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50호
입교187년(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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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교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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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회

 

제2장 (5수~10수)

 

다섯에 아무라도 따라오게 되며는

 

 

둥둥둥실 정월에 춤추기 시작하면 이야 즐거웁구나

 

둘에 신기로운 역사를 시작하면 참말 번창하리라

 

셋에 몸에 붙고

 

넷에 세상 밝아

 

 

 

 

 

 

여섯에 액운의 뿌리를 끊어

 

 

 

「액운」이란, 원어로는 「모반(謀反, 謀叛)」이라고 하는데, 국가나 군주의 전복을 꾀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노래를 만들었던 1867년은 에도(江戶)막부가 막을 내리고 메이지(明治)라는 새로운 지배체제로 옮기는 시기였습니다. 그리고 정변을 일으킨 것이 다름 아닌 지방 제후나 민중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드라마나 영화처럼 멋있는 것이 아니라, 「액운(모반)」을 일으킨 쪽이나 막으려는 쪽에서는 목숨을 걸고 임하는 것이기에, 거기에 휘말린 사람들의 상황은 필설로 다하지 못할 정도로 비참한 것이었습니다.

「액운(모반)」의 손짓은 칼이나 죽창 같은 것을 쥐고 칼끝을 상대에게 향하는 모양새를 하고 있습니다만, 그것이 단지 국가나 민족의 수준에만 한정된 것이 아닙니다.

가까운 곳에서는 부모와 자식, 부부간에서도 나타나고, 학교나 직장에서도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물론 그럴 경우 공격 도구는, 언어이고, 태도이며, 주먹입니다.

평소에 우리는 상대를 몰아붙이지 말고, 상대의 생활이나 입장이 가능하도록 배려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도 상대가 칼날을 겨눈다면, 신악가 5장에,

여섯에 가혹한 마음을랑 털어버리고

인자로운 마음으로 되어오너라

라는 노래와 손짓에서 가르쳐 주신 것처럼, 상대를 제압하려는 듯한 ‘가혹한 마음’이 아니라, 상대의 칼날과 같은 마음을 솜털과 같이 부드럽게 안아 주는 ‘인자한 마음’이 요구됩니다.

하지만 애초에 이 세상에서 다툼을 만드는 일이 없어지기(액운의 뿌리를 끊어진다)까지는 아닙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무라도 따라오게 되며는’이라고 어떤 사람이든(아무라도) 이 길을 걸을 수 있게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따라오게 되며는’의 ‘따라’의 손짓은 「셋에 세상 밝아」와 같이 「양손 끝을 동시에 가슴에 댄다.」(『손춤개요』)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람들이 손춤을 추기 시작하고 역사를 시작해서 자신의 마음에 가르침이 붙게 된다면, 이 세상에서「액운(모반)」을 일으키는 사람도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선인의 이야기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모두 신상을 구제받기 위해, 좋아하는 싸움도 도박도 끊고, 여자에게 끌리는 것도 그만두고, 사욕의 마음도 버리고, 탐도 인색도 생각하지 않고, 남을 원망하거나 미워하는 마음, 또 죄를 짓고 억지를 부리며 화를 내는 일도 모두 그만두고 신님의 가르침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처럼, 신님께서 우리의 몸에 훈계를 하시고는(신상을 보이시고는), 차츰차츰 마음을 부드럽게 되도록 해 주시기 때문에, 결국에는 나쁜 일로 인한 재판도 없어지고, 감옥에 들어가는 사람도 없어져서, 진실로 이 세상이 평온해지는 것은 이 길이 완전히 관철된 후의 일. 이외에는 진실로 이 세상이 다스려질 방법이 없다.」 (모로이 마사이치(諸井政一) 『改訂 正文遺韻』)

 

일곱에 어려움을 도와주며는

 

여덟에 질병의 뿌리 끊으리

 

이 두 노래를 별생각 없이 그대로 읽게 되면, 「만약 어려움을 도와준다면, 병의 뿌리를 끊는다.」라는 의미라고 생각해 버리기 때문에, 무의식중에 어려움을 도와주는 일을 병의 뿌리를 끊기 위한 수단이나 조건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세계 구제를 목표로 하는 이 길에서, 어려움을 도와주는 것은 결코 수단이나 조건이 아니며, 평소에 마음에 새겨야 할 목적의 하나입니다.

친필에,

어떤 것이든 질병이란 전혀 없다

마음 잘못 쓴 길이 있으므로 3-95

라고 깨우쳐 주시는 것처럼, 질병은 단지 극복해야 할 것이 아니라, 구제한줄기의 길을 방해하고 있는 우리들의 「마음을 잘못 써 왔다는 것」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염두에 두고 앞서 말씀드린 신악가를 다시 한번 살펴보면, 「만약 어려움을 도와준다면, 질병의 뿌리를 끊으리」가 아니라, 「어려움을 도와주었으므로, 질병의 뿌리를 끊으리」가 됩니다.

그리고 이 노래의 의미도「티끌」에 비유한 것처럼, 각자의 잘못된 마음가짐을 반성하고, 남을 도와주는 마음이 되어 어려움을 도와주었을 때, 「질병」은 그 역할을 다하고, 어버이신님께서 그 뿌리를 끊어 주시는 것이 아닐까요.

그런데 좀 깊이 들어가 버렸습니다만, 어려움을 도와주는 것이 이 길의 목적의 하나이며, 질병은 그것을 재촉하기 위한 수단이란 것을 교조님의 모본을 살펴보면 더욱 명확해집니다.

그중에서도 주목할 것은, 교조님께서 어려움을 도와주고 구제한줄기의 길을 펼쳤을 때, 그것을 방해한 것은 주변 사람들이 아니라, 교조님께서 신상의 괴로움에 빠지셨다는 것입니다. 즉 마음을 잘못 쓴 자신이 반드시 신상에 걸린다고 한정 지을 수 없으며, 가족이나 주변의 소중한 사람의 신상을 통해서 우리 스스로 마음을 바꿀 것을 재촉하시는 것입니다.

지도말씀에,

원래는 어렵지 않았는데, 있는 것을 다 주어 버렸다. 고생과 부자유를 겪지 않으면 남의 고생과 부자유를 모른다. (1890.6.12)

라고 하시는 것처럼, 교조님께서는 남의 어려움을 도와주기 위한 것이라면, 자신의 어려움은 조금도 마다하지 않고, 오히려 앞장서서 어려움을 겪는 길을 걸으셨습니다.

「도와」의 손짓은 자신의 허리를 약간 구부리고 좌우 허리 부분에서 양손으로 물건을 떠올리듯이 합니다. 여기서도 이 길에 있어서 어려움을 도와준다는 것은, 위에서 손을 내밀어서 「 도와준다」라는 태도가 아니라, 교조님처럼, 상대의 처지가 되어서 자기 일로서 「도움을 받는다」라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어떤 선인의 말씀에 따르면, 교조님께서 1884, 5년경에「하루 한 끼조차도 먹으려야 먹을 수 없고, 하루도 살기 어려운, 그 어려운 사람을 오로지 도우려는 모습」 (모로이 마사이치(諸井政一) 『改訂 正文遺韻』)

하루 한 끼도 먹지 못하고, 그날그날을 살아가는 가난한 사람을 배려하는 그 말씀은,

이 길을 43년 이전부터

참으로 험난한 길을 걸어왔다 15-83

라고 친필에 적혀 있는 것처럼, 교조님 자신이 오랜 세월에 걸쳐, 때로는 내일 먹을 쌀이 없을 만큼 참으로 어려운 길을 걸어오셨기 때문에 실감할 수 있는 것입니다.

향년 87, 8세의 교조님께서 당시 관헌의 혹독한 단속 중에도 변함없이 사람들의 몸을 염려하여, 진심으로 걱정해 주시는 깊으신 어버이마음에 우리는 조금이라도 보답해야 할 것입니다.

 

아홉에 마음을 작정하게 되며는

 

열로 곳곳마다 평화이루리

 

이 노래는 1867년에 만들어졌는데, 그 수년 전에 벌써 시바(芝) 마을, 마메코시 마을, 요코타(橫田) 마을, 쇼지(小路) 마을, 오니시(大西) 마을, 니즈미(新泉) 마을, 닷타 마을, 안도 마을, 나미마쓰 마을, 이치노모토 마을, 후루이치(古市) 마을, 시치조(七條) 마을, 도요다 마을 등의 인근은 말할 것도 없고, 상당히 먼 곳에서도 많은 사람이 쇼야시키에 있는 터전으로 모여온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근행을 처음에 배운 것도 도요다, 센자이, 미시마 마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곳곳마다 평화이루리 」라고 들었던 사람들은 그들이 살고 있던 고장의 안녕을 상상했을지도 모릅니다.

 

【집터주변 지도(에도시대말기)】

 

 

 

그렇다면 곳곳마다 평화 이루리란, 무슨 뜻일까요.

첫 번째는 신악가 2장에

다섯에 아무라도 따라오게 되며는

여섯에 액운의 뿌리를 끊어

라고 적혀 있는 것처럼, 가족이나 지역 사람들이 가르침을 몸에 익히게 되어서, 부모 자식, 부부를 비롯한 이웃 사람들 간의 다툼이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국가나 정부를 위시한 윗사람들에 대한 사람들의 불평, 불만이 없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요. 더욱이,

일곱에 어려움을 도와주며는

여덟에 질병의 뿌리 끊으리

라고 적혀 있는 것처럼, 그 지역에 있어 빈곤 등으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없어지고, 결과적으로 질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없어진다는 것이겠죠. 다툼이 사라지고, 가난한 사람이나 병을 앓는 사람들이 없는 곳이 있다면, 그곳을 「다스려진 곳」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악근행에서 절단수호의리 의 끊는 손짓은 21번 중에서 마지막 3회만을 손짓합니다. 그 리를 받아서 「액운의 뿌리를 끊어」와「질병의 뿌리 끊으리」의 손을 흔드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즉 친필에,

다음에 절단수호란

이것은 세상의 가위인 거야 12-145

라고 적혀 있는 것처럼, 어버이신님의 끊는 섭리(절단수호의 리)를 받음으로써 액운도 질병도 없어져서, 곳곳마다 평화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어버이신님의 수호를 받을 수 있도록 마음을 작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손춤에서 언급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즉 「셋에 몸에 붙고」,「다섯에 아무라도 따라오게 되며는」에 이어서 「아홉에 마음을 작정하게 되며는」에서도 「양손 끝을 동시에 가슴에 댄다.」(『손춤개요』)라고 나와 있는데, 이번에는 더욱이 가슴에 댄 양손으로 누르는 손을 하고, 마음에 단단히 「작정」할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참고로 「넷에 세상 밝아」에서 왼발을 크게 일보 내디디고, 몸을 우측으로 천천히 한 바퀴 도는 데에 비해, 「열로 곳곳마다」에서는 왼발을 반보 내고 한 바퀴 돕니다. 이것은 가까운 고장에서부터 즐거운 삶의 범위가 넓어져서, 결국에는 「세상이 바뀌게 된다.」라는 뜻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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