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50호
입교187년(2024년) 10월

본 사이트에는
천리교회본부의
공식적인 입장과 다른
글쓴이의 개인적인 생각이
담길 수도 있습니다.




천리교 교회본부



cond="$

내 인생의 도화지

진양교회 김영진

 

근행은 어버이신님께 살리어 주시는 은혜에 감사하며, 의지하고 기원하는 행위로써 경건한 마음으로 어버이를 흠모한다. 조석으로 신님께 엎드리면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이 세상과 인간을 만드시고 즐겁게 살아가는 길을 가르쳐 주셔서 이만큼이라도 살고 있는 것은 모두가 어버이신님의 덕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더 이상의 바람도 기원이라는 이름으로 원하기도 한다. 그것은 인간의 욕망이니까 가능한 일이다. 나를 위한 기원도 있겠지만 대부분이 다른 사람을 위한 기원이어서 의미 있겠다. “남을 도우면 내 몸이 도와지고, 남을 살리면 내 몸이 산다.” 상대를 도우면 내가 도와지고 상대를 세우는 것이 곧 내가 서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사()는 출발은 상대를 먼저 살리는 것이라서 내가 힘들고 그렇게 하는 내 마음이 어렵다. 그 고비를 넘으면 참으로 쉬운데 요즘 같은 개인주의 시대에 남을 먼저 생각하며 사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어리석은 사람은 차고 넘치는데 성자는 없다. 남 앞에 있는 사람은 자기 아래에 있는 사람과의 경쟁에서 이긴 사람일 뿐이다. 돈이 많은 사람은 돈이 없는 사람 몫의 돈을 먼저 가져간 사람일 뿐이다. 그 이치를 알면 직위가 높은 사람이나 돈이 많은 사람들은 벼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듯 더 낮은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출세를 못 했거나 돈이 없는 사람들은 자존감조차 처박으며 살 이유가 없다. 그런데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내 나이 59, 이상과 현실을 고민할 시기는 아니다.

 

근행을 올리며 조령전에 엎드리면 이 세상을 먼저 다녀가신 영혼들의 이름을 부른다. 교회장이 된 지 19, 내가 모셨던 위령제의 영혼들을 위한 짧은 시간이다. 조령전에서 내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작지만 대단한 일이다. 지나간 그들의 위대한 일생을 조금이라도 위안 드리고 되새김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함께 했던 혹여 함께하지는 못했더라도 같은 시대를 먼저 살아냈던 고귀한 영혼들을 위한 시간이 어찌 소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한편으로 뒤이어 따라가야 할 곳이기에 그들을 뵙게 될 때 볼 낯이라도 서게 될까 해서다.

 

 

이 글도 정리해야 할 때가 되었고, 내 인생도 잘 마무리 할 준비를 해야 한다.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일생은 모두가 소중하고 위대하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결코 현실적이지도 않고 호락호락하지도 않은 진리를 그래도 부여잡고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교조님께서 펼치셨던 어버이신님의 뜻이라고 아직까지는 굳게 믿고 있으니까. ‘나는 철이 들지 않을 거야라고 했던 20대가 떠오른다. 그러고 보면 나는 아직 철이 들지 못한 것 같다. 남자는 영원히 철들지 않는 아이라는 여자들의 말은 맞다. 남자들은 가오()로 사니까. 남을 돕는 마음은 현실적으로는 불가능에 가깝다. 이상을 좇아가는 철들지 않은 기를 세우지 않으면 어렵다. 쉽게 생각하고 말하게 되는 남을 돕는 마음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란 것을 실감한다. 내 인생의 도화지에는 어떤 그림이 완성될지 궁금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