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50호
입교187년(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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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교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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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이야기

잠깐 이야기

 

사람에 따라 달라야 하는 구제의 방법

 

이상봉(고성교회장)

 

몇 년 전에 동일본대재해 때에 큰 지진과 해일이 발생했습니다. 그때, 무너진 건물 더미에 깔려 있다가 9일 만에 구조된 부인이 한 분 있었습니다. 당시, 매스컴에서 크게 방송이 돼서 화제가 됐던 적이 있습니다. 그분에게 “9일 동안 무엇을 했습니까?” 하고 물어보니, “9일 동안 나무천리왕님만 외우고 있었다.”라고 했답니다. 그분은 천리교 신자였습니다. 자기가 건물더미에 깔려 있던 9일 동안 제일 의지하고 있었던 것이 천리왕님이었답니다. 그런 걸 보면, 극한 상황에 처해 있다가 살아난 사람들은 자신이 살아남아야 되는 분명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자신이 살아야만 되는 분명한 이유를 가지지 못한 사람은 살아남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떻게든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살아남을 확률이 높습니다.

2차 세계대전 때 유태인 대학살로 유명했던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있습니다. 6백만 명 이상의 유태인들을 독가스 살포 등으로 학살했던 곳입니다. 한 번 끌려가면 살아나오기 어려운 곳이었습니다. 그런 곳에서 살아남은 어떤 사람은 자신의 부인이나 자식들이 처형당한 상황에서도 자신만이라도 살아남아야겠다는 의지가 상당히 강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남기 위해서 자신을 변화시키는 법을 터득했다고 합니다. ‘삶에 대한 의지, 생명에 대한 본능, 살기 위한 본능을 쫓아가다보면, 자신이 살아왔던 경험이나 그에 대한 생각도 모두 바꿀 수 있다.’ 라는 수기를 적은 것도 있습니다.

사람은 생각 하나의 마음에 따라서 삶과 죽음이 갈리기도 합니다.

 

천리교를 신앙하다보면 신상이나 사정이 나오는 것은 티끌이 쌓이고 쌓여서 악인연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티끌이라는 것은 자신의 티끌을 깨우쳐서 털어나갈 수 있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런데, 자신의 티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남의 티끌을 보기 시작하면 그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죽이는 것으로 쓰일 수도 있습니다. 남의 티끌을 보고, ‘저 사람은 이런 티끌 때문에 이런 신상이나 사정이 나왔다. 무슨 악인연이 있어서 이런 사정에 처해졌을까?’ 하고 생각하고 그런 말을 그 사람에게 직접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럼, 그 사람의 마음이 죽게 되어 있습니다.

자신의 티끌을 보고 깨우치게 하기 위해서 이런 가르침을 가르쳐주신 겁니다.

사람은 누구라도 상대적입니다. 이런 신상이나 사정의 가르침을 깨우쳐주는 것도 그 상대성을 적용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런 교리를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맞춰서 천편일률적으로 말로써 가르쳐주게 되면,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잘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는 반면에 못 받아들이는 사람도 틀림없이 있게 마련입니다.

 

예전에 연성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요즘에는 장기이식을 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장기이식에 대해 이 길의 가르침을 어떻게 깨우쳐야 하는가에 대해서 토론이 벌어진 적이 있습니다.

한편에서는 우리 몸은 신님으로부터 빌려 받은 것이다. 빌려 받은 그대로 신님께 돌려드려야 하는데, 신님으로부터 빌린 것을 남에게 다시 빌려주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상당히 일리가 있는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 반대의 입장에서는 빌려줘서 사람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면 얼마나 큰 구제를 하는 것인가. 하는 의견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서 지금 생각해보면 어리석은 논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장기이식에 대한 논란은 생명윤리학자들이 만들어낸 질문인데, 거기에 대해서 천리교의 신앙자들이 대답할 필요는 없었던 겁니다.

그럼, 우리 천리교의 신앙자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상대적인 사람에 대해서 생각해야 됩니다. 그 사람을 살릴 수 있다면 충분히 장기이식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것이 사람에 대한 사랑이고 보편적인 양심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걸 교리에서 빌려주고 받은 것이라 된다, 안 된다. 라는 틀에 갇혀서 생각하는 것은 사람 자체에 대한 배려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사람에 대한 배려를 중심으로 가르침을 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자칫 잘못하면 가르침이라는 논리에 빠져서 사람을 보지 못하고, 배려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천리교가 한국 사회에서 현재 번성하고 쇠퇴하는 가운데 사람을 중심으로 배려해 나가는 열쇠를 잘 찾아 나가면 신상, 사정 구제를 잘 해나갈 수 있게 되고, 가르침도 널리 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틀에 박힌 생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티끌에 대한 가르침도, 남의 티끌을 보면, ‘저런 티끌이 내 눈에 쉽게 띄는 것이 그런 티끌이 나에게도 많이 있기 때문에 잘 보이는구나.’라고 생각해서 내 티끌을 털어내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남을 훈계하거나 깨우쳐 주는 것도 상대적으로 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남을 돕겠다고 생각하고 마음의 노력을 해나가면 구제에 대한 결실이 반드시 보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매달 월차제 전날(19) 저녁 근행 후 교회장님께서는 잠깐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이번 1219일 저녁 분을 정리해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