마음으로 환한 웃음으로 전도를 하였다.

 

천리교 브랜드 마케팅

어디선가 읽었던 심리 조사한 내용이 생각났다. 사람은 누구나 깔끔하고, 질서있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면 마음이 밝아지고 기분이 상쾌하게 좋아진다고 하였다. 반면에 흐트러진 모습, 지저분한 것을 보면 기분이 나빠지고 우울해지거나 짜증이 난다고 하였다. 내 모습이 상대방의 기분을 좌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깔끔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당당하게 전도를 하면 누가 봐도 멋지게 보인다. 사람들은 멋지게 보이는 것을 따라한다. 그래서 유행이 생겨나는 것이지 않은가. 우리들이 전도하는 모습이 멋지고 아름다워 보이면 보는 사람의 마음속에 따라오고픈 마음이 자신도 모르게 생겨날 것이다. 다만 아이들은 순수하기 때문에 보이고 느껴지는 대로 그 꼬맹이처럼 망설임 없이 그냥 큰소리로 표현한다. 어른들은 생각이 많기에 힐끔거리거나 멀찌감치에서 지켜만 보지만 계산 없는 아이들은 달려와서 호기심을 표현하거나 말을 걸거나 호감을 표한다. 가끔씩 나도 끼이고 싶다거나 좋아 보인다, 멋있다며 말을 걸어오기도 하고 합장하며 절을 하는 분들도 있고, 박자 치는 시늉을 자신도 모르게 따라 하는 사람도 더러 눈에 띈다. 언젠가 아직도 천리교가 있어요하며 놀라는 사람도 있었다.

그 어린 꼬마의 말을 들으면서 오늘 우리가 풍기는 향내가 어떤 것인가를 확인하니 더 기쁘고 용솟음친다. 마치 신님께서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인 양 느껴졌다.

이렇게 여럿이 하는 노방전도는 천리교의 브랜드 마케팅이나 다름없다. 천리교는 세상 사람들에게 어떻게 다가가고 있을까?

우리나라 대표 브랜드인 삼성, 현대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도 그들은 TV, 라디오, 신문 따위 상업매체를 비롯한 보이는 곳곳에 끊임없이 이미지 마케팅을 하고 있다. 여기에 엄청난 에너지와 물질을 퍼붓고 있다. 제품을 만드는데 드는 노력만큼이나 기울이고 있지 않는가. 우리 정도는 대한민국 사람 다 아는 브랜드니까 광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가 길거리에서 보여지는 모습도 곧 천리교라는 브랜드를 각인시키는 아주 중요한 활동이라고 굳게 믿는다. 그래서 거리에 나설 때 입는 옷, , 표정, 말투 하나하나 세심하게 살피려고 노력한다.

 

사기치지 않도록

지난 해 봄부터 매일 전도하기 작정을 지켜 오고 있다. 하루하루 날이 쌓여서 200일을 지나 300일로 달려가는 가운데 전도를 하면서 느끼고 깨닫는 것들이 많다.

특히 즐겁지 못한 일들 속에서 전도를 나가면 스스로 마음에 새기는 것이 있다. 보통 전도를 나가면 즐겁게 사는 길, 천리교입니다.” “행복해지는 길, 천리교입니다.” “운명을 바꾸는 길, 천리교입니다.” 하면서 전도지를 주게 된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 그 말, 맞니? 너 사기치는 거 아냐?’하고 묻는다.

즐겁게 사는 길이라면서 너는 정말로 즐겁니?’

행복해지는 길을 알려 준다면서 너는 지금 행복하냐?’

네 얼굴은 행복한 얼굴이냐? 정말로 운명을 바꾸는 길, 맞아?’

즐겁게 사는 길, 행복해지는 길, 운명을 바꾸는 길이라고 말하면서 즐겁지 않다면, 행복한 얼굴이 아니라면 사기 치는 것이다. 가르침대로 살지 않으면서 말로만 그렇다고 하면 그것은 명백한 사기다!!!

그래서 사기 치지 않도록 단노로써 마음을 다스리려고 나날이 정성을 다한다. 그리고 거울을 향해 행복해 보이는 환한 웃음을 자신에게 지어보이며, 자기 암시를 하고 파이팅을 외친다.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기 때문에 행복해진다는 말처럼 먼저 웃는다. 환하게 웃는 내 얼굴이 내가 내미는 전도지보다 더 먼저 상대방에게 인식된다. 그러므로 맨 먼저 웃는 얼굴로 인사를 하는 것이 전도의 첫 걸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웃음은 평소에 익숙하지 않으면 찌그러진 웃음이 되기 십상이고, 상대에게 호감을 주지 못하는 것도 자명하다. 평소 생활이나 마음이 얼굴에 드러나는 것이니까 전도를 거듭하면 할수록 내 얼굴은 더욱 밝아지고 행복해 지는 것 같다.

전도지를 전할 때는 먼저 환한 웃음으로 무장을 한 채, 마주 오는 상대의 눈을 보고 반갑게 인사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순간적으로 그런 나를 자신이 친한 사람 중에 누군가로 착각한다. 마치 반가운 사람을 대하듯 인사하니까... 그 다음에 두 손으로 공손히 내미는 전도지. “행복해지는 열쇠가 여기에 있습니다. 천리교입니다.”하는 데 누가 거부하겠는가?

 

자신을 구제하는 일

노방강연은 한자리에 서서 하는 경우도 있지만 걸어가면서 하는 때도 많다. 시장 한쪽에 서서 노방강연을 하면 근처의 상인들은 다 듣지만 오고가는 사람들은 한 두 마디나 한 두 구절을 듣게 된다. 그에 비하여 노방강연을 하는 사람이나 같이 전도를 하는 용재들은 모두 다 듣게 된다. 바로 옆이므로 아주 잘 들린다. 노방강연을 하는 사람이 제일 먼저, 가장 많이 그 말씀을 듣게 되고, 새겨지게 되는 것이다. 그 노방강연 내용이 가슴 속에 스며들어 반성참회하게 하고 쌓인 티끌을 털리게 한다. 그러므로 결국 노방강연은 스스로 구제받게 되는 길이기도 하다. 그래서 전도를 하면 할수록, 스스로 즐거워지고, 마음이 밝아지고, 마음성인에 가까워지게 되는 것을 느끼게 된다.

앰프에서 나오는 신악가에 맞춰 박자목을 치면서 신악가를 부르다 보면 전도 나오기 전에 유쾌하지 않던 어떤 일도 말끔히 사라지고 어느새 맑아진 마음에 시원해지는 것을 느낀다. 노방강연도 그렇지만 신악가를 부르는 일 역시 마음의 티끌을, 독소를 없애는 것 같다. 마음의 노폐물을 신악가로 씻어내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전도를 하면서 노방강연을 하거나 신악가를 부르면 가슴이 시원해진다고 한다. 홧병, 우울증 같은 신경성 병들도 자연스레 사라지고 즐거움이 차오른다. 건강해진다.

 

노방강연

노방강연문을 외울 정도로 자주 노방강연을 하도록 애쓰고 주변에도 권하는 이유 중 하나는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신님의 가르침이 튀어나올 수 있도록 스스로 새기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같이 전도를 하는 분들은 천리교가 뭡니까?” 하는 질문을 받았을 때 바로 튀어나오는 말이 있다. “운명을 바꾸는 길입니다. 행복해지는 길입니다. 건강하게 사는 길입니다. 즐겁게 사는 길입니다.” 자신 있고 당당하게 이런 말들이 바로 망설임 없이 나온다고 한다. 노방강연을 늘 하고, 듣다 보니 저절로 그런 말들이 입에서 튀어 나오는 것이다. 노방전도로 입에 익기 전에는 쉽게 나오는 말이 아니었다.

천리교가 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더듬거리며 궁색한 말을 이어가던 사람이 이렇게 아무 거리낌 없이 말들이 튀어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대면전도를 하게 될 때 자신도 모르게 노방강연에서 읽고 들은 내용들이 툭툭 스스럼없이 나와서 가르침을 전하게 된다. 꼭 필요한 말이, 꼭 필요한 그 순간에 바로 떠오르는 것이다. 스스로도 깜짝 놀랄 정도로 조리있고 자연스럽다.

나날이 밥을 먹고 에너지를 얻어 생명을 유지하고 살아가듯이 나날이 전도를 통해서 신님의 힘을 얻고 살아가고 있다. 전도를 나가기 위해서 더욱 정성스런 근행을 올리게 되고, 근행으로 더욱 마음에 강한 중심을 가지게 된다. 나날이 살리워지는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나날이 전도를 일상 생활화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바쁠 때

너무 바빠서 할 수 없을 때조차도 신님께 고하고 대문 밖이라도 어깨띠를 하고 나간다. 전도를 그냥 자연스런 내 삶의 일부로 만들기 위해서다. 어깨띠에는 함께 여는 즐거운 삶, 천리교’ ‘감사, 겸허, 서로돕기, 천리교혹은 세계는 하나, 천리교’ ‘우리는 한 형제, 천리교라고 쓰여 있기 때문에 애써서 천리교라고 외고 다니지 않아도 좋다. 눈에 확 띄는 오렌지색이므로 많은 사람들이 유심히 보고 지나간다. 앞에서 소리 내어 읽고, 뒤에는 뭐라 쓰였나 싶어서 나를 돌려세우는 사람까지 있다.

어깨띠를 매는 순간, 스님이 승복을 입듯이 나는 천리교 용재임을 만천하에 드러내게 된다. 당연히 행동을 삼가게 되고, 친절하고 배려하는 태도, 환한 웃음, 너그럽고 관용적인 모습이 배어나온다. 어깨띠 하나에 엄청난 에너지가 숨어있는 것을 느낀다.

월차제 전날이라 전도할 시간을 따로 낼 수 없을 때에는, 장을 보러가는 마트에 어깨띠를 매고, 계산을 하면서 돈과 함께 전도지를 전한다. 낯선 곳에 가서 길을 물을 때도 감사하다며 인사를 하고 행복의 열쇠입니다하며 전도지를 전한다. 먼 길을 갈 때는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통과하면서 교통비와 함께 전도지를 전한다. 문제는 전도를 위해 어깨띠를 매고 문을 나서는 것이고, 한 장의 전도지를 전하는 것이고, 한 마디 말을 건네는 것이다. 아무리 작더라도 마음을 내는 것이 우선이지특별한 방법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 싶다.

 

언제 어디서나

얼마 전 우리는 터전에 둘이서 다녀왔다.

전도시간을 따로 낼 수 없이 바쁘니 톨게이트를 지나며 전도지를 전하고, 김해공항에서 장기주차장에 차를 대놓고는 어깨띠를 매고 셔틀버스를 타고, 환전을 하고, 국제선 공항 내부를 돌아다니며 출국 수속을 밟았다. 터전에서도 하루 종일 어깨띠를 매고, 참배를 다니고, 신구제작소에 들리고, 시장통을, 천리역전을, 교조님 산소를 돌아다녔다. 간사이 공항에서도 제1터미널에서 어깨띠를 매고 돌아다니다가 셔틀버스를 타고, 2터미널에 가서 탑승수속을 밟을 때까지 전도를 하고 다녔다.

그렇게 전도는 어려운 것이 아니란 것을 체험하게 된 것도 200여일 사이에 일어난 변화다. 지금은 생활 속에 스며들고 녹아들어, 밥 먹듯이, 숨 쉬듯이 그냥 자연스레 하면 되는 전도가 되어가고 있다. 이제야 비로소 천리교 용재다운 용재가 되어가는 것 같아 신님, 교조님 앞에 엎드려도 부끄럽지 않은 나날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열심히 전도구제에 매진하시는 선배선생님들, 교우들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전도활동이지만, 이나마 200일을 넘기며 나날이 전도활동을 할 수 있게 된 것이 스스로 기특하고, 참으로 감사한 수호라고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