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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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경지수 50

 

극빈 체험

 

박지수

 

어느 분이 본격 단독포교에 나서서 드디어 극빈생활로 빠져 들고 있단다.

어릴 때부터 일하는 사람을 여럿 둘 정도로 유복하게 자랐고, 결혼 후에도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며 늘 풍족하게 살았기에 한 번도 경험한 일이 없다는 극빈생활에 대해 불안해하는 그 분과 이야기 나누며 우리의 경험을 들려준 일이 있다.

포교 나가서 6개월이 지나자 드디어 우리에게 차비조차 없는 날들이 찾아왔다. 차비가 없다는 건 돈이 필요한 다른 모든 것이 없다는 뜻이다. 상급교회 왔다가 돌아갈 차비 천원이 없어서 친한 사람에게 여러 번 얻어가기도 하고, 시간이 있을 때는 상급교회와 저산 우리 집을 4~5시간을 걸려 걸어 다닌 일도 많았다.

급한 일로 상급에서 부를 때는 어버이신님께 사정을 말씀드리고 어쨌든 시간 안에 도착하게 해달라고 기원 드린 뒤 그 모든 것을 신님께 의지하고 집을 나서던 일도 많았다. 그러면 어버이신님께서는 시시때때로 손을 내밀어주셨다.

오랜 기간에 걸쳐서 서서히 극빈의 시기를 빠져 나올 수 있었지만 그 시기를 괴로움으로 기억하진 않는다. 지금도 그다지 넉넉하지 않지만, 극빈의 과정을 나름대로 겪었기 때문에 모든 게 넉넉하게 느껴지고 두려움이 없다.

 

조카 수정이가 어느 날

이모, 이모 집은 참 신기해요. 뭐라도 이야기하면 모든 게 다 나와요. 신기한 요술방망이가 있는 것처럼 말이에요. 그냥 보기엔 아무 것도 없을 것 같은데...”

, 그건 신님 집, 부자집터이기 때문이야. 교조님께선 이렇게 말씀하셨어.”

하고선 아래 일화편을 들려주었다.

 

<교조전 일화편> 78 부자 집터

교조님께서는 마스이 기쿠에게

이 집터는 좋은 것 먹고 싶다, 좋은 것 입고 싶다, 좋은 집에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지낼 수 없는 곳이야. 좋은 것 먹고 싶다, 좋은 것 입고 싶다, 좋은 집에 살고 싶다고만 생각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부자유하지 않는 집터야. 이것이 세상의 부자 집터인 거야.”

라고 들려주셨다.

 

극빈을 겪을 때 그때는 지금보다 더 간절하게 어버이신님께 의탁하고 모든 것을 그저 맡기는 생활이었다.

"전기세가 없어서 못 내면,

그냥 전기를 끊고 분위기 좋게 촛불로 살면 되지!

전화세를 못 내서 전화가 끊기면,

편지를 쓰거나 답답한 사람이 찾아오겠지!

차비가 없으면 신님께서 걸으라고 하시니 걸어가자.

차비가 없는 데도 상급에서 급히 오라고 부르면

신님께서 갈 수 있도록 차를 보내주실 것이다!

땟거리, 쌀이 없으면 단식하라는 모양이니 단식하자.

굶는 게 남는 것이다!"

이런 마음으로 살았다. 물론 이 길의 초대들이 겪은 극빈에 비하면 좋은 시대를 타고나 정말로 배부른 극빈이었다. 그야말로 세발의 피 수준이다. 그렇지만 신미 쌀이나 신주가 없어서 못 올릴 때도 더러 있었고, 생선이 없어서 멸치를 올린 적도 있다. 월차제에 제물비가 없어서 산으로 들로, 바다로 다니면서 나물들을 뜯고, 해초를 뜯어 올린 때도 많았다.

하지만 이런 극빈상태를 기뻐하도록 서로 마음을 다독거렸다. 오히려 극빈을 즐기며 바로 곁에서 손잡아주시는 신님을 아주 극명하게 느끼는 시기였다. 다른 쓸데없는 생각을 할 여지가 없고, 부모형제가 반대하는 이 길의 포교를 하던 중이라 믿을 데라곤 어버이신님 밖에 없으므로, 오히려 신한줄기로 나아가기에는 좋은 기회였다.

그때 경험으로 말하자면 극빈은 영혼을 맑히는 것, 티끌을 털어내고 영혼에 고갱이(정수)만 남기는 일이다. 다이아몬드를 깎아서 세공하듯 아름다운 영혼, 강인한 영혼을 만들기 위한 고도의 수행이라고 감히 믿는다.

극빈에 빠져도 신님께서는 한 번도 굶게 하시지는 않으셨다. 전기도 전화도 끊기지는 않았다. 독촉을 받고 밀린 때는 있었지만. 먹을 것을 두고 단식을 했을지라도. 요즘 세상은 음식도 물자도 흔한 세상이라 돈이 없어서 애로가 생길 때는 많았지만 굶게 하시지는 않았다. 걱정 말고 오로지 신님을 의지하여 나아가면 극빈도 정말로 필요하고 큰 자기수양이 되는 것 같다.

자발적인 가난이, 극빈이 영혼을 좀먹지는 못한다. 극빈을 무슨 큰 벌처럼 생각하여 괴로워하고 고통스러워하게 되면 영혼을 좀먹고, 어둡게 만들겠지만, 극빈에 대해서 바르게 알면 그럴 일이 없다. 특히나 물질에 큰 구애 없이 살았으니 그런 경험은 오히려 아주 귀중한 일이 되었다.

가난한 사람들의 심정을 모르고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기란 어렵다.

아래 일화편을 보아도 공감과 소통이 되어야 구제가 되는 것 아닌가.

<교조전일화편> 4. 일립만배로 돌려준다

극빈에 빠져라. 극빈에 빠지지 않으면 어려운 사람의 사정을 모른다. 물이 떨어지면 튀어 오르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일립만배(一粒萬倍)로 돌려준다.”

 

<교조전일화편> 5. 흐르는 물과 같이

교조님께서는 우메타니 시로베(梅谷四郞兵衞)에게 다음과 같은 말씀을 들려주셨다.

내가 무심코 있으니 신님께서는 흐르는 물과 같이 낮은 데로 떨어져라, 떨어져라. 으리으리하게 대문을 만드는 따위로서는 남을 구제하지 못한다. 가난하라, 가난하라.’고 말씀하셨다.”

언젠가 수정이와 아침 밥상머리에서 극빈에 대해서 이야기 나눴다.

내가 어렵지 않을 때, 누군가가 어렵다고 하면 그깟 몇 천원이 없냐고 해서는 안 돼. 누군가는 이모처럼 천원이 없어서 먼 곳에 차를 못 타고 걸어가야 하거나 포기하는 수가 있어.

자기 기준으로 생각해선 안 돼.

사람마다 가난의 수준이 다를 수가 있는 거야. 정말로 천원이 없어서 가난한 사람이 있고, 만원 십 만원이 없어서 사고 싶은 것 못 사는 형편이라며 가난을 느끼는가 하면, 명품을 살 백만 원이 없어서 가난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는 거야.

이런 점이 남을 이해할 때 생각해 봐야 할 문제지.

 

반대로 만약 신님께서 내게 많은 것을 넘치도록 주신다면 그것은 나누라는 의미야. 그때 나누지 않고 독식하거나 자기 욕심만 차린다면 늘 부족하게 주실 수밖에 없어. 수호를 부족하게만 받는 거지. 설사 아무리 신님께서 충분히 줘도 늘 부족하다고 느끼며 살게 되는 거야.

알겠지?

수정이 에게 뭔가 넘치도록 주어진다면 그건 주변에 나눠주라는 뜻인 것을!

그리고 극빈이 나쁜 것만은 아냐. 극빈체험은 엄청난 고통일 수도 있지만 이모처럼 즐길 수도 있단다. 극빈체험을 오래 겪고 싶진 않지만 그 체험을 통해 신의 존재를 바로 느낄 수 있었고 쓸데없는 의심이나 불안을 없애는 법을 알게 됐어. 그리고 삶에서 정말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알게 됐거든.

 

또 생각해 볼 것은, 극빈생활을 하다보면 늘 다른 사람들에게 물질적 도움을 받게 돼. 그런데 자주 도움을 받다 보면 거지 근성이 생길 수가 있어. 늘 받기만 하고, 받는 게 당연한 게 되고, 고마운 줄도 모르게 돼 버리고, 더 받을 것만 생각하게 되는 거지.

혹시 형편이 나아지더라도 자신이 받은 은혜에 대해 보답할 줄도 모르게 되는 거야. 거지처럼, 어린아이처럼 받기만 하지.베풀 줄을 모르게 돼.

교조님께선 언제까지나 어린아이면 아무 것도 안 된다.”고 하셨거든.

그건 정말로 불쌍한 거야. 정말로 인간의 질이 떨어지는 거지. 결국 은혜가 겹쳐서 우마로 떨어지거나 우마와 같은 신세가 되는 거야.

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아무리 내가 가난하여 남들에게 물질적 도움을 받더라도 나도 뭔가 내가 가진 것으로 나눠야 한다는 거야. 남이 베풀어준 은혜에 대해 나는 그 사람에게 시간을 내서 상대의 아픔이나 어려움을 들어주고 위로해 줘서 보답하든지, 내 정성을 내어서 고마운 상대를 위해 신님께 기원을 드리든지. 내 노력을 내어서 편지를 쓰거나.

꼭 돈으로 하지 않아도 보답할 수 있는 것은 많아.

아무리 가난해도 나눌 것은 있어.

<교조전일화편> 157 좋은 손이야

교조님께서 고단해 보일 때, 가지모토 히사가 안마해 드릴까요?”라고 여쭙자, “주물러 다오.”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안마를 해 드리니, 나중에 히사의 손을 잡으시고

이 손은 참 좋은 손이야.”

하며 히사의 손을 쓰다듬어 주셨다.

또 교조님께서는 종종

부모에게 효도하는 데는 돈이 필요 없어. 안마로도 충분해.”

라고 노래하듯 말씀하셨다고 한다.

일화편 말씀처럼 우리는 안마로도 남을 도울 수 있고, 나눌 수 있는 거지.

언제나 받기만 하는 사람은 거지야. 그리고 늘 받는 것만 좋아하는 철없는 아이야. 그래선 안 돼. 불쌍한 인생이 되는 거지. 덕을 까먹고 나쁜 운명이 되는 거야. 자신이 가진 것으로 뭐든 나누고 도와야 자기 운명이 좋아지고, 자기 인생을 밝게 열어 주는 좋은 덕이 쌓이는 거야.

 

수정이가 돈 없이 덕을 쌓을 수 있는 일은 어떤 것이 있을까?

고민하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부모님께 자주 감사하다고 말씀드리는 것, 학생의 본분인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 친구의 공부를 도와주는 것, 근행을 올리는 것, 이모와 이모부는 130연제 시순에 매일 전도하며 실천하듯 친구들을 우리 포교소나 고성교회에 참배시키는 것이 돈 없어도 나눌 수 있고, 할 수 있는 덕이 되는 일이야.”

 

아침 밥상머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수정이도 나도 기쁜 얼굴이다. 언제나 가르침을 전하고 나누면 마음이 환해진다. 수정이도 뭔가 중요한 것을 알게 되었을 때처럼 진지하면서도 밝은 얼굴이다. 그때 나눴던 이야기가 콩나물에 준 물처럼 다 빠져 나가더라도 저 아이의 영혼을 성장시킬 것이라는 것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