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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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경지수51

 

남들이 좋아하므로

 

박지수

 

얼마 전에 일화편을 읽다가 아래 일화가 확 들어왔다.

일화편은 자주 보니까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처음 읽은 것처럼 새삼스러웠다. 그리고 아하!’ 무릎을 치게 만드는 깨달음이 있었다.

 

<교조전일화편> [87.남들이 좋아하므로]

교조님께서는 앞서부터 이부리 이조에게 어서 집터로 들어오라고 말씀하셨으나, 당시 이조는 아이들이 셋이나 있는데다가 장래 일을 생각하니 여러 가지로 걱정스러워, 선뜻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둘째 딸 마사에는 눈병을 앓고, 외동인 마사진(政甚)은 갑자기 말문이 막히는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에 아내 오사토가 교조님을 뵙고, “하루라도 빨리 들어오고 싶습니다만, 이치노모토 마을 사람들이 너무나 친절하게 해 주기 때문에 그걸 뿌리칠 수도 없고 하여, 교조님의 말씀은 명심하고 있으면서도 하루하루 세월만 보내고 있는 형편입니다.”라고 말씀드리자, 교조님께서는

남들이 좋아하므로 신도 좋아하는 거야. 남들이 아끼는 동안은 신도 아낀다. 남들이 좋아하는 동안은 신도 기쁜 거야.”

라고 말씀하셨다. 오사토는 거듭 아무쪼록 아이들도 아직 어리므로 다 클 때까지 기다려 주십시오.”라고 말씀드리자, 교조님께서는

아이들이 있으니까 기쁜 거야. 어른뿐이면 낙이 없다. 어서 들어오너라.”

라고 말씀하시므로, 오사토는 꼭 들어오겠습니다.” 하고 맹세를 한 후 돌아가 보니, 두 아이는 말끔히 수호를 받아 있었다. 그리하여 오사토는 수호받은 두 아이도 데리고 남편 이조보다 한발 앞선 18819월부터 집터에서 살게 되었다.

 

읽고 나서 딱 맞는 말씀이야. 남들이 좋아하므로 신도 좋아한다.”는 그 말씀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왔다.

 

그것과 더불어 아래 친필 말씀도 생각이 났다.

이제부터 세상 사람들은 비웃을 거야

아무리 비웃어도 이것이 제일이야 1-71

세상에서는 무엇을 하느냐고 말하겠지

사람이 비웃어도 신은 좋아한다 1-72

 

또 신악가 말씀도 연이어 생각이 났다.

언제나 비방받고 조롱받아도 / 진기한 도움을 베풀것이니.(3장 다섯에)

남들이 무엇이라 말할지라도 / 신님이 살피시니 진정하여라.(4장 하나에)

 

이 길에서는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당하고 무시를 당하고 업신여김을 당해야 신이 좋아한다고들 한다. 그런가? 정말 그럴까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사람들이 이런 친필과 신악가를 들먹이면 달리 할 말이 없었다. 더 이상 반박을 하지 못했지만 마음에 납득이 가지 않았다. 정말로 신님은 자녀인 용재들이 무시를 당하고 비웃음을 당하는 것을 바라시고 좋아하실까? 이런 의문이 떠나지 않았는데 마침 위 일화편을 읽는 그날따라 순간 아주 명쾌한 답을 얻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 알다시피 저 친필이 쓰여진 배경에는 마쯔에님과 슈지님의 결혼이 있다. 그것은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는 너무나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결혼이라 비웃었던 것이다. 하지만 신의 눈으로 볼 때는 혼의 인연이 있기 때문에 결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비방 조롱을 받는다고 한 신악가는 무엇 때문에 비방 조롱받는다고 한 것일까? 신도나 불교 같은 종교가 아닌 알려지지도 않은 이 길을 신앙한다고, 근행을 올린다고, 관헌으로부터 탄압받는 가르침에 따라 산다고 조롱하고 비방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들은 그런 배경 생각은 하지 않고 단지 사람들의 비난, 비웃음, 무시를 당하기만 하면 무슨 짓을 하든지 수호를 받고, 신이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한편 가치전달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엄청난 결과 차이가 생기는 걸 보여 주는 사례도 있다.

2007112, 미국 워싱턴 D.C의 랑팡 플라자역에서 실험한 내용이다. 워싱턴신문에서 세계 최정상급의 바이올리니스트가 최상의 바이올린을 가지고, 평범한 거리의 악사처럼 지하철역에서 연주를 하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를 실험한 것이다.

그 연주에는 조슈아 벨이라는 세계 최고, 최상의 바이올리니스트가 참가하여 지하철 역 입구 쓰레기통 옆에 서서 공연을 했다. 특징없이 야구모자를 쓰고, 청바지를 입은 이 백인 남자가 43분간, 6곡을 연주하는 동안 1,097명의 사람들이 출근길에 그 옆을 지나갔다.

그 유명한 조슈아 벨이 연주할 동안, 지하철역을 지나친 천명이 넘는 사람들은 그가 누군지, 그의 연주가 얼마나 뛰어난 것인 지 전혀 알아차리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관심도 없었다. 그의 연주를 1분 넘게 서서 듣고 간 사람은 고작 7명에 불과했고, 그의 발치에 놓인 바이올린 케이스에는 행인이 던져준 32,000원 정도의 돈이 들어 있었다.

곡이 끝났을 때 박수를 쳐 준 사람은 한사람도 없었고 지금껏 작곡된 가장 어렵다고 알려진 곡을 끝마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200여년이상 사람들의 심금을 울려온 유명한 곡인 <아베 마리아>를 연주한 뒤에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연주자는 1분당 1000달러(100만원) 넘는 돈을 벌 수 있는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이었고, 그의 바이올린은 350만 달러(35)짜리 스트라디바리우스였다.

 

사람은 비웃어도 신은 좋아한다는 친필 말씀을 오해하여 전도할 때 거지처럼 입고, 노숙자처럼 행동하여 비웃음을 사고, 무시를 당하고 나서, 그것을 신이 좋아한다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이 맞는 이야기일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신님이 말씀하신 비웃음은 자기가 할 일, 제 도리를 다했음에도 비난을 받거나 무시를 당하거나 비웃음을 당하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빈축을 살만한, 비웃음을 당할 만한 행동거지를 해서 그런 비난을 받는다면, 오히려 티끌을 지은 것에 다름이 아니다.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이 지하철역에서 실험한 것을 보고 다양한 해석을 할 수도 있겠지만 특히나 더 분명하게 느끼는 것은 아무리 그가 대단한 음악 연주가이고, 세상에 하나뿐인 훌륭한 바이올린을 가지고 최상의 연주를 한다 해도 사람들 눈에는 하찮게 보인다는 것이다. 아무리 그가 가진 것이 최고, 최상이라 하더라도 사람들은 그의 연주를 듣고 판단하기보단, 그가 지금 서 있는 곳과 주변 환경, 차림새와 행색 같이 눈에 보이는 것을 먼저 보고 판단해 버린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들은 어떤 모습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비치고 있을까.

거지처럼, 지지리 궁상을 떨면서 노숙자 같은 행색으로 비춰지고 있지 않을까. 그런 모습으로 아무리 훌륭한 천리교 가르침을 말해 본들 알아듣기나 하고 알아주기나 할까. 오히려 사람들을 도망가게 하고, 먼저 마음을 닫게 하지는 않았을까?

예전에 어떤 분들이 남루한 옷을 입고 전도하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 처음에는 그 분들이 그 남루한 옷 밖에 없거나 어려워서 그런 줄 알았다.(그런 분들에겐 죄송하다.) 하지만 다른 곳에서, 다른 때 만났을 때 멋진 옷을 입고 있는 것을 보고 몹시 놀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마치 다른 사람을 보는 듯하였고, 곧이어 참으로 씁쓸했다. 그렇게 남루한 옷차림과 행색으로 일부러 세상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당하려고 했던 것이었을까? 그렇게 비웃음을 사고 손가락질을 받고 비웃음을 당해야 덕이 되고 인연이 닦이는 것일까? 과연 그런 것일까? 교조님께서는 거지 노릇은 안 시킬 테니…….” 하셨는데.

우리 옛말에 욕먹으면 오래 산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의 본래 뜻은 좋은 일하고도 욕먹으면 명을 잇는다는 의미라고 들었다. 좋은 일을 하고, 혹은 잘하고도 욕을 먹으면 액땜, 액운이 끊어지고 수명이 된다고 한다. 이 길의 교리에 비쳐 봐도 일리가 있지 않은가?

자신의 가치,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종교의 가치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서, 즉 이 길의 향내를 제대로 전하기 위해서는 남들도 좋아하므로 신도 좋아한다는 것을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특히나 훌륭한 이 길의 가르침을 전하려고 나설 때는 안이나 겉이나 모두 과연 그렇구나 할 정도로 되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전도를 나설 때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옷 중에 제일 좋은 옷을 입고 나설 일이다. 세계구제라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 가장 존엄한 일을 하러 나선 길이다. 어버이신님의 대리, 교조님의 대리, 진주님의 대리로 이 길을 전하는 것이다.

복장을 깔끔하게 하고, 행동거지를 조심스레 삼가고, 남에게 좋은 느낌을 주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용재들은 그냥 세상 속으로 던져진 존재가 아니라 어버이신님의 신명을 전하고 천리교를 알리는 사명을 가지고 있다.

일류기업들이 수많은 돈을 들여서 브랜드 마케팅을 하듯이 우리도 우리들의 브랜드 가치를 살리고 스스로 높여야 하지 않을까. 진정 이 세상에 가장 가치 있는 가르침을 전하는 우리 스스로 그 가치를 떨어뜨리는 일 없이 당당하면서도 거기에 걸맞도록 모습 형색도 갖추어 가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