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50호
입교187년(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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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년06월][16회]집착

2021.05.28 17:00

편집실 조회 수:61

집착

 

박혜경(진홍교회)

 

얼마 전 우리 집 맏이 혜인이가 대학에 들어가며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같은 마산에 학교가 있지만, 집에서 버스 환승을 해서 가면 한 시간은 더 걸리는 것 같아 새벽부터 등교하느니 기숙사에 사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에 고심 끝에 내린 기숙사행이었습니다. 이렇게 오래 떨어져 있던 적이 없어서 많은 걱정이 되었지만, 앞으로는 더 같이 있을 시간이 없으니 이참에 떨어지는 연습을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학교에서 학부모 강의를 들어보면 중학생이 되면 이제 슬슬 애들을 놓아주는 연습을 하라고 들었던 것이 6년이 지나도 실감 나지 않았는데, ‘이젠 정말 떨어지는 연습을 할 때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는 성격상 모든 것이 내 생각대로 움직여야 하고, 모든 상황이 제가 이끄는 대로 움직여지길, 가족들이 내 손을 거쳐 살아가길 바라는 그런 타입입니다. 제 주변 사람들은 이런 제가 많이 힘들 겁니다. 저는 가족들을 위하는 일이라 생각하고 하는 행동일지라도 가족들로선 너무 자유가 없는 것 같고, 엄청나게 간섭하니까 많이 피곤할 겁니다. 아마 다른 사람이라면 못 참았을 건데, 우리 식구들은 그런 저를 잘 참아낸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렇게 생각한 계기가 되었던 것이 혜인이가 기숙사에 입사하고 그날 학교 입학식이었는데, 음료수를 사 먹고 남아서 입학 선물로 친구에게 받은 텀블러에 음료를 담아놨다가 가방에 넣었는데 그게 쏟아졌답니다. 교수님과 친구들의 첫 만남이라 안 그래도 소심한 아이가 한껏 긴장도 했을 텐데, 가방 옆을 보니 음료가 막 새어 나오더라네요. 텀블러를 잘 사용해보지 않아서 모든 종류의 텀블러가 다 음료가 쏟아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던가 봅니다. 그래서 급히 화장실에 가서 화장지로 닦고 가방에 휴지를 깔고는 겨우 기숙사로 돌아왔답니다. 새로 산 하얀 가방에 누런 음료 물이 쏟아져서 분명 엄마한테 혼날 것 같아 걱정도 되고, 빨리 얼룩을 제거하려고 저한테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어떻게 처리하라고 했는데 생각만큼 잘 안 되니까 제 생각도 나고 가방을 빨면서 울었다나요.

그 얘기를 들으니 저도 답답하고 맘이 아파서 너무 화가 나더라고요. 또 기숙사 방은 방음이 안 돼서 옆방 통화 소리까지 다 들리기 때문에 전화는 안 받지, 가방을 어찌했는지 알 수도 없고, 가기도 힘들고 그냥 그날은 그렇게 지냈습니다. 자다가 누워 생각해 봐도 너무 속상한 겁니다. 처음에 그 가방이 필요할 것 같은데 가격을 보니까 너무 비싸서(할인 판매를 해서 32천 원) 살 엄두를 못 내고 고민을 하기에 제가 꼭 필요한 거면 가방 한 개는 사라고 해서 산 가방인데, 얼룩을 묻혔으니 혜인이가 속상했을 걸 생각하니까 저도 저 나름대로 속상한 겁니다.

다음 날 아침 어떻게 됐는지 물어보니 사진으로 보여주는데 가방에 얼룩이 어제보다 더 심한 겁니다. 저도 교구에 출근하는 날이라 길게는 카톡도 못 하고 일단 그렇게 연락이 끊어졌습니다.

교구 수업을 하다가 쉬는 시간에 강습생들과 차를 마시며 가방 이야기가 나와서 속상하다 했더니, 어떤 학생이 아이고, 나이가 스물인데 다 알아서 할 겁니다. 이젠 신경 쓰지 마세요. 나중에 애들 결혼하면 냉장고 열어보고 잔소리하고 그렇게 됩니다.” 하시는 겁니다. 그 얘길 듣고, 버스를 타고 오면서 생각을 해보니 제가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였나 생각도 들고 이러다간 꼰대 엄마가 되겠는데.’ 하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여기서 꼰대란 요즘 많이 쓰는 단어인데, 자기의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간섭 심하고 자기 생각대로 몰아붙이고 하는 그런 사람이 바로 저를 보고 하는 말인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집에 가면,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어보고 혜인이가 하자는 대로 하자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집에 가서 혜인이에게 연락을 하니까 엄마가 이번에는 해결을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기숙사에 가방을 가지러 갔습니다. 그날은 아침에는 왕복 세 시간을 걸려 교구 수업 갔다가 오고, 집에 오자마자 교회보와 도우지를 챙겨 상급 고성교회에 가는 날이고, 잠깐 볼 일이 있어서 누굴 만나고, 다시 딸 기숙사에 갔다가 집에 오자마자 근행을 보고, 저녁을 먹고, 가방을 손으로 일일이 다 빨아서 물에 남가 놓고 보니 밤에 너무 어슬어슬 춥더군요. ‘몸살 나기 딱 좋은 날이네.’ 하는 생각을 하며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글을 읽으시며 무슨 가방에 얼룩 하나 묻은 거 가지고 까다롭게 군다고 생각하시겠지만, 저는 성격상 그게 안 되더라고요. 저는 얼룩에 엄청 예민합니다. 애들 옷이나 가방, 신발에 얼룩이 묻으면 그걸 깨끗이 지워야 직성이 풀려서 애들도 밖에 나가서 얼룩이 묻으면 엄마한테 혼난다고, 아니면 엄마가 밤이라도 그걸 지우고 잔다는 생각에 걱정이 되어 학교에서 대충 씻어 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슬프게도 저의 이런 성격을 딸에게 고스란히 물려줘서 딸은 저보다 더합니다. 이자가 붙은 것일까요? 딸도 옷에 얼룩이 묻으면 못 참고, 급식에서 짬뽕이 나오면 흰옷은 절대로 안 입는답니다. 혜인이가 어릴 때는 입은 흰옷을 제가 얼마나 얼룩 없이 빨아댄다고 고생을 했는지. ㅠㅠ 사람마다 어떤 건 그냥 넘어가는데 나는 이런 건 못 넘어가겠더라하는 게 있을 겁니다. 저에게 얼룩이란 그런 것입니다. 절대 그냥 못 넘어가는 것...

그래서 다음날 말끔히 가방의 얼룩을 지우니 세상 행복할 수가 없었습니다. 혜인이도 깨끗해진 가방을 사진으로 보여줬더니 깜짝 놀라고, 지금은 가방을 잘 들고 다닙니다. 다음에는 얼룩이 생기면 어떻게 하라고 얘길 했는데, 잘할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나마 제가 그때는 좀 너그러운 마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글을 쓰며 생각해보니, 저는 어릴 적부터 우리라는 단어에 집착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 가족, 우리 꺼, 거기에 내 꺼까지. 누가 제 물건을 만지면 난리 납니다. 이 길을 걸어오며 저를 돌아보니 결국엔 내 꺼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신님이 빌려주신 우리 가족이고, 내가 사는 동안 빌려주신 내 물건인데 그때는 그걸 몰랐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그건 마찬가지입니다. 순간순간 더 많이 가지려고 집착하고, 내 꺼를 많이 모으려고 바둥거리고 있습니다.

이런 집착들이 가족들을 간섭하게 되고, 내 생각이, 내 방식이 옳으니까 밀어붙이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집착들로 생겨난 것들에 욕심을 덧붙여서 갈수록 저만의 세계에 빠져드는 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이번 일을 겪으며 생각해 보니 저의 이런 성격을 앞으로 고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엄마 꼰대 같아요. 이런 게 꼰대예요.” 합니다. 그래서 너무 내 위주로 돌아가는 우리 집을 남 위주로 돌아가게 하려고 노력해 보겠지만, 갑자기 바뀔 수는 없고 180도는 아니라도 10도는 중심을 돌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나를 참아준 가족들에게 미안하고 고맙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