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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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교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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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월차제 신전강화

 

견디기 힘든 마디를 헤치고 지나니

 

 

조희영(남영교회장)

 

여러분, 반갑습니다.

원래는 제가 오늘의 감화당번은 아닌데 상급회장님의 지명을 받아 말씀을 전해드리고자 하니, 아직 햇병아리 교회장이라 부족하더라도 잘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4)

 

제가 최근에 너무 피곤해서 좀 쉬고자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18일에 상급 사모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원래 신전강화를 담당하셨던 다른 교회장님이 사정으로 못하게 되셔서 제가 신전강화를 하도록 교회장님께서 지명을 하셨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사실은 1년 전에도 신전강화를 하도록 연락을 받았었는데, 그때도 제가 너무 힘든 상황이어서 거절했었습니다. 이번의 연락을 받고 2번 상급교회장님의 부탁을 거절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오늘 이 자리에 서게 됐습니다.

 

견디기 힘든 마디를 만나서

 

여러분들도 잘 아시겠지만, 남영교회는 2대 교회장님의 출직이라는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큰 마디를 겪었습니다. 당시, 병석에 계시던 초대회장님, 80을 바라보시는 어머니, 한창 공부를 시켜야 하는 아이들, 어수선해진 교회 분위기, 정말 쓰러질 것 같은 제 몸과 마음. 그때 교조님께 약속을 하나 했습니다. ‘교조님! 제가 오늘 하루만 근행 보지 않고 쉬겠습니다. 그리고 교조님께서 바라시는 용재의 길을 걸어가겠습니다.’ 그리고 하루를 쉬었습니다. 2대 교회장님을 먼저 보내고 마음이 너무 힘들어서 그렇게 하루를 쉬었습니다.

제가 시집와서 초대회장님과 2대 교회장님으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2대 교회장님은 결혼 한 이후에 저의 생일, 결혼기념일을 한 번도 소홀히 지나가신 적이 없었습니다. 심지어는 제가 혼자 터전에 가 있을 때도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에는 전화도 주시고 선물도 보내주셨습니다. 나중에 이렇게 큰 짐을 주고 먼저 가시려고 그렇게도 잘 해주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사랑을 받은 만큼 보답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오늘날의 신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천리교 신앙을 그렇게 열심히 해도 별 볼 일 없구나. 하는 주위의 조롱으로 어버이신님, 교조님을 욕되게 해서는 안 되겠다.’라는 마음이 저를 지켜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지금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이 수호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내 눈에 보이지 않고 따라오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연입니다.

저는 2대 교회장님을 먼저 보내고 지도말씀을 자주 읽어 봅니다.

 

오랫동안 길에 이바지한 마음 1대의 리, 1대로 끝난다고 생각하니까 틀린다.

리는 영원한 리, 결코 헛수고가 되는 게 아니다. (1897. 1. 29)

 

이제 1대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1대라고 생각하면 믿음성이 없다. 여태까지 길이 없던 길을 내고, 거기에 리를 다스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리는 충분히 받아들였다. 받아들였다. 자 환생한다는 리, 이것을 생각하라, 생각하라. 영원한 리는 쉽게 남겨둘 수가 없다. 1대라고 생각하면 믿음성이 없다. 그러나 영원이란 것은 대단한 리. (1899. 5. 11)

 

, 인간이란 것은 단 한 대라고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한 대라 해서는 안 돼. 똑같이 환생을 거듭하는 거야. 자손의 리를 갖고 오는 거야. (1900. 10. 3)

 

우리는 출직이라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인 면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도말씀에 명백히 출직을 통해서 다시 되어져오는 것이라고 나타나 있습니다.

 

인간 1대 뿐이라고는 결코 생각지 말라. 그것은 한 가지 이치가 있다. 모두 태어나 다시 바꿔 태어나는 리를 분간하라. 부모가 자식 되고 자식이 부모 되고, 어떤 일도 많이 닮았구나. 이 한 가지 일로도 나타나 있다. (1901. 9. 23)

 

제가 올 시월에 터전에 참배를 갔습니다. 본부에서 어느 선생님을 만날 일이 있었습니다. 그 선생님께서 저희 2대 교회장님과 친분이 많은 분이셨는데요. 교조전일화편에는 나오지 않는 이야기이지만, 교조님의 일화를 제게 들려주셨습니다.

 

교조님 재세시에 어느 교회장님께서 출직 직전에 가족이 모여 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그 가족들이 교조님 왜? 교회장을 데려가려하십니까?” 하고 여쭈어보니 가야 올 것 아닌가.” 하셨답니다. 가야 자손으로 올 것 아닌가. 하는 말씀이셨습니다. 이후에 정말로 손자로 환생하여 대교회장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셔서 제 마음을 위로해주셨습니다.

제가 조금 전에 친필의 말씀을 이야기 한 것처럼 자손의 이치로 다시 되살아져 온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길은 천 갈래, 신의 길에는 앞일을 모르는 그러한 일을 하라고는 안 한다. 모본의 길을 걷지 못한다고 해서는 아무 것도 안 된다. 어떤 사람도 걱정스러운 일이 나타나면 걷기 어렵겠지. 하루 이틀 지나면 하고 말 했을 때 무슨 일이 생길까 하고 여겼겠지. 틀림없는 길이기 때문에 눈으로 보는 것과 같은 것. 모본의 길을 걷지 않으면 모본은 필요 없다. 모본을 고치면 아무 것도 안 된다.

이것을 잘 분간해서 누가 보더라도 과연 그렇구나 할 만큼 된다면 그것으로 좋은 거야. (1887. 11. 7)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교조님 모본의 길을 생각해보면, 교조님께서는 재세시에 남편도 자식도 다 먼저 보내고, 은신하실 때에는 단지 손자 한 사람만 남겨둔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저를 사랑해주는 아이들과 어머님이 계시기에, 제가 힘들 때에는 그래도, 교조님보다는 낫다.’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교회생활이 아무리 어려워도, 초대 교회장님께서 먼저 걸어주신 덕분으로 춥고, 배고프고, 고생하지 않고, 명칭의 리도 다 받아놓은 상태이고, 여기에 조금만 더 노력하면 고마운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교조님을 생각해보면, 아무리 힘들어도 감옥에 갈 일도, 추위에 떨 일도 없는 겁니다. 그런데 왜? 이 길을 못 걸어가겠나?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 길을 걸어가다 보면 견디기 힘든 마디를 만날 때도 있습니다. 저 자신은 그런 마디를 겪어봤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다른 분들은 저보다 열심히 하시니까 별 무리 없이 마디를 지나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럴 때마다 교조님의 모본을 생각해보면 교조님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 길을 신앙해 나가는 가운데 어버이신님으로부터 시험을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교로 비교해보면 초등학교, , 고등학교, 또 대학에 가기 위한 어려운 시험도 있습니다. 어버이신님에 의해서 어려운 마디의 시험을 치루게 되는 것은 더욱더 성인하라는 뜻에서 그런 어려운 시험을 치르게 하신다고 생각합니다.

그 어려운 시험이 바로 우리가 겪게 되는 마디입니다. 그런 시험을 잘 치루기 위해서는 노력하고 공부를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견디기 힘든 마디를 지나고 나니

 

올해는 교조130년제의 두 번째 해의 마지막 달입니다. 연제시순은 성인의 시순이고 구제의 시순입니다. 저희 교회도 2대회장님이 출직하시고 3년이 지났습니다. 그 시간동안 많은 수호를 받았습니다. 사회로 생각해보면, 사람이 떠난 뒤에는 싸늘하고 쓸쓸한 분위기입니다만, ‘교회라는 곳은 참으로 고마운 수호를 받는 곳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마디를 만났을 때 그 마디를 잘 참고 넘어가게 되면 반드시 어버이신님께서 10리 가면 10, 50리 가면 50리에 먼저 가셔서 수호해주신다는 것을 제가 최근에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제가 큰 아이를 낳았을 때부터 20수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일참을 이어오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을 보면 , 교조님을 닮았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분은 새벽 5시에 시장에 물건을 해서 보내고는 교회에 참배 오셔서 식사하시고 차를 세 번 갈아타고 다시 일터에 가셔서 밤 10시까지 장사를 하십니다. 헌데, 그렇게 피곤하실텐데도 교회에 오실 때 얼굴을 찌푸리신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비가 많이 오면 신발이 온통 젖어서 저벅저벅하는데도 교회에 들어오시면서 까꿍하시기도 할 정도입니다. 참으로 고마우신 분입니다. 그분이 씨앗을 뿌려놓아서 그런지 20여 년이 지나고 나니까 아침에 참배오시는 분이 여러분 생겼습니다.

저희 교회가 여러 가지 마디 속이지만 2대 교회장님, 초대회장님 계실 때와 다름없이 많은 분들이 다녀가십니다. 그 분들은 장사를 하시는 분들이기 때문에 아침에 근행을 보고 식사를 하시고 가셔야 하기 때문에 저는 아침 근행 이후에 밥 하느라고 정신없습니다. 아침마다 밥을 하면서 어떤 맛있는 국을 끓이고 반찬을 해서 이 분들에게 드려서 하루를 힘차게 살아갈 수 있게 해드려야 하나.’ 하는 고민을 합니다. 그 분들은 본인을 위해서 참배 오시고 저는 그 분들을 위해서 무언가 따뜻한 먹을거리를 해드릴까 하고 고민하는 것이 바로 서로 돕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요즘에는 구제의 시순, 성인의 시순인 연제의 시순을 맞아 아침 저녁으로 열 명 가량이 일참을 하십니다. 참으로, ‘교조님께서는 어려운 길만 걸어가게 하시지는 않는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이제는 교조130년제도 12개월 정도 남았습니다. 연제 시순은 우리가 교조님을 즐겁게 해드리는 시순입니다. 교조님을 즐겁게 해드릴 수 있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 용재들이 열심히 활동해서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을 교조님 앞으로 데리고 와서 참배시켜서 교조님을 즐겁게 해드리는 것이 우리 용재들의 사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저도 매년 1, 4, 10월은 터전 참배를 합니다. 터전에 갈 때는 혼자 가서는 안 되겠다. 단 한 명이라도 데리고 가야겠다.’ 하는 생각을 합니다. 내가 한 명이라도 데려가야만 마음이 다른 곳으로 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만이라도 해서 교조님을 즐겁게 해드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이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저보다 연한이 더 오래되신 여러 교회장님, 신자님들 앞에서 두서없는 얘기를 해서 죄송합니다.

잘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