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50호
입교187년(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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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교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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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10(1~5)

 

하나에 사람의 마음이라 하는것이란

좀처럼 알아보기 어려운거야

 

이 노래는, 어버이신님께서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한탄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인간이 사람의 마음’, 즉 남의 마음을 그리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말씀하시고 있는 게 아닐까요. 그리고 그것을 일부러 여기서 말씀하시는 것은, 우리에게 그것을 자각하도록 촉구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확실히 듣고 보면, 예를 들어 부모자식이나 부부 사이에서도 어째서 몰라주는가?”, “도대체 뭘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등 화가 나려고 할 때는, 무의식중에 부모자식 간이기에, 부부 사이기 때문에라는 이유만으로 서로가 서로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 즉 상대의 마음을 그렇게 간단하게 이해할 수 없으며, 또 친필에서도,

부모자식간 부부간 형제간이라도

모두 각각으로 마음 다른 거야 5-8

라고 일러주시는 것처럼, 부모자식, 부부, 형제는 모두 각자의 마음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서로 모르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래서 자신을 몰라준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를 나무랄 것이 아니라, 남의 마음을 모른다는 것을 전제로, 아무리 가족일지라도 상대의 기분을 적극적으로 물어보고 상대의 생각에 이해를 표현하는 등, 서로가 알려고 하는 노력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처럼 가족의 마음조차도 쉽게 알 수 없는 것이 우리들 인간입니다. 하물며, 전도하려는 사람이나 교회에 이어지는 신자의 마음은 더욱 알기 어렵기 때문에, 이쪽에서 먼저 적극적으로 다가서거나 마음을 이어 가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전도나 구제라는 맥락에서 생각했을 때에는, 하나에 전체를 사람의 마음은, 어버이신님의 의도를 그렇게 쉽게 분간하지 못하는 것이다.”라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좀처럼 알아보기 어려운거야알아보기 어렵다의 의미를 분간하지 못한다.”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9장 마지막에 신명을 부를 수 있게 되면, 으뜸 되는 터전으로 돌아와 어버이신님의 의도를 여쭈어 보라.”고 말씀하시면서, 10장의 처음에 인간의 마음이란, 어버이신님의 의도를 그렇게 쉽게 분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라면, 이것은 포교사에게 있어서 어떤 의미로는 다행스러운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포교를 하는 가운데서 어렵게 전도가 되어, 터전 귀참을 해서 어버이신님의 말씀을 듣게 했다고 해도, 반드시 곧바로 다음 단계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포교사가 자녀가 모르는 것이 아니야. 어버이의 가르침이 미치지 못한 거야. 어버이의 가르침이 구석구석까지 미친다면 올바르게 성인된 자녀의 모습을 보게 되겠지.” (고본천리교교조전일화편196 자녀의 성인) 이라는 교조님의 어버이마음을 가슴에 새겨서 끈기 있게 정성을 다하기 때문에, 전도하려는 상대도 조금씩 어버이신님의 의도를 분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도된 사람이 어버이신님의 의도를 분간하게 된다는 것은, 그 사람 자신이 가르침을 통해서 자신을 되돌아보고 마음을 바꿔 나간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서, 지금까지는 남의 말에 금방 화를 내고 주위가 바뀌기만을 생각하던 사람이, 주위 사람의 덕분으로 화내기 쉬운 자신의 나쁜 성품을 깨닫게 되어, 조금이라도 그것을 고치려고 노력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앞에 방금 나온 노래에서, 좀처럼 알아보기 어렵다고 하는 사람의 마음은 가르침을 알기 전인 자신의 마음을 포함하여, 자신의 나쁜 성품이나 마음 쓰기를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은 아닐까 생각됩니다.

 

둘에 신기로운 도움을 하고있지만

나타나 보이는건 처음이니라

 

셋에 물속에 섞여있는 이런진흙을

조속히 쳐내주기 바라고싶다

 

1867년 참배자를 기록한 어신전명기장 御神前名記帳을 보면, 약 한 달 사이에, 25백 명 이상의 사람이 집터를 찾아와서 구제를 청원하고 있습니다. 그것으로 추정해 보면, 어버이신님께서는 벌써 당시 몇 만의 사람들에게 신기로운 도움을 하고 있지만(둘에)”의 노래처럼, 순산허락, 마마 수호(5장 둘에)” 등 신기로운 도움을 보여주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편 인간 쪽에서는, 신기한 구제를 나타내 보여 주시는 주체가, 흔히 있는 신님이 아니라 으뜸인 신님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아직 고생하는 근본이 다른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나타나 보이는건 처음이니라(둘에)”라고 노래하고 있는데, 그 내용에 대해서는 몇 가지의 해석이 있습니다.

여기서는 나타나 보이는건의 손짓에 기초하여 그 해석의 방법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확인해 둘 것은 나타나 보이는건에서는 나타나보이는건의 두 가지 손짓으로 성립되며, 그래서 두 가지의 의미를 찾을 수가 있습니다.

먼저 나타나의 손짓은 신악가 10장에서 여덟에 질병이란 쓰라린 것이지마는 / 근본을 아는자는 바이없도다 열로 이번에야 알게되었다 / 질병의 근본은 마음속에서아는알게되었다는 모두 양손인지로 배 앞에서 수평으로 원을 그리는 손동작을 합니다.

거기서 생각해 보면, 나타나(둘에)”의 의미는 어버이신님께서 고생하는 근본을 명확하게 한다.(열로)”는 의미이며, 그것으로 인해 사람들은 고생하는 근본을 알게 된다(여덟에)”로 해석됩니다.

다음으로 보이는건(둘에)”의 손짓은, 이어지는 노래의 쳐내주기(셋에)”와 같은 동작으로, 양손의 손바닥을 바깥으로 하여 왼쪽 허리 앞에 내림과 동시에 곧 손목을 움직여 비스듬히 오른쪽으로 무엇을 던져 올리는 자세를 취합니다.

거기서 생각해 보면, 보이는건(둘에)”의 의미는 물속의 진흙을 쳐내주기(셋에)”와 같이 고생하는 근본이 되는 마음의 더러움을 쳐낼 수 있도록 마음의 청소를 하라고 하시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따라서 나타나 보이는건 처음이니라(둘에)”는 신악가는 신기로운 구제를 하고 있는 어버이신님께서 사람들이 고생하는 근본을 명확하게 해 주신 덕분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을 청소하게 되고, 그것으로 인하여 마음의 더러움이 없어져, 마음이 맑아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나타나 보이는건, “어버이신님께서 사람들의 마음 그대로 나타나도록 한다.”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확실히 친필에서는,

이 청소는 안이나 세상이나 차별 없다

각자의 마음을 모두 나타낼 테야 12-2

라고 일러주고 계십니다. 그러나 신님께서 의도하시는 바는, 앞으로 마음을 그대로 나타낼 것인데, 그 전에 단단히 마음의 청소를 하라는 뜻이 아닐까요.

즉 어버이신님은 질병으로 나타내는 것이 안타까운 일 1-24”이라고 하시고, 또한 아무래도 나타내지 않으면 안 될 경우에는 부득이 1-26” 나타낸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악가에서 마음의 더러움이 질병으로 나타난다고 말씀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우리들 마음의 청소를 재촉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더러움을 밖으로 내보내어, 마음을 완전히 맑히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입니다.

참고로, “나타나 보이는건 처음이니라(둘에)”어버이신님께서 이 세상에 나타나서 구제를 하는 것은 지금이 처음이다.”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이때 처음이니라는 일반적으로 입교를 가리킨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만, 사람이 터전으로 돌아와 교조님을 통해서 스스로 어버이신님을 알게 되었을 때, 그 사람에게 있어서 처음이니라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난병의 도움을 받아서 사례참배를 하러 온 사람들 중에는 교조님을 뵙고서도 어버이신님께서 듭셨다는 것을 생각지 못하고, 교조님과의 힘겨루기에서 완패를 당하고 나서야 처음으로 교조님을 산()신님으로 느낀 사람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고본천리교교조전일화편75 이것이 천리야 외.)

 

넷에 사욕이 한이없는 진흙물이야

마음이 맑아지면 극락이로다

 

다섯에 오래오래 까지도 이런한일은

이야기의 근거가 되는것이니

 

10장 처음에 사람의 마음이라 하는것이란 / 좀처럼 알아보기 어려운거야(하나에)”라고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만, 평소에 마음에 대해 별로 의식하지 않는 우리들 인간에게는,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에 대한 이야기는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또 그렇지 않아도, 질병으로 고생하는 사람에게, “고생을 하는 근본은 마음에서부터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상대를 나무라는 것으로 느끼게 해서 쓸데없는 고통을 주기 십상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해 보면, 교조님께서 누구나 눈으로 보고 알 수 있는 물과 진흙에 비유하여, 마음에 대해서 부드럽고 친절하게 풀어 주신 것은, 전도·포교를 함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좋은 본보기입니다.

한편, 가르침을 듣는 쪽에서는 친필에,

이제부터는 물에 비유해서 말한다

맑음과 탁함으로 깨닫도록 하라 3-7

라고 일러주시는 바와 같이, 부드럽고 알기 쉽게 일러주시는 가운데에, 깊으신 어버이의 의도가 담겨 있으며, 그것을 확실히 인식하여 어버이가 말하고자 하는 뜻을 잘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손춤에 주목하면서 물과 진흙에 비유한 깨달음의 내용(셋에, 넷에의 노래)에 대해 조금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먼저 물속에 섞여있는 이런진흙을에서 진흙은 오른손 손바닥을 안으로 손끝을 약간 굽혀 가슴의 명치 부분을 세 번 돌리는 동작을 합니다.

이것은 진흙이 들어 있는 물을 섞으면 물이 탁해지는 것을 표현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것에 대해서 조속히 쳐내주기 바라고싶다쳐내주기는 양손으로 왼쪽 허리 앞에서 비스듬히 오른쪽 앞으로, 물건을 위로 퍼 올리는 자세를 합니다. 이것은 물속의 진흙을 쳐낼 때는, 조금 시간을 두고 진흙을 바닥에 침전시켜서, 그것을 퍼내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물과 진흙의 이야기에 입각하여 사람의 마음으로 눈을 돌렸을 때, 우리는 평소 무의식적으로 마음의 티끌을 쌓고 있고, 그 마음의 티끌이 쌓여서 무엇인가 자신의 마음에 동요를 일으키는(진흙의 손짓) 일이 일어났을 때, 비로소 자신의 마음을 흐리게 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예를 들어, 남편이나 아내에게 평소 생활 속에서 별것도 아닌 일에 짜증이 나거나 울컥 화가 치밀어 오르는 등, 어떤 계기로 열을 받아서 , 이제는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기분이 들 때를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되기 전에, 평소 자신의 마음을 청소하는 데 소홀히 하면 안 되겠지만, 그와 동시에, 애당초 왜 마음의 티끌을 쌓고 말았는지, 그 원인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정말로 사욕이 한이없는 진흙물이야라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우리에게 사욕의 마음이 있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마음을 흐리게 하는 원인이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사욕(넷에)”의 손짓은 양손으로 비스듬히 왼쪽에서 배 앞으로 물건을 끌어모으듯이 합니다. 사람이나 물건을 모두 자신에게 끌어모으는 듯한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이, 남의 말이나 행동을 보고 미워하거나 일이 생각대로 되지 않을 때, 화를 내게 되는 원인이 된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따라서 진흙을 쳐내주기의 손짓이 왼쪽 허리 주변에서 시작하는 것은 사욕”(비스듬히 왼쪽앞에서 배 주변으로 끌어모으는 손짓)이 만들어낸 마음의 티끌을 내놓는 동시에, 처음부터 사욕의 마음과 상대해야 한다는 것을 촉구하고 계시는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런데 사욕이나 티끌의 이야기를 하면, 개중에는 금욕이나 고행을 떠올려서 어둡고 고생스러운 이미지를 가진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길의 가르침은 즐거운 삶의 가르침이며, 사욕을 저버리고 마음이 맑아지면 극락(넷에)”이라고 가르치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즐거움이 있기 때문에 이야기의 근거(다섯에)”가 되는 것이며, 다른 사람에게도 여기는 이세상의 극락이라오 나역시 어서어서 가고싶어라(4장 아홉에)”라고 생각할 수 있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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