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50호
입교187년(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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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교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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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11(6~10)

 

여섯에 무리로 말리지는 않을것이니

마음만 있으며는 누구이라도

 

일곱에 어떻든 진기한 흙나르기야

이것이 봉상이 된다하며는

 

하나에 으뜸의 이터전안에

신님의 성전으로 터전을 정해

둘에 부부가 합심하여 히노끼싱

이것이 첫째가는 근원이된다

셋에 살피니 온세상은 차츰차츰

목도 둘러메고 히노끼싱

넷에 사욕을 저버리고 히노끼싱

이것이 첫째가는 히노끼싱

다섯에 오래오래 까지도 흙나르기라

아직 있다며는 나도 가겠다

 

히노끼싱으로써, 흙나르기는 인간 쪽에서는 어버이신님에 대한 감사, 사례가 되겠습니다만, 이에 비해 어버이신님 쪽에서 보면, 귀여운 자녀인 인간에게 효능을 쌓아 주시기 위한 수단으로써 흙나르기를 재촉하시는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지도말씀에,

한 짐의 흙이 어떠한 것이 될지, 얼마만큼 효능이 있을지 모른다.

(1907. 3. 13)

라는 말씀처럼, 비록 우리들이 한 짐의 흙을 나르는 것만으로도, 얼마만큼 큰 효능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고 일러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가 오래오래 까지도 흙나르기라 / 아직 있다며는 나도 가겠다라고 마음먹었을 때는, 주위 사람은 그 당사자가 모처럼 덕을 쌓을 기회를 무리로 말리는 일은 하지 않았으면 한다.(여섯에)”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짐이란, 자신이 짊어질 수 있는 분량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운반하는 양은 사람에 따라서 다를 수 있으며, 오히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짊어질 수 있는 최대한의 양을 나르겠다는 마음이 아닐까요. 어떻든 진기한 흙나르기야(일곱에)”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운반하는 흙의 많고 적음과는 관계없이 흙나르기를 통해서 사람들의 마음의 진실을 받아들인다는 의미로서 진기한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지도말씀에,

자아, 믿음직한 믿음직한 마음을 바친다면 받아들인다, 받아들인다. 마 지못해 하는 따위로서는 신이 받아들일 수 없다. 백만금을 가지고 오는 것보다도 한 푼의 마음을 받아들인다. 이것만 납득하면 어떠한 일도 알 게 된다. (1902. 7. 20)

라고 깨우쳐 주십니다. 이바지뿐만 아니라, 히노끼싱에 있어서도 어버이의 입장에서는, 자녀가 울며불며 마지못해 큰일을 하는 것보다는, 가령 한 짐의 흙이라도 좋으니 이것이 봉상이 된다하며는(일곱에)”라는 마음으로 어버이를 위해서 열심히 운반하는 그 마음이 기쁜 것이 아닐까요.

그런데 예전에 마스이 이사브로선생이 극빈의 길과 반대 공격 속을 걸어가시는 교조님에 대해서 교조님께서는 참으로 노고가 많으시군요. 항상 자녀를 위해서 노고를 겪으시게 해서 얼마나 죄송한지 모르겠습니다.’라며 머리를 숙여서 말씀드리면, 교조님께서는 차분하게 이사브로씨, 내게 이러한 일은 노고랄 것도 없어. (중략) 사람들에게 부탁받아서 하는 것이 아니야, 그만두려야 그만둘 수 없는 거야. 걸어가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야. 또 이러한 일은 노고랄 것도 없어.” (桝井孝四郎 지도말씀에 얽힌 이야기())

이 길의 선인들은 교조님의 어버이마음을 느끼면서, 어떠한 고생 속에서도 교조님을 위한 것이라면이라는 마음으로 터전에 이바지, 나르기, 포교전도, 구제에 동분서주하셨던 것입니다.

어버이신님교조님의 어버이마음에 조금이나마 보답하겠다는 보은감사의 마음이 히노끼싱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덟에 터전의 이흙을 파내어서는

장소를 바꿔서 놓을뿐이라

아홉에 오늘이때 까지는 세상사람들

신의뜻 모름이 유감이로다

 

끼싱은 일반적으로는 사찰이나 신사에 금전이나 재물을 헌납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길에서는 이 세상은 신의 몸이야.”라고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에, 원래 자신(우리들)의 재산이 아니라, 모든 것은 어버이신님의 것이므로, 어버이신님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으로부터 그 어떤 것도 헌납 받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히노끼싱을 가르쳐 주신 것은, 어버이신님께 무언가를 헌공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귀여운 자녀인 인간이 욕심을 버리고 히노끼싱을 함으로써 근원(둘에)”이 되며, “거름(넷에)”이 되는 등, “효능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어버이마음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리고 히노끼싱이라고 하면, “터전의 이흙을 파내어서는 장소를 바꿔서 놓을뿐이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거창한 것이 아니라, 터전의 흙을 파서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장소를 바꾸는 것뿐이며, 마음만 있다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라고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사람 쪽에서 그런 어버이신님의 깊은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여 오늘이때 까지는 세상사람들 / 신의뜻 모름이 유감이로다라고 일러주시는 것처럼, 오히려 어버이에게 안타깝고 유감스럽다고 하실 정도로 폐를 끼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고본 천리교교조전을 살펴보면, 신악가를 제작한 1867년까지 터전을 찾은 사람들은 물질이나 돈을 얻으려고 왔거나 순산허락을 청원하거나, 병이나 사정을 도움받기 위해 온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그것뿐이라면 그래도 괜찮지만, 물질을 베풀 때에는 친척이나 지인들이 말리러 오거나, 신기한 구제가 나타나면 의사나 승려가 병자를 빼앗겼다는 이유를 대며 따지러 왔습니다. 실로 히노끼싱을 하러 오는 게 아니라, 그와는 동떨어진 사람들이 터전을 찾아왔던 것입니다.

그래도 입교 20년이 지날 시점부터는 쌀 4홉을 갖고 찾아오는 등, 조금씩이지만 무엇을 바라고 오는 것이 아니라, 구제받은 사례를 위해서 찾아오는 사람이 생기고, 그중에서 신앙을 하는 사람도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1864년에는 구제받은 보답으로 열심히 신앙한 신자들이 모여 근행장소의 역사를 하게까지 되었던 것입니다.

, 당시에는 신사나 사찰의 역사 때 끼싱으로서 금전이나 물질을 헌납하는 것이 지금보다는 더 일반적이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그것을 염두에 두고 생각해보면, 사람들은 물론 구제받은 데 대한 사례의 마음이 있다고 해도, 근행장소의 역사에 대해서 처음에는 일반적인 역사와 비슷한 감각으로 돈이나 물질(다다미나 기와) 등을 기부한 것이 아닌지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잘 알 수 있는 대목이 상량식 직후 일어난 오야마토(大和)신사 사건입니다. 말하자면, 일반적인 역사의 감각으로 끼싱(헌납)을 했던 사람들은 마디가 생기자 금세 끼싱을 그만두고 터전으로부터 멀어지고 말았습니다.

한편 이부리 이조 선생은 구제받은 데 대한 은혜보답을 잊지 않고,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터전으로 발걸음을 이어갔던 것입니다. 바로 여기서, 종래의 끼싱과 획을 긋는 어버이신님교조님에 대한 보은의 마음이 단단히 뿌리내린 히노끼싱의 본보기가 마침내 나타난 것입니다.

참고로 터전의 이흙을 파내어서는 / 장소를 바꿔서 놓을뿐이라고 할 , 장소를 바꾸는 곳은 터전 내의 다른 장소라기보다는, 각각의 지역을 가리키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다음의 신악가(열로)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터전에서 흙나르기 등 히노끼싱을 하는 것이 각각의 지역에서 훌륭한 모습의 수호로 이어진다는 의미로도 해석됩니다.

 

열로 올해에는 거름안해도

충분히 추수를 거둬들인다

참말 든든하고도 감사하도다

 

거름은 신악가 전체를 통해서 하나의 중심이 되는 말입니다.

1장에서 흔감하게 수훈을 받으며는 참말 든든하리라라며 사람들이 기쁘게 용솟음치며 흔감하게수훈을 받으면 어버이신님께서 얼마나 믿음직하게 생각하실지 모르며, 또한 사람들에게 있어서도 믿음직한 것이 될지 모른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 이 시점에서 아직 사람들은 거름의 수훈을 받고서도, 그 믿음직함이나 감사함은 실감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어서 제7장에서는, “씨앗을 뿌려놓은 그네들에는 / 거름을 안하고도 수확있으리라며 거름의 수훈을 받은 뒤 터전에 단단히 진실의 씨앗을 뿌리면, 자신의 논밭에는 보통의 거름을 뿌리지 않아도 수확을 할 수 있다고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단 여기에서도, 바로 그 앞에 이번에야 세상사람들 / 잘도잘도 씨앗을 뿌리러왔다라고 일러주시는 것처럼, 사람들이 마침내 터전으로 왕래를 하게 된 단계였을 뿐, 실제로는 거름을 하지 않고도 수확을 얻는 신기한 수호는 아직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더디어 11장에서 올해에는 거름안해도 / 충분히 추수를 거둬들인다 / 참말 든든하고도 감사하도다라며, 실제로 사람들이 거름수훈의 믿음직함과 감사함을 맛볼 수 있는 단계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1장에서는 참말 든든하리라의 든든하리라는 신님의 술회를 표현하는 던지는 손인 데 비해서, 11장에서는 마치 사람들의 용솟음치는 마음을 나타내는 듯한 용솟음치는 손이며, 그리고 거름을 안 하고도 수확할 수 있는 기쁨을 감사하도다로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거름의 수훈은 순산허락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가르침의 실천을 통하여 어버이신님의 수호를 체험하고, 신앙의 길을 돈독히 해나가도록 내려 주신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즉 순산허락을 가르쳐 주실 때는 종래의 습관(복대, 기할 것 등)을 하지 않고서도 안산 할 수 있는 신기한 수호를 통해서 어버이신님께 의지하는 데 대한 소중함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에 비하여, 거름의 수훈은 거름을 하지 않고도 수확할 수 있는 신기한 수호를 통해서 터전에 대한 이바지(음덕, 밑거름)의 소중함을 가르쳐 주시는 것은 아닐까요.

그런데 제1장 거름의 수훈 때, 예를 들었던 야마나카 주시치 선생은 아내의 신상을 구제받은 다음에도 편도 8의 길을 걸어서 터전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때 백미 한 되 정도를 자루에 담아서 지참했다고 합니다. 그것은 당시 터전이 너무나도 가난한 모습을 눈으로 보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와 함께 그런 극빈의 길을 교조님께서 일부러 걸어가시는 의도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야마나카 선생의 경우, 이 한 되의 백미가 한 짐의 흙이 되어서 효능을 쌓아 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야마나카 선생 자신은 아마 곧바로 효능을 실감하지 못하고, 오히려 터전에 왕래하면서도 가업인 농사를 남에게 맡길 수밖에 없어서 마을 사람들로부터 조롱을 받았기 때문에 터전에 왕래하는 것을 잠시 머뭇거렸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던 중에 교조님으로부터 거름수훈을 받고,

거름이라 해도 그 자체가 효험을 내는게 아니야. 각자 마음의 성진실(誠眞 實)이 효험을 내는 거야. (고본 천리교교조전일화편12 거름수훈)

라고 가르쳐 주시고, 거짓인가 참인가 시험해 봐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실제로 시험해 본 결과 정말로 거름을 하지 않고도 충분히 수확을 얻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눈앞에 보이지 않는 효능을 실감하기 전에는 히노끼싱에 별로 적극적이지 못하고, 터전이나 교회에 이바지하기보다는, 눈에 보이는 수입이 있는 세상에서 일하는 것이 더 매력적일 수 있습니다.

그럴 때는 한 번 더 구제를 염두에 두고 히노끼싱을 있는 힘껏 다하고, 수훈을 적극적으로 전해서, 나타내 보여 주시는 신기한 수호를 통해서 효능을 실감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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