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본 사이트에는
천리교회본부의
공식적인 입장과 다른
글쓴이의 개인적인 생각이
담길 수도 있습니다.




천리교 교회본부



cond="$

둘하나 107

 

세상을 바꾸는, 말 한 마디 1

 

이시중

 

1. 시작하면서

 

무엇을 먹는가? 그것이 나를 만든다. 술을 먹으면 취하고, 독약을 먹으면 죽는다.

무엇을 읽고 보는가? 그것이 나를 만든다. 좋은 책을 읽거나 좋은 영화를 보면 영혼을 건강하고 맑게 하지만, 나쁜 책을 읽거나 나쁜 영화를 보면 영혼을 병들게 하고 더럽히게 된다.

무슨 말을 주로 하고, 무슨 말을 주로 듣는가? 그것이 나를 만든다. 주고받는 말에 용솟음치게 하는 말이 있고, 침울하게 하는 말이 있다.

 

지금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 여태까지 먹고 보고 말하고 듣는 것의 결과다. 앞으로 어떤 삶이 펼쳐지기를 바라는가? 먹는 것, 읽는 것, 보는 것, 말하는 것, 듣는 것에 달려 있다.

삶은 매 순간 선택의 연속이다. 먹는 것도 선택하고, 읽는 것도 선택하고, 말하는 것도 선택한다. 그 선택이 삶이다. 그러므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 하나는 매 순간 무엇을 선택하고 있는가를 알아차리는 일이다.

이 자리에서는 다른 것은 빼고, 말을 소재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이 길에서 말의 중요성을 다루는 곳이 많다. 그중에 가장 대표적인 곳이 으뜸인 리다.

인간 창조 이야기가 담긴 으뜸인 리에는 석 자로 성인 했을 때 말을 하기 시작했으며라고 나온다. 그리고 그 뒤에 “3999년은 문자를 가르치셨다.”고 언급한다. 말은 문자로 연결되고, 문자는 말로 통한다.

인간 창조 전 과정에서 말과 문자에 대해 직접 언급한 것은 단 두 줄에 불과하지만, 그 중요성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다. 더군다나 본과 도구를 인간 창조에 협력자로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납득을 시키는 장면이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다.

그런데 납득의 주요한 수단은 무엇인가. 이것이 바로 말이다. 말로써 대화를 하고, 말로써 의논을 하고, 말로써 납득을 시켜나간다. 그렇다면 말은 으뜸인 리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수단 중 하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본과 도구를 불러들일 때, 모두 납득이라는 과정을 거쳤으니까 말이다.

납득된 일은 그 뒤 모든 행동에 기준이 되고, 누구에게나 평생을 간다.

 

기독교에서도 말을 중시하고 있다. 창세기에는 하느님 말 한마디로 세상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그려져 있다. 빛이 생겨라 하니 빛이 생겼다. 물과 물 사이가 갈라져라 하시니 갈라졌다. 마른 땅이 드러나라 하시니 육지가 생겼다. 움이 돋아라 하니 움이 돋고, 과일나무가 돋아나거라 하니 과일나무가 생겼다. 빛이 생겨라 하니 빛이 생기고, 하늘에서 땅으로 비추라 하시니 밝아졌다. 물고기와 새들이 생겨라 하니 물고기가 헤엄치고, 새들이 날아다녔다. 땅은 온갖 동물을 내어라 하니 온갖 집짐승, 길짐승, 들짐승이 생겼다. 그리고 사람을 만들어 땅을 정복하라 하니 정복하고, 물고기, , 짐승들을 다스려라 하니 다스리게 되었다.

이렇듯 기독교에서 말은 명령으로 시작하고 있다. 하지만 이 길에서는 납득을 시켜가는 대화로써 풀어내고 있다. 여기에서 이 길의 가르침과 기독교 가르침에서 가장 큰 차이 하나를 발견할 수가 있다.

 

말은 삶에서 가장 중요한 수단 중 하나다. 말을 하기 시작함으로써 비로소 한 개인으로 독립하기 시작하고, 사람 사이 관계를 맺고 유지하고 소통하게 된다.

그래서 말이 중요하다. 하는 말이 중요하고, 듣는 말이 중요하다. 혼자 속으로 하는 말 역시 중요하기는 마찬가지다. 말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 개인의 삶을 지배하고, 이 길을 지배하고, 세상을 지배한다. 그러므로 말을 바꾸면 당연히 삶이 바뀌고, 이 길이 바뀌고, 세상이 바뀌게 된다.

 

평소 어떤 말들이 주위에 맴돌고 있는가. 내뱉는 말이든, 듣는 말이든, 혼자 중얼거리는 속말이든... 어떤 말들이 평소에 주류를 이루고 있는가. 그것이 바로 당신 자신이고, 이 길이고, 세상이다.

말은 말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말에 삶이 있고, 정치문화가 있고, 철학이 있다. 말에 과거가 있고, 현재가 있고, 미래가 있다. 말은 씨앗이다. 생명이다. 정신이다. 그러므로 평소에 자주 쓰는 말만 들어도 나를 알 수 있고, 상대를 알 수 있고, 모임이나 조직을 알아볼 수가 있다. 감정 상태, 건강 상태, 흥망성쇠, 과거 현재 미래의 운까지 다 알 수가 있다.

그래서 말이 중요하다. 내뱉는 말이 중요하고, 듣는 말이 중요하고, 혼자 중얼거리는 속말이 중요하다. 말을 바꾸면 삶이 바뀌고, 말을 바꾸면 이 길이 바뀌고, 말을 바꾸면 세상이 바뀐다.

 

이 길은 지금 깊은 침체의 늪에 빠져버렸다. 세상은 지금 코로나19로 길고 긴 위기에 빠져있다. 이 시대적 마디를 극복해가는 실마리는 말이다. 마디는 말을 바꾸라는 신호다. 우리 주변에 맴돌고 있는 말을 살펴보고, 그 말을 바꾸어보라는 것이다. 말은 늪에 빠지게도 하지만, 위기에서 탈출하게도 한다.

지금 시대는 엄청난 변화와 변혁을 요구받고 있다. 그것은 개인의 삶이든, 이 길에서든, 세상에서든 마찬가지다. 변화와 변혁은 곧 말에서 시작한다. 말을 바꾸어서 상황을 바꾸어가는 것이다. 자기한테 던지는 말을 바꾸고, 이 길에서 던지는 말을 바꾸고, 세상에 던지는 말을 바꾸라는 것이다. 나를 용솟음치게 하고, 이 길을 용솟음치게 하고, 세상을 용솟음치게 하는 말이 넘쳐나도록 하라는 것이다.

 

말에는 힘이 있다. 말로써 용솟음치게 할 수 있고, 침울에 빠뜨릴 수도 있다. 말로써 즐거움을 줄 수 있고, 슬픔을 줄 수도 있다. 말로써 희망을 줄 수 있고, 절망에 허우적거리게 할 수도 있다. 말로써 살리고, 말로써 죽인다.

말 한마디가 삶을 바꾸고, 이 길을 바꾸고, 세상을 바꾼다.

그러므로 말이 시작이고, 중간이고, 끝이다.

한 마디의 말은 만 마디의 리에 상응한다.’ (1897. 2. 1)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