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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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년12월]역지사지 - 전인수

2014.11.30 10:34

편집실 조회 수:312

역지사지

(처지를 바꾸어서 생각하여 봄.)

 

전인수(진홍교회장)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쯤의 일이었던 것 같다.

컴퓨터를 남들보다 잘 다룬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의 컴퓨터를 수리해줄 때가 종종 있다. 데스크탑PC는 내부에 특정 부품이 문제가 있어서 고장이 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노트북은 대부분 기존 설치되어 있는 프로그램을 지우고, 새로 깔아주는 것만으로도 고장이 고쳐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건 요즘 나오는 스마트폰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이런 작업을 초기화라고 하는데, 스마트폰이나 요즘 나오는 노트북이나 데스크탑PC들 중 일부는 내부에 복구 영역이라는 것이 있어서 간단한 작업만으로 초기화를 할 수 있지만, 예전에는 일일이 Windows를 설치하고, 드라이버라는 각 장치를 관리하는 프로그램을 설치해야만 이 초기화가 완료되었다. 그래서 초기화하는 시간도 보통 서너 시간은 기본이었다.

암튼 이러한 시절 부산에 계시는 모교회 교회장님께서 쓰던 노트북이 탈이 나서 우리 집으로 가져오신 적이 있다. 아마도 요즘 정도의 시기가 아닌가 생각된다.

가난한 교회다보니 남들처럼 보일러를 팡팡 틀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요즘 같은 시기에는 그냥 옷 몇 개 더 입는 것으로 넘기던 때인지라 남들도 다 그런 줄로만 알고 지내던 때였다. 그런데, 그 교회장님께서는 노트북을 초기화하는 시간 동안 계속 아이고 추워라. 감기 올 것 같은데…….”만 반복하셨다. 속으로 참 유난스럽다고 생각하며, 따신 차를 몇 번 내어드렸는데도 그 교회장님은 추우셨던가 보다.

뒤에 우리 집에서 벌벌 떠신 까닭에 며칠 감기로 몸져누우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는데, 나야 그런 환경에서 살다보니 별로 추운지 몰랐는데, 정말 그 분은 추웠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때는 겨울에 옷 하나 더 입고 넘기면 되지 하던 시절이었다. 밤에 잘 때는 전기장판의 온기와 위에 두꺼운 이불로 추운 겨울도 넘기던 시절이었다. 바닥은 전기장판의 온기가 있지만, 코와 볼은 언제나 얼어서 빨간 시절이었다. 더욱이 집에 난로는 신전에 있는 석유난로 하나뿐이었고, 월차제와 부인회 때 외에는 잘 틀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오죽했으면 한 겨울 낮에는 집안보다 집밖이 더 따뜻하다고 느껴졌을까…….

하지만, 전기를 가정용에서 일반용으로 바꾸어 전기요금 걱정 없이 살게 되어 지금은 집에 전기난로만 해도 4개나 된다. 거기다 방에 창문도 2중창으로 바꾸었다. 그래서 예전보다는 덜 춥게 지낼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희한하게 예전에는 이 정도 날씨는 옷 하나 더 껴입는 것으로 넘겼는데, 이젠 옷 더 껴입는 것만으로는 추위를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벌써부터 난로들이 나와서 활동하고 있다.

따뜻한 환경에서 지내던 것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 예전에는 충분히 견디며 살아왔던 것이 이젠 견디기 힘들어 진 것 같다.

아프리카에 사는 사람들은 평균기온이 30도가 넘다보니 우리가 봄, 가을의 날씨라고 알고 있는 25도 정도만 되어도 추위에 벌벌 떨고, 감기에 든다고 한다. 동남아에 사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20도만 되어도 추위에 벌벌 떨고, 감기로 몸져눕는다고 한다.

그 교회장님 역시 당시 역사한 지 얼마 안 되는 새 교회이다 보니 외풍도 없는 환경에서 따뜻하게 생활하셨을 것이다. 그러다 난방도 안 되는 우리 집에 오셔서 벌벌 떠신 것 같다. 하지만, 그런 환경에 있었던 나는 추운지 모르고 있었다.

똑같은 곳에 있지만, 평소 생활해온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느끼는 것이 다른 것인데, 남도 나와 같을 것이라 생각해버린 것이다.

우리들이 살아가면서도 이런 일들은 빈번하게 있다고 생각된다.

더욱이 남을 구제하는 용재의 길을 걷는 우리들이 구제하고자 하는 상대를 보았을 때 이런 마음만 먹으면 금방 수호 받을 것인데……. 하며 안타까워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하지만, 남이 나와 같지 않은데, 나와 같은 마음을 먹는 것은 당연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기에 이 길의 용재는 남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그 사람이 살아온 환경을 느끼고,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해야만 한다. 이때 진정한 구제가 이루어지게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직까지 우물 안 개구리이다. 마음은 남의 입장에서 생각해야지, 남의 말을 들어주어야지 하고 생각하지만, 막상 전도를 나가면 어떻든 신님의 말씀을 한마디라도 더 전해야지.’하는 마음이 앞선다. 그러다보니 상대의 말을 들어주는 것보다 말을 전할 생각만 하게 된다. 어떻게 어떻게 해서 상대가 마음을 열고 이야기해도 이럴 때는 어떤 교리말씀을 전해야 할까만 생각하게 된다.

허심탄회하게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상대의 입장이 되려는 마음은 항상 뒷전이다. 그리고 전도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항상 후회한다.

유달 제3호에

구제활동은 주위 사람들을 배려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신상·사정으로 고통 받고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으면, 먼저 그것이 다스려지기를 기원 드리고, 적극적으로 대화하며 구제의 손길을 뻗쳐 나가자. 앓고 있는 사람에게는 진실한 마음으로 수훈을 전하고, 괴로워하는 사람의 가슴속에 귀를 기울이면서 가까이 다가감과 동시에, 어버이의 말씀을 전하여 마음의 방향이 바뀌도록 이끈다. 그리하여 그 사람도 함께 구제에 나설 때까지 정성을 다해 이끌어 주어야 한다.

라는 구절이 있다.

나는 이것을 구제활동은 상대의 입장으로 생각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신상·사정으로 고통 받고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으면, 어버이신님께 그 사람과 이어질 수 있도록 기원 드리고, 상대와 대화하여 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자. 그리고 그 사람의 입장에서 수호받기를 진실한 마음으로 기원하며 수훈을 전하고, 그 사람이 처한 괴로움을 함께 나누며 상대가 감동할 수 있도록 하자. 그러면 상대도 이 길의 교리를 알고자 할 것이며, 이때 진심으로 이 길의 교리를 전하여 마음의 방향이 바뀌도록 이끌자. 그리하여 그 사람도 남을 도우겠다는 마음이 들도록 이끌어 주어야 한다.”고 깨닫고 있다.

그래서 어떻든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주어야지 하지만…….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항상 느끼게 된다. 어떤 회장님처럼 말주변이 좋으면 좋으련만, 말주변이 없다보니 상대에게서 말을 이끌어내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

아마도 아직까지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보다는 나의 입장에서 상대를 바라보려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요즘도 전도청 월차제나 교단 행사 때면 그 교회장님을 보게 된다. 그리고 겨울이 다가오는 이 맘 때면 항상 그때의 일이 떠올라 죄송한 마음이 든다.

다음에는 오시면 난로도 내고 해서 따뜻하게 해 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