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50호
입교187년(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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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이 미래다

교육이 미래다 5

교회교육의 현실과 과제 2

                                       정선일 (산청교회장)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

무릇 어떤 잘못된 현상을 해결하려고 한다면, 그 현상의 근원적 문제가 무엇인지를 잘 파악해서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교회교육의 패러다임에 대해 이야기 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패러다임의 변화가 없이는 교회교육의 위기를 타개하지 못한다. 아니, 교회교육의 위기를 되짚어가면 대개가 근본적인 의식의 문제, 가치관이나 시각의 문제 등 본질적으로 패러다임이라 할 수 있는 문제들과 직면하게 된다. 따라서 현재 교회교육의 상황을 보면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시급한 것은 ‘패러다임 쉬프트’이다. 패러다임의 전환은 더 이상 연기할 수 없는 과제인 것이다.
나는 이제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교회교육의 패러다임을 꿈꾼다. 패러다임의 전환을 소망하면서 그것이 실제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한 제안을 몇 가지 제시하고 싶다.

1) 고민하면서 이의를 제기하자

비록 교회교육이 많은 어려움에 직면해 있고, 교회교육 때문에 교회전체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더라도 문제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그저 ‘지금까지 지속되었기 때문에’,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라는 생각을 가지고 관성적으로 교회교육에 임하는 교사들이 많이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문제가 분명히 있는데, 문제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깨닫지 못하는 것만큼 심각한 문제가 없다.
어느 교회치고 완전하게, 완벽하게 교회교육을 구현하는 교회는 없다. 다른 말로 하면 그것이 크든 작든 어느 교회든지 교회교육에 있어서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문제점들을 발견해 내어야 한다. 이것이 교회교육 패러다임의 전환을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그림 1>에서 보는 것처럼, 패러다임 쉬프트는 기존의 패러다임이 문제가 있다는 것을 전제해야 한다. 그래야만 원하는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을 시도하고 그 구체적인 계획들을 생각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일은 ‘교회교육의 기존의 패러다임에 어떤 문제가 있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문제점을 찾는 것이다.
우리의 냉철하고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우리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교회교육의 문제점들을 발견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들 가운데 쉽게 노력해서 고칠 수 있는 것과 근본적으로 패러다임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개선하기 어려운 문제점을 분류할 수 있어야 한다. 당장 고칠 수 있는 것은 당장 고치고,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한 것에 대해서는 그 만큼의 더 깊은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 교회의 문제점을 진단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아래와 같은 물음을 제기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러한 문제점에 근거해서 현실을 냉철하게 살펴보고, 그 해답을 즉, 문제점 자체를 발견해야 한다.

@ 왜 우리 교회교육 현장에는 변화가 없을까? 아니, 도대체 왜 재미가 없을까?
@ 우리 교회교육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 우리 교회 교사들은 올바르게 헌신하고 있는가? 그들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 우리 교회에는 교회장과 교육부장과 담당, 교사 등의 업무가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는가? 제대로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 일은 무엇이며, 그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 학생들은 교회를 사랑하고 있는가? 그들이 교회교육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 교회교육에 대한 우리 교회의 정책은 합당한가? 합당하지 않다면 어떤 점에서 그런가? 

2) 교회교육 이론과 타 교회 현장 경험의 비판적 적용

교회교육의 문제를 진단하고 그 해답을 찾아갈 때에, 우리는 결국 전문가의 견해나 교회교육의 이론들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패러다임의 변화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전문가의 견해나 교회교육 이론들이 우리교회가 당면한 구체적 상황에 곧바로 적용될 수 없다. 오히려 거의 대다수의 경우에, 교회의 현실을 무시한 이론적 방향 제시로 끝날 가능성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그건 맞는 말이야’라고 고개를 끄덕여지지만, 막상 그 이론들을 우리 교회에 적용하려고 하면 당장 여러 가지 난관에 부딪치게 된다.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이론은, 심하게 말한다면 문제에 대해 고민했거나 처음 그 문제를 제시한 사람에게 실망을 가져다 줄 뿐이다. 교회교육의 이론들은 변형되어 적용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이론과 실제가 만날 수 있다.
세련되지 않아도 이론적 기초가 조금은 취약해도 우리 교회가 처한 구체적 상황에 대해 직접 고민하면서 얻은 해답은 교회에 실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 우리의 문제를 바르게 진단한 이후에 비판적이고도 건전한 사고를 가지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 우리 교회의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함께 고민하고 그것을 현장에 적절히 적용시킴으로써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결국 우리의 교회교육을 변화시킬 수 있기에 가장 적합한 프로그램은 우리 스스로가 개발해야 하는 것이다. 이 말은 교회교육의 이론들을 무시해야 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다른 교회의 경우들을 무시해야 한다는 뜻도 아니다. 오히려 할 수 있는 대로 많은 교회교육 이론과 다른 교회들의 현장 경험을 섭렵해야 한다.
그렇지만 그것을 맹목적으로 추종하거나 그대로 적용하려고 하기보다는 -실제로 많은 교회들이 이런 오류를 범하고 있다- 비판적, 창조적인 관점을 가지고 그 이론이나 현장 경험들을 재구성하여 우리 교회에 걸맞은 것으로 변형시켜서 적용하고자 해야 한다.

3) 어버이신님(교조님) 중심, 학습자 중심

<그림 2>에서 보는 것처럼 교회와 교회교육은 어버이신님과 학생들 사이에 위치해 있다. 교사는 학생들을 이끌되 어버이신님 앞으로 이끌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교회교육이 학교교육과 다르다. 교사는 어버이신님 앞으로 나아가되 학생들과 함께 나아가야 한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교회교육은 교육의 다른 영역과는 사뭇 다른 성격을 가진다. 교회의 위치가 이러하고 교회교육의 성격이 그렇기 때문에, 교회교육에서는 어버이신님을 알고 학생들을 아는 일에 관심과 마음을 기울여야 한다.
지금까지의 교회교육은 어버이신님 중심이었다. 그리고 교사 중심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들은 교회교육의 주체라고 인식되기보다는 객체 혹은 대상으로 인식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교육은 그들을 고려하지 않았고, 오직 어버이신님과 교사만 고려하였다.
그렇지만 이제는 교회교육이 학생 중심의 패러다임으로 전환해야 한다. 기본적인 교회교육에 대한 마인드에서부터 시작해서 교육활동이나 교사의 역할과 활동, 교화나 교육행정, 환경 꾸미기 등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에서 학생들을 고려해야한다. 그럼으로써 학생들을 교회교육의 중심에 놓을 수가 있다. 학생들이 고려될 때, 그들이 교회교육의 중심에 설 때 학생들이 주체적인 생각을 가지고 교회교육에 임할 수 있고, 바로 그때 학습이 일어나게 된다.
학생 중심의 패러다임을 가질 때, 의외로 우리의 교육 현실에서 바뀌어야 할 부분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교회교육이 학생 중심적이어야 하되, 또한 어버이신님 중심적이어야 한다. ‘학생 중심’만 있으면 구성주의적 교육이론은 될지 모르지만 원전(교회)적인 교육이론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학생 중심적이되 어버이신님 중심을 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따라서 , <그림 3>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어버이신님 중심과 학생 중심이 균형을 이룰 때 올바른 교회교육이 이루어진다. 우리 교회교육이 참되고 능력 있는 모습으로 변화되기 위해서 어버이신님 중심과 학생 중심이 적절한 균형을 이루는 패러다임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힘쓰도록 하자.

  4) 가정과 교회의 협력

  원전을 통해서도 명백히 볼 수 있는 것처럼, 교리적으로 보면 신앙교육의 일차적 책임은 가정에 주어져 있다. 현대 사회에서 가정이 이 책임을 다하지 못하기 때문에 교회가 신앙교육을 맡고 있기는 하지만, 가정의 책임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교신자의 가정에서 신앙교육이 거의 이루어지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부모를 비롯한 기성세대가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신앙교육에 대해서 거의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는 곧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신앙교육이 곧 교회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받을 수 있는 신앙교육 전체와 동일시되었고, 열악한 교회교육의 현실은 신앙교육의 질적 저하를 초래하게 되었다.
  이것은 신앙교육에 대한 가정의 무관심과 교회교육의 열악한 현실이 상호간에 부정적인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서 악순환이 반복되는 결과를 낳았고, 이로써 오늘날 교회교육의 암울한 모습이 빚어진 것이다.
  교회교육이 대단히 중요한 신앙교육의 장인 것은 분명하지만, 교회교육만으로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올바른 신앙인으로 양육할 수 없다. 이제는 신앙교육에 대한 본질적인 책임을 가지고 있는 가정이 나서야 할 때이며, 신앙교육의 두 축이라고 할 수 있는 가정과 교회가 협력해야 할 때이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신앙교육을 위한 가정과 교회의 협력은 시대적, 교리적으로 시급한 요청이라고 하겠다.
  이를 위해서는 교회교육이 가정과 함께 해야 한다는 사실이, 아이들의 신앙교육을 위해서 가정이 교회와 협력해야 한다는 사실이 모든 교신자들에게 인식되어야 한다. 그래서 교회교육은 가정을 향해, 가정은 교회교육을 향해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
  또한 가정은 교회에서 가르친 내용이 학생들의 삶 속에 적용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 ‘실천의 장’이어야 한다. 가정이 신앙교육의 실천의 장이 될 수만 있다면, 신앙교육의 패러다임 자체도 변화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신앙교육이 소위 ‘신앙적인’ 영역을 넘어서서 사회 속에서의 삶의 모습이나 문화적인 영역에서까지 확대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그렇지 못해서 언제나 신앙적인 영역에만 - 그것도 몹시 부분적으로 - 머물러 있다. 이제는 신앙교육의 본질을 추구해야 하는데,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신앙교육의 실천의 장으로서 가정의 기능이 회복되어야 하는 것이다.
  가정이 신앙교육의 실천의 장이 되어야 할뿐만 아니라, 부모가 교회교육의 조력자가 되어야 한다. 즉, 교회교육은 부모를 조력자로 인식하고 교육활동의 현장으로 끌어들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가정은 교회교육을 위한 기도의 후원 그룹이 되어야 한다.
 
  5) 교회교육을 위한 홍보와 투자

  현대는 바야흐로 홍보의 시대이다. 굳이 과장할 필요도 없고 해서도 안되지만, 있는 그대로의 형편을 알리되 장점을 알려야 할 때는 장점을 알리고, 단점을 알려서 협조를 구할 때는 단점을 알려야 한다. 일반적으로 교회는 교육부서 담당 교역자와 교사들에게 교회교육에 대한 책임을 일임한다. 그리고 난 후에는 교회교육에 대한 관심을 잊어버릴 때가 많다. 잊고 싶어서 잊기보다는 당면한 교회의 현안문제나 교회가 추구해야 할 영역이 많고 크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교육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는 있지만, 구체적으로 교회가 어떻게 도와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올바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대개 교육부서 담당들과 교사들은 교회교육에 대한 어려움이 있을 때, 그것을 교회 앞으로 적극적으로 내놓지 못한다. 그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것은 분명 지혜롭지 못한 행동이다.
  결국 교회 앞에 교회교육의 어려움과 협조사항을 알리지 않기 때문에 교회는 교회교육에 대해서 더욱 모르게 되고, 교사들은 교회에 대한 불신감을 가져서 ‘우리 교회가 교회교육을 위해서 투자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냐?’ 라는 식으로 성토하게 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알리지 않음으로써 관심과 투자가 줄어들고 그럼으로써 다시 불평이 증대되는 식의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제, 교회교육을 적극적으로 홍보해야 한다. 우리 교회의 교회교육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우리의 장점은 무엇이며 단점은 무엇인지, 교회나 가정들이 어떻게 도와주어야 할 것인지 등에 대해서 보다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 교육부서 담당자들은 역원회의나 교회장과의 면담을 통해서, 교사들은 용재회의 등에서 교회교육에 대해 홍보할 필요가 있다. 혹은 교회보나 공문, 그리고 포스타 등을 통해서도 교회교육을 알려야 한다.
  이것은 단지 재정적인 협조를 얻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그것보다는 교회와 부모들의 관심을 얻고, 교회교육을 위해서 구체적으로 기도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그렇게 되면 물질은 자연히 따라오게 된다.
  교회교육에 대한 홍보가 충분히 이루어지면, 교회가 중요한 정책을 결정할 때도 교회교육을 고려할 수 있게 된다. 뜻밖에도, 교회교육을 고려하지 않는 정책이 교회에서 결정되기 때문에 교회교육이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이러한 점을 방지하려 한다면, 교회교육과 관련된 사람들- 담당자나 교사, 뜻을 같이하는 학부모 등- 이 교회의 정책 결정 과정에 깊이 참여하거나, 그렇게 하지 않더라고 교회교육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홍보를 해야 한다. 이렇게 됨으로써 교회교육도 살고, 교회의 정책도 균형을 잡을 수 있게 된다.
  교회교육에 대한 투자는 효율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내년의 교회교육을 위해서 필요한 것들은 충분하게 연구하고 검토하여 예산을 편성할 때에 교회교육에 관한 요구사항이 반드시 포함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되어야만 교회교육에 동일한 양의 재정을 투입하더라도, 교회교육의 현실적 요구를 채워줄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6) 변화를 시도하라

  어떤 영역에서나 마찬가지이겠지만, 교회교육에서도 패러다임의 전환이 고민에서만 끝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것은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다. 긴 고민 끝에 많은 결론을 내렸지만 실천되지 못하기보다는, 하나의 작은 결론을 내리더라도 실천에 이르는 것이 훨씬 낫다. 그렇기 때문에, 합리적이면서도 고민이 묻어나는 패러다임 전환의 방침이 정해지면 체계적인 과정을 거쳐서 변화를 시도해 보아야 한다. 패러다임 쉬프트는 전체의 교회 교육적 틀을 뒤바꾸는 것일 수 있다. 그렇지만 그런 거대한 결과는 소극적으로 기다리기보다는 실천 가능한 것들부터 하나씩 하나씩 부딪쳐 나가는 것이 유익하다.
  변화를 시도하다 보면 여러 가지 면에서 유익을 얻을 수 있다. 그렇게 변화를 시도하다 보면 해답인 양 제시했던 것들이 의외로 그대로 실현되기가 어렵다는 것도 알게 될 것이고, 나름대로 현장을 고려한다고 했지만 제대로 고려되지 않았다는 것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바로 이것이 변화를 시도함으로써 얻는 유익이다. 이렇게 됨으로써 이후로 다시 고민하고 패러다임의 전환을 꾀할 때에 훨씬 더 현장에 대한 감각이 녹아있는, 또한 실제적이고도 유익한 그리고 구체적인 방안들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변화를 시도함으로써 얻게 되는 또 다른 유익은 교회와 부모들의 인정을 받게 되는 것이다. 변화를 시도하는 것은 많이 에너지 소모를 요구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어떤 식으로든 알려지게 되어 있고, 그렇게 알려짐으로써 교회와 부모들이 교회교육과 교사들을 인정할 수 있게 된다. 교회와 부모들이 교회교육을 인정한다면 교회교육에 대한 투자나 기도의 후원 등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변화를 시도함으로써 얻게 되는 가장 큰 유익은 역시 교회교육의 주체라고 할 수 있는 교사(담당자 포함)와 학생들일 것이다. 교사들은 변화를 시도함으로써 스스로의 세계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사실 패러다임의 전환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교사들의 패러다임 전환이다. 교사들은 스스로 노력하고 시도해 보면서 교회교육과 자신들의 교육활동에 대한 의식과 자세가 변화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결과이다. 이렇게 되는 과정에서 학생들이 얻는 유익도 크다. 그들이야말로 교회교육의 수혜자들이기 때문이다.
 
나가며

청소년교육은 미래를 위한 보험이다. 우리 교회가 교육에 그리고 특별히 청소년교육에 더 이상 인색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이들의 성장과정의 특징과 21세기 사회현상이 청소년들의 탈교회화를 더욱 부추길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미래의 소망은 청소년이다. 그리고 청소년을 진정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가르침과 그 가르침을 전하는 교회 밖에 없다고 믿는다. 그러나 교회가 그것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기 위해서는 앉아서 기다릴 것이 아니라 이제 적극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사실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학교와 청소년들은 교회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으며 교회를 향해 열려 있다. 그리고 이 길이 교회교육의 살길이라고 생각한다.
전환의 결단과 의지가 없이는 바뀌는 것은 없다. 지금 우리 한국 교회의 교육의 현실이 이를 요구한다. 언제까지나 구태의연한 모습으로 답보상태를 그대로 유지할 수는 없는 것이다. 시대가 변화하고, 사람이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때에 예전에 교회가 하던 대로 교육을 해 나간다면 교회의 교육은 앞으로 더 이상 손댈 곳도 없어질 것이고 손댈 사람도 손대야 할 사람도 없어질 것이다. 결단으로 변환을 모색해야 한다.
  <참고>                     
                    바라는 패러다임 (What Should be)
     

 


       현재의 패러다임(What is)
<그림 1> 패러다임 쉬프트

어버이신님
교회
(교회교육)
학생


      

 


  

 

어버이신님(교조님) 중심

 


참된 교회교육
<그림 2> 교회와 교회교육의 위치

 


학생 중심

 


<그림 3> 참된 교회교육의 패러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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