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50호
입교187년(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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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교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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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회

 

제2장 (1수~4수)

 

둥둥둥실 정월에 춤추기 시작하면

이야 즐거웁구나

 

교조님께서는 1867년 정월부터 8월에 걸쳐서 12장의 노래를 가르치셨다. 선인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노래가 만들어지고 가락도 가르쳐 주신 다음에 교조님께서는,

“이 노래는 리의 노래이므로 리에 맞추어 추는 거야. 어떻게 추는 게 좋을까. 모두 각자 좋다고 생각되는 대로 추어 보아라.”

(『고본 천리교교조전 일화편』18「리의 노래」)

라고 하셨다.

에도(江戶)시대 말기 야마토 지방에서 주로 농사일을 하던 당시의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 과연 어떻게 춤을 추었을까요. 그것을 엿볼 수 있는 것으로, “그때는 어떻게 추는지 몰랐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추거나, 단가처럼 마치 민속놀이나 관음무(觀音舞)처럼 추었던 것입니다.” (『고요한 불꽃의 사람 우메타니 시로베』) 라고 전해집니다.

민속놀이나 관음무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만, 북이나 월금에 맞추어 추는 본오도리(백중 맞이 춤)라고 생각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둥둥둥실」은 북소리나 춤사위의 의태어로, 당시 사람들에게는 춤을 연상시키는 말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또는 손을 가볍게 두드리고 소매 끝을 쥐는 모습에서 사람들이 차례차례 이 길에「인도」되어오는 것으로 깨달을 수 있습니다.

친필에,

차례차례 뛰어나가는 일을 보더라도

염려할 것은 없는 거야 12-56

라는 노래에서 보더라도, 어버이신님의 섭리가 뛰어나가는 것을 표현한 것으로도 생각됩니다. (여기서 ‘둥둥둥실’과 ‘차례차례’는 원어가 똑같음) 어쨌든 제1장에서는 농사꾼에게 친근한「거름」을 소재로「수훈」을 가르쳐 주셨고, 더욱이 제2장에서는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 친근한「춤」을 통해서 「근행」을 가르쳐 주신 것으로 느껴집니다만, 교조님께서는「근행」은 보통의 춤과는 분명하게 다르다는 것을 몸소 가르쳐 주셨는데, 사람들이 말씀을 듣고 각자 궁리하여 추는 것을 보고 계시던 교조님께서는,

“모두들 추었지만 아무도 리에 맞도록 춘 사람은 없어. 이렇게 추는 거야. 그저 추는 것이 아니고 리를 손짓하는 거야.”

라며, 친히 서서 모두에게 손짓을 해 보이셨다. (『고본 천리교교조전 일화편』18「리의 노래」) 바야흐로, 보통의 춤이 아닌, 근행의「손춤」이 창조된 순간입니다.

친필에,

근행도 월일이 차츰차츰 손짓을 가르쳐

그것은 인간의 마음이 아니다 8-7

라는 말씀처럼, 근행의 손짓은 노래, 가락과 더불어 직접 어버이신님께서 가르쳐 주셨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참고로 「즐거웁구나」는 지금은 「해학적으로 우습다.」라는 의미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은데, 원래는 「보고 즐겁다. 유쾌하다. 흥미진진하다.」라는 의미가 담긴, 깊은 뜻을 가진 말입니다.

 

둘 에 신기로운 역사를 시작하면

참말 번창하리라

 

「역사(役事)」란, 원래는 사찰의 불당이나 탑을 건축할 때, 널리 사람들에게 부탁해서 도움을 받는 것을 의미하며, 넓게는 길이나 다리 등 토목공사, 또는 집을 건축하는 의미로도 사용되었다. 그래서「역사」의 손짓은 목수 연장의 하나인「도끼를 쥔 자세로 아래 배 앞에서 두 번 도끼질로 나무를 자르는 모습을 취한다.」(『손춤개요』)고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삽화]

신기로운 역사를 시작하면

도끼(손도끼)

 

그러나 이 길의 역사는 자신의 힘이나 남에게 부탁해서 무언가 훌륭한 것을 지으려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지도말씀에,

구제를 위한 신기로운 역사, 진실한 마음을 받아들이기 위한 신기로운 역사.

(1890.6.15)

라고 일러주시는 것처럼, 어버이신님의 은혜, 교조님의 어버이마음을 깨달은 사람들이 늘어나, 그러한 사람들이 은혜보답으로서 진실한 마음을 모으는 것이 중요하며, 그러한 가운데서 점점 이루어지게 되므로 「신기로운 역사」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길의 역사”를 시작한다는 것은, 전도·구제에 힘써서, 사람들이 마음을 바꾸도록 촉구하면서 진실을 끌어내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 길의 역사는 1864년에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교조님께서 극빈의 길을 걷고 있을 때로서 집터의 모습은 안채는 벌써 헐어서 없어졌고, 문간채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낡고 오래된 다다미 6장과 8장의 두 칸 방에서 교조님과 슈지, 고칸님 세 분이 기거하셨으며, 다다미 8장의 방에는 어폐가 모셔져 있었습니다.

 

[삽화]

이 길의 역사

전도 • 구제

 

그런 가운데 1864년 이 길에 인도되어 부인의 산후병을 구제받은 이부리 이조 선생께서 그 은혜보답으로 신각을 만들어 바치겠다고 말씀을 드리자, 교조님께서는,

“신각은 필요 없다. 조그마한 것이라도 집을 짓기 시작하라.”

(『고본 천리교교조전 일화편』)

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어느 정도 크기의 집을 지을까요.” 하고 여쭈자,

“한 평 사방의 집을 짓는 거야. 한 평 사방의 집, 집이 아니야.”

하시고, 다시

“더 크게 짓는 것은 마음에 따라서지.”

라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한 평이란, 대략 다다미 2장 정도의 넓이입니다만, 건축에 있어서 최소단위인 한 평부터라도 좋으니, 먼저 역사를 시작하는 마음을 정하라고 재촉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부리 선생이 교조님의 말씀을 듣고 「신기로운 역사를 시작한다.」는 마음작정을 통해서, 터전에서는 지금까지 없었던 「활기가 넘치게」되었다고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당시 이부리 선생 부부와 마찬가지로 교조님으로부터 구제를 받아서 무언가 사례를 하려고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사람들이 있었고, 역사가 시작됨으로써 그러한 사람들이 은혜보답의 기회를 얻어서 굉장히 용솟음쳤다고 생각됩니다.

그 후 한 평에서 시작된 역사는 의논한 결과, 21자에 36자 크기의 집을 짓기로 마음을 정한 후, 각자 비용과 품, 기와, 다다미 등 자신이 할 수 있는 정성을 모으게 됩니다.

셋 에 몸에 붙고

 

[삽화]

춤추기 시작하면

가르침이 몸에 붙고

신기로운 역사를 시작하면

 

「몸에 붙고」란, 일반적으로는 지식이나 기술을 배우거나, 의복을 몸에 맞추는 것을 의미합니다만, 음식을 먹었을 때, 자신의 영양분이 된다는 의미로써 사용됩니다. 어느 경우든 무엇인가 몸에 붙기 위해서는 자신의 노력과 시간을 들이는 나름의 대가가 요구됩니다.

반대로 노력도 하지 않고, 때에 따라서는 부정한 방법을 써서 손에 넣은 것은「부정한 돈 몸에 붙지 않는다.」는 말처럼, 진정한 의미에서 자신의 것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신앙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교회에서 태어났다거나 남에게 권유받았다는 등, 언제까지나 도움만 받아서는 자신의 신앙은 시작되지 않으며, 가르침도 몸에 붙지 않고, 때에 따라서는 이 길에서 멀어지기도 합니다.

처음의 계기야 어찌 되었든, 자신이 어버이신님의 은혜를 느끼고, 은혜보답을 하려고 가르침을 실천하기 때문에, 바로 자기 신앙의 길이 열리고 마음에 가르침이 붙게 되는 것입니다.

교조님의 50년간에 걸친 모본에서 이렇게 은혜를 은혜로 느끼며 신앙의 길로 들어선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입교에서 20년 이상 지난 뒤라고 생각됩니다.

특히 1864년에 시작된 역사는 실로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슴속을 살펴보신 시기로서, 이부리 이조 선생과 같이 어떠한 가운데서도 변함없이 은혜보답을 생각하며 효능의 리를 쌓고, 가르침을 몸에 붙여 나아간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모처럼 덕을 쌓을 기회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다하기·나르기도 하지 않은 채, 이 길에서 멀어져 간 사람도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선인에 따르면 교조님께서는,

“자기 일이라 생각하고 하면, 모두 제 것이 되는 거야. 남의 일이라 생각하고 하면 남의 것이 되고 마는 거야.”

(『본부원 강화집「상」미야모리 요사부로「구극의 가르침」』)

라는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셋 에 몸에 붙고」의 손은 「양손으로 배 앞에서 『평원을 그리는 손』을 하고 그대로 양손 끝을 동시에 가슴에 댄다.」(『손춤개요』)라고 나와 있습니다. 이 손짓처럼 역사뿐만 아니라, 모든 일을 신님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자기 일」로서 힘껏 정성을 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친필에,

 

행복을 누리도록 충분히 수호하고 있다

몸에 받게 될 테니 이것을 즐거워하라 2-42

 

이렇게 신님의 일을 하는 가운데 좋은 운명이 몸에 붙게 되는 것입니다.

1865년 11월에 이부리 선생의 부인이 임신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듬해 2월에 무사히 건강한 여자아이를 출산하게 되는데, 2번의 유산을 통한 산후병을 구제받고 입신한 이부리 이조 부부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교조님으로부터,

“무엇이든 좋은 일은 좋아 좋아 하고 말하는 거야. 요시에라고 한다.”

(우에다 에이조『이부리 이조전』)

하시며, 요시에라는 이름을 지어 주셨을 때, 참으로 운명이 좋은 쪽으로 몸에 붙게 되었다고 실감했으리라 생각됩니다. 참고로, 성장한 이부리 요시에에게 교조님께서는,

“먹다 남은 음식을 먹는 것은 덕이 되는 거야. 천한 것이 아니야.”

(『고본 천리교교조전』112「애교가 첫째」)

라고 깨우쳐 주셨다는 것은 흥미로운 장면입니다.

 

넷에 세상 밝아

 

「세상 밝아」는 한자로 쓰면 「세상이 좋아지다. 바뀌다.」는 의미입니다만, 당시의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요.

1868년 8월부터 1869년 4월에 걸쳐서 세상에서는 하늘에서 ‘액막이 부적’이 내려온다는 소문이 무성했습니다. 액막이 부적이란, 신사나 사찰에서 부적의 일종으로 재액을 없애고 행복을 기원하기 위해서 신단에 모시거나, 대문에 붙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부적을 받은 민중이 가장(假裝)하고「좋지 아니한가」를 연발하며, 집단으로 마을과 마을을 열광적인 춤을 추며 다니는 모습을 일본의 많은 지역에서 볼 수 있었다고 하는데, 그때 추임새의 하나로 「일본 나라 바뀌는 것 좋지 아니한가」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것은 당시 정치적 불안과 경제적인 혼란으로부터 그 안정을 신불에게 기원하는 행위, 또는 세상이 바뀌기를 바라는 민중봉기였다는 설이 있습니다. 그 본래의 목적이나 시작은 둘째치고라도, 그 외에도 관아나 부잣집을 때려 부수고 약탈하는 소동이 빈번하게 일어났다고 하는데, 사람들은 세상에 불만을 품고 바뀌었으면 하고 열망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교조님께서 일러주신, 세상이 바뀌는 길이란, 타력 본원(他力本願)적인 소란스러운 축제나 때려 부수고 약탈을 하는 등, 힘에 의지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자신이 스스로 마음을 바꿈으로써 세상도 바뀌게 되어,「세상 밝아」지는 것을 보여 주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즉 이 길에서 「춤추다」라는 것은, 「좋지 아니한가」처럼 자기 생각대로 세상이 바뀌는 것을 원하며 춤을 추는 게 아니라, 어버이의 의도를 알기 위해 리를 흔들며, 손춤을 「춤추기 시작하면」이라고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 제2장 하나에)

또 「부수다」는 것은, 때려 부수거나 민중봉기와 같이 자신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남의 것을 부수는 것이 아니라, 교조님처럼 안채를 허물면서까지 남에게 베풀고도 「신기로운 역사를 시작하면」이라고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제2장 둘 에)

그리고 남이나 세상을 바꾸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행복의 근원은 각자 자신의 마음에 있는 것임을 깨닫고, 자신의 마음에 좋은 운명이「몸에 붙고」와 같이 확실하게 은혜보답의 길을 걸어가게끔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제2장 셋 에)

이렇게 자신뿐만이 아니라, 가족이 함께 어버이신님의 가르침을 듣고, 15세부터는 마음자리 틀리는 것을 진실로 참회하며 남을 구제하려는 마음으로 바꿈으로써, 그 성진실한 마음을 받아주시고 어버이신님께서 만가지구제를 해 주시기 때문에 세상도 자연스럽게 즐거움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본래 인간이란, 즐거운 삶을 누리도록 어버이신님께서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세상 밝아」라는 것은, 우리들의 마음이 어버이신님께서 바라시는 「즐거움이 넘치는 마음」으로 바뀌고, 이 세상 또한 으뜸인 의도대로 「즐거운 놀이」로 바뀌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친필에,

 

이제부터는 마음 단단히 바꿔서

즐거움이 넘치는 마음이 되도록 14-24

월일이 인간을 창조한 것은

즐거운 놀이를 보고 싶은 까닭에 14-25

그런데 「셋에 몸에 붙고」부터「넷에 세상 밝아」까지 실제로 연속으로 춤을 추어 보면, 새삼 「어버이신님」과「자신의 마음」 그리고「세계」와의 깊은 관계를 느끼게 됩니다.

즉, 합장하고 모든 것이 어버이신님의 수호의 세계라고〈양손으로 배 앞에서 평원을 그리는 손을〉한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에 단단히 새긴다.〈양손끝을 동시에 가슴에 댄다〉그리고 몸에 붙인 신한줄기의 정신으로〈합장〉, 크게 한 걸음 앞으로 내디디고,〈왼발을 크게 일보 내디딘다〉자신의 주변 사람들에게 그 마음을 비쳐 나가는 것이〈한 바퀴 돈다〉세상이 즐거운 삶의 세계로 바뀌는 것과 연결된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번호 제목 날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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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181년07월][16회]후카야 모토키요 저 2018.07.09
15 [181년06월][15회]후카야 모토키요 저 2018.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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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81년04월][12장의 손춤을 보다 가까이 13회]후카야 모토키요 저 2018.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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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180년12월][12장의 손춤을 보다 가까이 10회]후카야 모토키요 저 2017.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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