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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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하나111

 

세상을 바꾸는, 말 한 마디5

 

이시중

 

4. 이 길과 세상을 용솟음치게 하는 말

어둡고 침울하게 하는 말이 이뿐이겠는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하지만 이 정도로 하고, 이제는 이 길과 세상을 용솟음치게 하는 말이 무엇이 있는지 이야기하고 싶다. 이 길을 용솟음치게 하는 말은 결국 세상을 용솟음치게 하는 말이며, 이것은 교조님께서 남기신 말씀이나 행적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

 

첫 번째 떠오르는 것은 온 세상 사람들 모두 신의 자녀라는 말이다. 친필에

이 세상을 창조한 신이기에

온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다 자녀다 4-62

온 세상 신에게는 모두 다 자녀

사람들은 모두 어버이로 생각하라 4-79

 

고 하셨다. 신과 인간 사이는 주인과 종의 관계가 아니라 부모와 자식의 관계라는 것이다.

주인과 종의 관계라면 명령하고 복종하는 관계를 말한다. 주인한테는 주체성 자발성이 있지만, 종한테는 주체성이나 자발성이 허락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길에서 말하는 신과 인간의 관계는 이런 주종관계가 아니라 어버이와 자식의 관계라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어버이로서 신이 인간을 대하는 태도가 있고, 반대로 자식으로서 인간이 신을 바라보는 태도가 있게 마련이다.

먼저 어버이로서 신이 인간을 대하는 태도는 무엇인가?

당연히 누구도 차별하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신의 현신이 되신 교조님께서는 이것을 바로 실천하셨다.

천리교교조전일화편195 수고하십니다에 나오는 이야기다.

교조님처럼 차별 없이 자비심이 깊으신 분은 없었다. 어떤 사람을 만나도 조금도 차별하는 마음이 없었다. 어떤 사람이 집터로 찾아와도 모두 귀여운 자녀로 생각하셨다. 지위가 높은 사람이 와도

수고하십니다.

걸인이 와도

수고하십니다.

라고 인사를 하셨다.

그 태도라든지 말씨에 있어서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빈부귀천을 불구하고 모두 차별 없이 대하셨다는 것이 교조님의 어버이마음이셨다.

그리고 교조님께서는 반대하는 사람이나 연행하러 오는 경관이라도 모두 귀여운 내 자녀를 대하듯이 하셨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지도말씀에서는

다섯 손가락처럼 형제라면 어느 손가락을 깨물어도 다 아프겠지. 이쪽은 세우면서 저쪽은 넘어뜨리려 하지 않겠지. (1899. 12. 27)

라고 했다.

무릇 어버이라면 어느 자식이나 다 귀여운 법이며, 결코 한쪽을 편들고 다른 쪽을 무시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세상에는 온갖 차별이 있다. 똑같은 일을 하지만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있고, 고졸과 대졸의 임금과 대우에 엄청난 차이가 있다. 권력을 따지고, 지위를 따지고, 집안을 따지며 차별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기도 한다. 이것이 불평등, 불공정을 조장하고 세상이 위태롭고, 불안하고, 혼란스럽게 한다. 세상에 모반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은 바로 여기에 연유한다.

교조님이 걸어주신 50년간 모본의 길은 이런 차별을 없애는 데 초지일관하셨다. 마지막 은신 직전에 유언같이 남기신 다음 말씀이 이를 뒷받침하며, 모든 것을 집약하고 있다고 하겠다.

 

자아 자아, 말끔히 평탄한 땅으로 밟아 고르겠다. 자아 자아, 문을 열고 문을 열고, 온 세상 평탄한 땅. 자아, 평탄한 땅으로 밟아 나간다.

(고본천리교교조전 232)

 

이뿐만 아니다. 은신 이후 본석을 통해 흘러나온 첫 지도말씀에서도

자아 자아 평탄한 땅으로 한다.

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평탄한 땅이란 높고 낮은 차별이 없는 세상이다. 어둠이 없고 침울함이 없는, 밝고 용솟음치는 즐거운 세상이다. 이것을 지향하는 것이 이 길이며, 이를 위해 교조님은 전 생애 모든 것을 바치셨다. 그리고 교조존명으로 활동하는 지금 세상에서도 여전히 작동하는 원리이다. 이것은 매우 합리적이며, 세상 사람들 누구한테나 통하는 보편적인 진리다.

어버이 처지에서 보면 모든 자녀가 모두 차별 없이 잘 살기를 바라지 않는가! 그러므로 이 길을 신앙하는 우리가 먼저 내 안의 차별, 우리 안에 차별을 없애는 노력을 해나가는 것이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실천임을 알 수가 있다.

 

그럼, 자녀로서 인간이 신을 대하는 태도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당연히 어버이대하듯이 하면 된다. 어버이는 심판관이 아니다. 가까이하기 힘든 두려운 존재가 아니다. 경외해야 할 먼 존재가 아니다. 바로 곁에 계신 다정하고 온화하신 존재이다. 우리 곁을 떠나지 않고 항상 함께해주시는 물··바람이다. 생명의 근원이다. 이렇게 대하면 된다. 언제나 의지하고 맡기고 의논할 수 있는 존재가 어버이다. 절대 존재인 어버이신님 품 안에 사는 우리는 위태로움이 없다. 걱정도 없다. 천연자연으로 되어오는 이치를 즐기며 살면 된다. 세 살 아이처럼 까불거리고, 신나고, 용솟음치면서 살면 된다.

교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고 있다.

 

신님에 대한 신앙은 말이지, 신님을 육친의 부모처럼 여겨야 해요. 그렇게 하면 진짜 신앙이 되는 거예요.

(고본천리교교조전일화편 104 신앙은 말이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