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50호
입교187년(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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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교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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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초대회장님7

 

아버지의 출직

 

공상용(전 구만교회장) 구술

남상우 기록

 

여섯 번 만에 낳은 첫아들을 뇌막염으로 먼저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에게 가르침이 왔다.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여기저기서 도움말을 주셨다.

아버지의 신상 도움을 보려면 소(그 당시 소 한 마리가 농촌에서는 제일로 큰 재산이었다) 한 마리쯤은 신님 앞에 올려야 되겠다 싶어 급히 어머니와 의논을 했다.

어머니는 돈 걱정을 하면서 교회가 아니라 그보다 더한 것이 와도 아버지는 안 된다. 그리고 또 장례비를 어떡할거고그 때 첫아기를 살려 내려고 덕을 많이 쌓은 뒤라 살림이 많이 쪼들렸다.

결국에는 어머니께서 그럼, 올리기는 올리는데 소를 팔아가지고 장례비를 빼놓고 올리자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보니까 그것도 일리가 있다 싶어 소시장에 나가 첫 흥정에 소를 팔았다. 돈이 많고 작고 따질 시간도 없었다. 빨리 소를 팔아야 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리고는 소를 판 돈을 가지고 교회로 향했다. 어머니 생각대로 소 판 돈의 반은 음덕을 하고, 그 반은 장례비를 할 생각으로 들고서 신전을 나서는데, 교회 노할머니가 어공을 가지고 와서는 아버지에게 먹여 봐라고 했다.

그래서 어공을 세 봉지 받아들고서 신전을 나섰다. 교회 문을 나서는데, 소를 팔아 음덕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던 진양 초대교회장(조상제)과 마주쳤다.

공선생, 소 팔았나.”

, 팔아가지고 정성금을 올리고 갑니다. 그런데 다 안 올리고 반만 올리고 갑니다.”

! 반만 올리다니 반만 살리고 싶나.”

글쎄, 그것이아버지 장례비가 먼저 걱정되어서 그것 준비 때문에 할 수 없이.”

뭐라고, 죽은 사람도 지금 신님 앞에 올려놓고 기원을 하는 판에 살아있는 사람 죽은 뒤를 걱정한다 말이가.”

…….”

그 말대로 나머지 돈도 같이 올렸으면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겠지만, 진양 초대교회장의 말을 뒤로 하고는 그냥 집으로 향했다.

돌아와 아버지께 어공을 먹였더니, 개구리알 같은 것을 요강 가득 쌌다. 사람 몸안에 무슨 저런 것이 나오는가 싶었다.

그러나 그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아버지이젠 살았습니다했다. 그러나 내말과는 달리 진양초대교회장 말대로 정말 딱 반만 나아 8개월을 살다가 출직했다.

8개월 동안 아버지 친구들이 와서 무슨 약이 좋네’ ‘무슨 약이 좋네하니까 아버지께서는 야야이 병에는 이 약이 좋단다하면서 적어주는데, 모두가 비싼 약들이었다.

그래서 초대회장님에게 회장님, 아버지께서 이런 약을 먹으면 낫는다고 하는데요.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꺼하며 약방문을 보여주었다.

초대회장님도 안될 거라는 것을 알았는지, ‘요구대로 다 해줘라. 니 불효인연이나 벗게 빚을 내어서라도 다 해줘라말씀하셨다.

그래서 초대회장님이 시키는 대로 약을 사 줬는데, 8개월 동안에 약값으로 들어간 것이 소 몇 마리 값이 더 날아갔다. 하지만 그때 후회해본들 버스 지나간 뒤에 손든 격이었다.

 

40을 넘기기 힘들끼다

 

고성교회 순회강습 제29기생 중에는 포교를 나간 사람이 참 많았다. 포교 나가기 전에 고성교회에서는 2주간 포교실습을 했다.

포교 나가기 전에 포교 나갈 사람들을 앉혀두고서, 초대회장님은 한 명 한 명 일어나라 해놓고서는 각자의 인연풀이를 해주셨다. 참고상 쓰일거라면서, 포교 나가기 전에도 교회에 있으면서 귀동냥으로 많이 배웠다.

봐라. 저리 생긴 사람은 어떻고 어떻고.’ 초대회장님께서는 포교실습기간 중에 이런 말씀을 자주 해주셨다. 전도를 가서 천리교에서 왔습니다. 천리교를 믿어 보세요하는데 저쪽에서 , 우리는 그런 것 안하요그러면 눈에 처음 들어오는 그 사람의 인연을 자기 혼잣말 같이 가장 나쁜 점만을 슬쩍 이야기하면, 자기를 보내 놓고 나서도 마음속으로 분명 저 사람이 뭐 아는 게 있나할 거라 했다.

그러면 반은 성공한 것이라 했다. 그 말씀만 믿고서 겁도 없이 덤벼들었다가 혼쭐난 적이 있었다.

어느 부락에 가서 아주머니 인연을 보니 과부팔자라 지나가는 말로 당신은 과부팔자라고 했는데 그것을 어떻게 알아들었던지, 대뜸 화를 내면서 멀쩡한 여자를 과부로 만든다며 동네가 떠들썩하도록 고함을 지르는 통에 톡톡히 망신을 당했다.

지금부터 혼자 고생할 일이 생길 것 같습니다.’라고 했으면 그냥 넘어갈 일을, 난생 처음보는 여자에게 과부 운운했으니 그럴 법도 했다.

어쨌든 2주간의 포교실습을 끝내고 초대회장님을 찾아갔다. ‘포교를 어디로 가면 좋겠습니꺼하고 물었다. 초대회장님은 구만도 갈 만하고 어디도 갈만한데하셨다. 그래서 내가 회장님, 그러면 구만으로 갈랍니더했다. 초대회장님이 그래라 그래, 그렇게 해라하고 승낙을 해주셨다.

내가 왜 구만으로 가려고 했냐면 거기에 우리 선산이 있어 구만에 가면 돈을 안 줘도 방을 얻을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것이 인연이 되어 구만으로 포교를 나갔다. 그 날이 1965425일이다.

그 당시에도 7일이 부인회였는데, 진홍초대교회장은 부인회를 보고 나가고, 나는 월차제를 보고 25일날 나왔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남들한테는 잘 해주는 인연풀이-‘공서기, 너는 어떻다라는 말-을 일체 해주지 않으셨다.

그런데 신님을 모시자, 초대회장님께서 무슨 이유에서인지 공선생, 너는 사십을 못 넘길 명을 가졌는데, 니 명을 쥐고 있는 너그 집사람이 얼마나 니명을 더 연장시켜줄지는 모르겠지만 열심히 해봐라하셨다.

그 말을 듣고 거울을 앞에 두고서 내 얼굴을 내가 한참 봤다. 내가 봐도 참 단명이구나 싶었다. 그렇다고 지금 내가 죽을병이 있는 것도 아니고, 설마 했다. 그 때 내나이 서른 다섯 살이었다.

그러나 초대회장님의 말씀대로 내 나이 서른 아홉에 죽을 운명이 찾아왔다. 장티푸스였다. 그것도 재발 장티푸스였다. 재발 장티푸스가 오면 거의 80퍼센트는 죽는다고 할 때였다.

내가 의식을 잃자, 고성에 연락을 해 초대회장님을 오시게 했다. 그날따라 이상하게 초대회장님께서는 신님 앞에 참배도 하기 전에 내가 누워 있는 방문을 열어 보고는 집사람에게 다짜고짜

이제 공선생은 안되겠다.”

이렇게 말하니까

천신님의 자식 천신님이 알아서 데리고 가려고 하는 데 어쩔 도리가 있습니꺼.”

당돌하게 집사람이 이렇게 답을 했다 한다. 우리들 눈에는 신님이 안 보이니 초대회장님을 좀 오시라고 해서 수훈을 전해달라고 했는데. 안되겠다고 한다면 아이고, 회장님, 제발 좀 살려주소이렇게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급해서 우리가 환자를 데리고 병원에 가도 의사에게 의사선생님 어떻게 좀 살릴 길이 없겠습니까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인데, ‘회장님이 안 된다고 하니 어버이신님의 자식 어쩔 도리가 있습니까이렇게 대답을 했으니, 초대회장님이 신님 앞에 와서 엎드려 고해 보려고 해도 고할 말은 커녕 이 여편네가요, 신랑이 죽는다고 하는데 간이 크기로요. 진짜 속에서 우러나오는 말인지 아니면 하도 억장이 무너져서 하는 소린가하는 생각에 어안이 벙벙했다 한다.

참배를 하고 나와서 나에게 수훈을 전하기 전에 집사람에게

아까 니 뭐라 했노.”

회장님, 내가 뭐라 캅디꺼? 회장님께서 안 된다카면 어버이신님이 데려가는데 어쩔 도리가 있십니꺼 했습니더.”

니 그거 진심이가?”

배운 게 그거 아닙니까.”

그래?”

초대회장님이 거기에 탄복을 하고서 수훈을 전해 주셨다. 그 수훈을 받고서 자리에서 툴툴 털고 일어날 수 있었다. 초대회장님의 예언(?) 그대로가 들어맞은 것이다.

 

* 올해 입교175년은 고성교회가 포교 60주년을 맞이하는 뜻 깊은 해입니다. 그래서 지난 50주년을 기념해서 나온 책 오직 근행뿐이야를 조금씩 나눠 싣고 있습니다. 이영수 초대 회장님을 그리며 으뜸하루를 되새겨서 한 걸음 더 성인하기를 희망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